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버그, 컴퓨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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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1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8-09-2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서동석 칼럼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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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1 07:57 조회 5,041회본문
인류에게 물질적으로 최고의 수준을 가져다 준 20세기가 저무는 것도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화의 성공과 그 후유증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을 수차례 치루면서도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이루었다. 어쨌든 외형적으로는 금세기는 풍요를 실현하였고 그에 따라 인간의 의식세계도 대단히 괄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에 대한 갈증이 고조되는 것 역시 그러한 변화의 반증이다.
금세기 후반에 들어 산업화의 영향만큼 인류에 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첨단정보화의 물결은 다음 세기 인류의 생활 양식이 또 어떻게 변화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도록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개인용컴퓨터는 첨단정보화시대의 인간을 점차 종속화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마저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컴퓨터는 그 이름 자체가 암시하고 있듯이 애 초에는 복잡한 계산을 편리하게 하고자 발명된 기계였다. 이를테면 주산의 발전된 형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일단 발명된 이 기계는 가히 가공 할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컴퓨터가 유아기에 머물던 60년대만 하여도 그 덩치가 집 채만 하였지만 불과 20여 년만에 그 덩치는 책상 만 해지면서도 그 기능은 지금껏 어느 기계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막강한 능력을 소장하였다. 책상 위에 놓고 사용할 정도로 크기가 작아진 컴퓨터(personal computer)는 더 작아져 공책만해지 고 나아가 손박닥에 놓고 쓸 수 있도록 그 면모를 일신하고 있지만 크기의 축소에 반해 그의 능력은 마치 불가사리처럼 더 거대해져 이제 그의 존재 없이는 세계라는 공장의 가동이 불가능해 졌다. 그런 셈이 되었다. 세계는 컴퓨터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공장이 되었다. 일반상품의 거 래에서부터 화폐의 거래도 모두 컴퓨터의 정밀 한 관리가 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지구 대기권 밖에서 세계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그 변화를 지구 통제소에 보내주고 있는 수많은 인공위성들 은 컴퓨터가 정지한다면 그야말로 우주미아 또 는 쓰레기가 되어야 한다. 지구를 움직이는. 정 확하게 말하자면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인간 역 시 일대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이런 막강한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우습게도 1999년 12월 31일까지만 인식하고 있다. 그해 연말 밤. 그러니까 말일 23시 59분 59초까지만 인식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는 것이다. 그럼 그 이후는 어떤가? 단순한 문제 가 아니다. 그저 영점 몇 초를 모른다고. 서기 2 천년의 새날을 인식 못한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안이한 생각을 한다면 진짜 앉아서 날벼락을 맞는 꼴이 된다. 그 사소한 인 식불능은 지구촌을 일대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모든 예약시스템이 뒤엉키고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 놓았던 예금. 연금 등의 연산이 엉망이 된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위성시스템 역시 엄청난 혼선을 겪는다. 참으로 세기말의 아비 규환이 그 웃지못할 날짜인식 불능에서 비롯된다.
그래 지금 각국은 다음 천년(유식하게 영어를 빌려 말하면 밀레니엄이라든가)을 인식 못하는 이 초능력 물건의 헛점. 밀레니엄버그라고 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민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엄청난 돈을 들이고 있다. 새로운 천 년이 초 읽기에 들어간 만큼 그 해결책 강구에 혈안이 되 어있다. 어느 나라에서 가장 쉬운 해결책을 찾느 냐에 따라 그 또환 엄청난 수익도 올릴 수 있으니 혈안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런데 밀레니 엄버그는 컴퓨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도 그런 장애가 작용하고 있다. 세계사적 으로 인간의 인식 지평이 넓어져 평등과 자유,평화에 대한 의지가 확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전적 사고에 젖어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신의 밀레니엄버그가 아니겠는가.
지난 8월 말 북한이 발사한 위성에 대해 이 나라와 일본,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황당한 태도 들은 참으로 가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초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난리를 피우고 그에 장단을 맞춰 군비강화와 함께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어느 프로야구선수가 대기록을 달성했다고 축하 해주면서도 정작 같은 민족의 첨단과학 개가에는 왜 적개심을 버리지 못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뼛속까지 배인 그 반쪽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한 새로운 백년. 새로운 천년대는 우리를 낙 하게 할 것이다. 소박한 소망일지 모르겠으나 지금 정부가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들여 밀레님 엄버그를 해결하고자 하는데 우리 의식의 버그도 그만한 열정을 들여 바로잡기 바란다. 반쪽 세계관으로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이 민족의 앞날이 화창하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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