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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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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8-04-07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이런불자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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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배호성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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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1 07:04 조회 5,1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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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불자
진언의 공덕으로 재기를 다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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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사에서 정진중인 배호성 거사


요즘 우리 종단의 본산인 총지 사에는 한 눈에도 친근감을 단박 느낄 수 있는 중년 신사를 거의 매일 만날 수 있다. 어느새 종단의 주요 인사와 허물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낯이 익은 이 분이 불교 총지종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참으로 기구하다.

배호성거사. 대구 출신으로 42 년생이니 어느새 세상의 순리를 터득한다는 이순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분은 유명한 제지회사였던 무림제지(현재 갑을방적의 전신) 창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북고를 거쳐 중앙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지금껏 기업인으로 살아 왔다. 우리나라 섬유공업의 본산지라 할 수 있는 대구의 유명 방직회 사에서 오래 근무하 면서 실무경제와 기업 윤리를 몸에 익혔다.

이 분의 아버님 께 큰 도움을 받아 한국 제지업계의 유 명 인사가 된 분과의 인연으로 지난 87년 삼우화학을 설립하였는데, 이 회사는 일회용 생리대 와 기저귀에 들어가 는 방수용필름을 생산하여 연간 3 천만불 이상의 수출 및 수입대체 효과를 올려 경제기획원과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모범적인 중소 기업으로 상을 받는 등 대단히 유 망한 회사였다. 국민소득이 한창 늘어나던 80년대 중후반 이후 생리 대와 기저귀의 시쟁이 확장되면서 이 회사의 매출도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 95년에는 수출 8백만불을 포함 187억원의 매출과 110명에 이르는 종업원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또 91년부터는 삼우화학 공장이 있는 문경지역의 유휴노동력을 고용 하기 위해 신규업종인 레져용테이 블을 생산하여 연간 5백만불 상당의 외화를 벌어 들였다.

이렇게 성장을 거듭하던 회사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91년 들어서면서 부터였다. 삼우화학 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생리대와 기저귀를 생산 판매하던 대기업이 부당한 거래로 삼우화학을 곤란에 빠지게 하였다. 공급물량의 일부를 빼돌려 삼우화학과 경쟁관계에 있는 타업체에게 주면서 회사의 가동율은 떨어져 갔다. 배호성거사는 이때 방수용필름의 획기적인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높히는 것만이 활로라는 판단에 기술개발비 20억 원과 설비비 60억원 등 엄청난 액수를 투자하였다. 그리하여 93년부 터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통기성방수 필름을 자체 개발하여 막대한 외화 유출을 막았고 오히려 제품의 수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상당액의 수출로 국가경제에 이바지 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의 교묘한 횡포가 계속되어 회사의 적자는 해가 갈수 록 누적되었고 여기에 설상가상으 로 96년 1월과 2월 제작 수출한 레 져용테이블의 상당수가 불량 반품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국내 굴 지의 화학원료회사가 납품한 원자재의 불량이 원인이었다. 삼우화학과 거래를 하던 대기업은 공교롭게도 외국회사와 합자한 회사들이었다. 하나는 킴벌리였고 하나는 바스프라는 세계적인 기업으로써 국내의 O양행과 ㅎ화학과 각각합자 형태로 설립한 기업이다. 이 대기업의 부도덕한 횡포로 회사는 결국 96년 10월 부도로 쓰러졌다. 물론 원인 제공을 한 두 대기업은 자신 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회사가 쓰러진 후에도 배호성거사는 좌절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살리고자 두 대기업의 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대기업의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배거사의 인간적인 노력을 여지 없이 거부하였다. 재기의 실낱같은 희 망이 수포로 돌아가 자 배거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 였다. 이생의 인연 을 스스로 종지부 찍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부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전남 장성의 백양사 법당에서 삼천 배를 올렸다. 그이의 기도를 부처님께서 감응하였던 것일까. 밤새 흠뻑 젖은 몸으로 법당을 나와 새벽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자 재기의 의지가 불같이 타올 랐다. 그래 땅에서 쓰러진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고 이르신 지눌 스님의 말씀대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각오가 불끈 솟았다.

우리 종단이 전담하고 있는 한국불교종단협 소비자보호위에 자신이 겪은 중소기업의'실정을 호소 하면서 배거사는 한국불교의 밀교 전통을 새롭게 계승 발전하고 있는 총지종과의 인연이 열렸다. 그는 틈나는대로 ‘옴마니반메훔’을 염송 하고 차분히 재기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의 앞날에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

김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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