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를 걷어내고 새로운 천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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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2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1-25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서동석 칼럼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서동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종단협 소비자보호위원회 실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2 05:20 조회 4,863회본문
해마다 증가하던 승용차의 등록대수가 작년에는 큰 폭으로 줄었다고 한다. 자동차의 증가로 나타난 부작 용을 우려한 시민정신의 발로였다면 더없이 고무적인 현상일터이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라살림이 ‘한국전쟁 이 후 최대의 국가적 위기’로 곤두박질친 결과에서 비롯된 일이다. 자동차 등록대수의 감소는 부실한 나라살림의 허황한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단순히 작년의 일시적인 현 상에 그치지말고 올해도. 내년에도 꾸준히 줄었으면 좋겠다.
도시의 길을 메운 승용차의 수가 더 줄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중교통수 단이 발달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가 장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와 지하철이 지금처럼 이용하기 불편해 서는 그것을 이용하고 싶어도 선뜻 마음을 내키기 어렵다. 까마득히 오 르고 내리는 역사 출입구의 계단만 봐도 단박에 질려 버리고 또 다른 노 선의 지하철로 갈아 타려면 긴긴 미 로를 헤매게 된다. 분명이 정확하게 ‘갈아타는 곳’ 이라는 표지를 따라 갔 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나오게 되는 경우도 숱하다. 갈아 타는 곳 뿐이랴. 지하철역이 있는 큰 도로에서는 맞은 편 쪽으로 건너 가려면 또 까마득한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야 한다. 공 연히 방향을 잘못 잡았다가는 그 고 난을 배로 겪어야 한다.
서울의 한복판인 서울시청 지하철 역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은 요령을 터득했겠지만 어쩌다 이곳을 찾게되 는 사람은 엄청 주의를 기우려야 한 다. 서울사람인 나도 이곳에서 엉뚱 한 곳으로 나와 난감해진 적이 있었다. 원하는 곳이 아닌 딴 곳으로 나 오게 되면 다시 돌아가는 일이 막막 하다. 빤히 눈에 보이는 맞은 편을 가기 위해 한없이 돌아간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야말로 무단횡단의 유혹이 저절로 솟는다.
요즘 들어 여러 곳의 지하철 역사 에 ‘지하철 계단은. 운동으로 생각하면 즐겁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 다. 하두 사람들이 지하철 이용의 불 편함을 지적하니까 궁리 끝에 운동 삼아 계단을 오르내리라고 은근한 권유를 하는 것 같다. 그 표어를 궁리 한 사람이 불자라면 아마 ‘일체유심조, 를 떠올렸을 것이다. 제딴에는 운 동이 부족한 도시인들에게 하루 만보 걷기의 운동장 역할을 지하철이 제공 하고 있으니 고맙게 생각하라는 것인 지 알쏭해진다. 그러나 그 표어, 우선 문법부터가 맞지 않는 은근한 권유를 보는 사람 가운데 노인이나 혹은 몸이 불편한 사람도 적지 않을터인데 그들의 고초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문제는 한번 공사한 시설물의 보완이나 개선이 새로 짓는 것보다 어렵고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형태의 시설을 짓고자 할 때 그 시설의 이용 목적에 맞도록 여타의 경험과 성과를 충분히 검토 반영하고 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저 막연히 ‘한번’ 해 보는 정도로 손을 댈 봐에야 차라리 안하는 것이 낫다. 의사가 사람을 상 대로 ‘한번’ 의료행위를 한다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불편하게 만들어 놓고 ‘운동’ 삼아 다니라는 말은 후안무치한 억지, 아니 억지를. 넘은 기만과 강요에 다를 바 없다. 어디 그것이 시설에만 국한하랴. 이 나라의 정치를 합네. 기업을 합네 하 는 이들이 보이는 기만과 강요는 감 히 지하철에 빗댈 수준이 아니다. 그 네들의 무책임한 작태로 인해 ‘모진 놈 곁에 있다 벼락 맞는다’ 는 말처럼 애꿎은 서민만 혼쭐난다.
비록 서력의 기원에 맞춘 것이긴해 도 이제 우리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천년대를 맞이 한다. 지난 천 년의 세월 동안 인류는 진보의 발걸 음을 늦추지 않았다. 기만과 억지, 강 제와 억압을 넘어 만인이 만인에 대해 평등과 자유로운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지닌한 투쟁을 했고 그 진보의 역사 위에 새로운 천년이 열린다. 돌 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감동의 물결로 점철되어 있다. 지구 저 밑바닥의 용 암이 지각을 들춰내고 솟구쳐 오르듯 소수의 지배를 걷어내고 다수가 주체 로 부상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새로운 천년의 역사에 기만과 억지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인 이해에 충심으로 사회와 자신에게 기만과 억지의 잔재가 있는지 돌아볼 일 이다. 있다면 당연히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애초 잘못 지어진 탓에 두고 두고 골탕 먹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올해 우물쩍 넘어가면 새로운 천년의 첫해에 또 겪어야 한다.
지하철 역사에 대한 지적이 아니다. 나라살림을 주무르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경고이며 그들의 농락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시민적 발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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