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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바라밀의 실천과 생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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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8-04-07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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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법공 필자소속 만보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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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1 06:29 조회 4,8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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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육바라밀의 실천과 생활화 (2회)

육바라밀의 실천과 생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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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공(만보사 주교)


아시다시피 육바라밀의 순서를 보면 먼저 보시바라 밀을 시작으로 해서 다음 지계(정계)· 인욕(안인)· 정진 · 선정(정려) ·지혜(반야)바라밀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 여섯 바라밀 중 왜 하필이면 보시바라 밀을 첫머리에 두고 다음 지계·인욕· 정진· 선정·지혜의 순으로 설했을까요? 그 이유를 경전에서 찾아 보기로 합시다.

우리 총지종의 소의 경전인 대승리취 육바라밀다 경 권제4에〈보시바라밀을 먼저 설하는 이유〉란 대목 에 보면 "무슨 까닭으로 보시바라밀을 먼저 설합니까?” 하는 자씨보살의 질문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 하십니다.

“보시는 육도(六度;육바라밀)중에서 가장 수습(修習)하기가 쉬운 까닭에 먼저 설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세간에서 하는 모든 일과 같이 만약 하기 쉬운 것은 마땅히 이것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뜻이 있기 때문에 육도의 저 언덕은 보시를 문으로 하고 사섭의 행을 머리로 삼는 것이니 마치 대지에 일체의 만물이 의지하여 생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뜻으로 먼저 보시바라밀다를 설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매사에는 반드시 선후와 본말이 있는 법이니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의 차서를 아행해야 진리의 이법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보살이 성불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필수적인 단계라 할 수 있는 육바라밀인데 어느 한 바라밀인들 쉬운 것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바라밀이 즉 보시바라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바색계경>에도 보면 “재물이 없는 사람이 나는 재물이 없어서 보시를 못핸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한 모금의 물과 한 포기의 풀도 없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극히 가난한 사람이 한 끼의 밥을 먹은 뒤에 그 밥그릇을 씻은 물을 보시하여도 복을 얻을 것이며 가령 찐 보리가루 찌거기를 개미에게 보시하여도 또한 무량한 복을 얻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시란 재물의 다소와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시할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보시할 뜻이 없으면 비록 국왕이나 거부, 장자라도 능히 보시를 하지 못하는 것 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보면 물론 큰 부자가 큰 보시 를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큰 부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나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이름없는 서민들이 큰 보시와 지극하고 진실된 보시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헤아려 보면 우리 인간은 본래 받기 를 좋아하고 주기를 싫어하는 이가 절대적으로 많은 것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삼계중 욕계에 속하므로 다생겁을 통해 오로지 욕심에 끌려 탐업을 쌓은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고보면 주는 것은 장차 받을 근본이 되는 것이며 받는 것은 장차 도로 주어야 할 원인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보시바 라밀의 참뜻을 깨달아 끊임없이 보시심을 기르며 부지 런히 보시행을 수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 생의 업장 때문에 여간 부지런히 수습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것을 이뤄낼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묵은 업을 떨쳐내기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금생에서 잠시 익힌 습관도(술·담배·잠버릇· 말 버릇 등) 한 번 익히기는 쉬워도 고치기는 어려운 법 인데 하물며 무시광겁으로 쌓고 쌓은 탐욕심이이말로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오죽 크면 부처님께서 인간의 탐욕이란 묘고산(妙高山)보다 높고 크다 했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 총지종에서는 교도가 발심입교하면 맨먼저 매일 정송과 더불어 절량희사법과 정시, 차시법을 꼭 실천토록 권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도란 복과 지혜를 쌍수(雙修)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저간의 우리 불교계의 수행인들의 상당수가 복 따로 지혜 따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수행이 많았습니다. 복지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또한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어느 것 한 쪽이라도 없거나 크기가 같지 못하면 온전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 이지요

따라서 각기 근기대로 닦되 복지쌍수(福智雙修)로 한 쪽에 치우침이 없이 균형되게 닦아야 함은 자명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은 우리 총지종의 수행 방편인〈실천보시행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려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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