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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생명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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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6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9-20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현묵의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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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서동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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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4 06:29 조회 2,9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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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생명도 보호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모두 같은 심정 일 것이다. 비록 온종일 개구쟁이짓으로 속을 썩일 때는 어디 다리 밑에라도 버리고 싶지만 저도 뛰어노느라 지쳤는지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 모습을 보노라면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사랑스러워진다. 그럴라치면 마음 속에서 굳은 다짐이 절로 솟는 것 또한 천상 이 세상의 여느 부모라도 다름 없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얼추 제 앞가림이라도 할 때까지 나는 '애비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다’, ‘자식들에게는 지금의 이 난 장판 세상을 물려주어서는 안되겠다’는 원력은 나만의 것이 아닐터이다. 더러 이렇게 소중한 자식들이 자라다 혹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지울 수 없 을 것이다.

그래서 옛어른들은 그렇게 소중한 자식 들을 짓궂은 귀신이 홀연 데려갈까 두려 워 아이 때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천박하 게 지었다고 한다. 나 또한 부모님의 그 런 절절한 애정으로 키워졌고 대를 이어 자식에게 부모로서의 내리사랑을 보여주 어야 할 의무를 물려 받았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어른과 자식간에 의무과 도리를 다하도록 여러가지의 정책을 펴고 권장한다. 특정한 날을 잡아 그 도리를 다한 사람을 선정하여 포상을 하기도 한다. 사회 발전에 따라 상의 명칭과 의미는 달라져도 그 근본정신에는 변함이 없다. 이를테면, 예전의 열녀상은 지아비를 잃은 여성이 끝내 수절하면서 자식을 의젓하게 키우라는 유교적 이념의 표현이었다. 세상물정이 바뀐 지금도 수절의 강요는 않더라도 자식을 치열한 경쟁의 대열에서 ‘일등’ 으로 키워낸 부모 에게 갖가지 댓가를 제공한다. 그악스럽 게 자기자식이 남보다 더 성공하도록 혈안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든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다.

이 나라는 그런 부모의 헌신적인 자식 사랑을 동력으로 국력을 키워왔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당신이 가난하고 힘 없는 까닭은, 사회체제의 잘못이 아니라 엉뚱하게 배우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라 단정하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과 멸시와 천대를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자 식들만큼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공부’ 를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결과 이토록 비장한 결의가 곧바로 사회의 자산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 다.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한국사회 의 학력만큼은 최상위권에서 벗어난 적 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그것이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눈부신 산업발전을 이룩한 동력이었음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 이 나라의 풍토에서 자식을 어이 없게 잃었을 때 받을 충격은 가히 짐작이 가는 바 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사랑스러운 자식을 남보다 더 일찍, 더 좋은 공부를 하라고 무슨 학원이다, 수련회다, 무슨 학습이다 하여 보냈는데 그 아침 밝은 미소로 떠난 아이가 참변을 당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그 심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도 이 잘난 나라의 무책임하고 부정한 관리들과 또 그들과 협잡하여 어린 생명을 담보로 제 잇속을 챙기는 장사꾼 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면 그 치받치는 울 화가 어떠리라 능히 짐작된다. 쓰면 떫지 나 말아야 되는데 나라가 그 지경으로 애비애미의 억장을 무너뜨리고도 ‘나 모 르쇠’, ‘우린 잘못 없네’라고 돌아앉아 있다면 누가 이런 나라에서 살 가치를 가 진단 말인가?

지난 7월 경기도 화성의 한 어린이 수 련원에서 화마로 자식을 잃은 김순덕씨 부부는 이런 나라에서 도저히 살 의미가 없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로 하였다. 여자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로 국제대회에 나가 조국 대한민국의 명예를 드높혀 나라로부터 훈장을 받았던 이였다. 그녀 는 대한민국의국민으로서 국제대회에 우승할 때 자랑스럽게 올라가는 태극기와 애국가에 눈시울을 적시길 한두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가 주는 훈장을 얼 마나 영예롭게 여겼을 것인가. 자신의 아 이도 그래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나찌정권이나 일본군국주의자들이나 모든 파시스트들이 국가지상주의를 노래 불렀다고 하여도…

그러나 충성을 다한 국가는 자신의 어린 생명 하나를 지켜주지 못했다. 아니 지켜주는 것은 고사하고 이 정부의 관리 들 잘못으로 죽은 생명에 대해 일언반구의 참회 성명도 없었다. 하도 억울하여 국무총리 면담을 요청했으나 역시 묵묵 부답이었다. 마침내 조상 대대로 뼈를 묻 어온 조국에 대한 배신감에 훌쩍 이민을 가기로 하고 자신이 그리도 소중히 간직 하던 ‘훈장’을 국가에 반납하였다. 그제 서야 국무총리가 먼저 나서서 만나자고 했다.

지난 8월 23일 총리공관에서 김씨는 총리를 만났다. 총리는 김씨에게 씨랜드화 재참사의 진상을 재조사하겠다고 약속하 면서 이민을 만류하였다. 하지만 김씨는 ‘이미 때는 늦었다. 어린 생명조차 지켜 주지 못하는 국가에서 더이상 살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밝혔다. 누가 이들의 이민을 탓하리오. 저질들의 난장을 볼 때마다 불쑥 이민을 떠올리지 않은 이 들이 얼마나 되려나.

맹자는 들에 곡식이 널려있고, 곳간에 온갖 먹을 것이 널려 있어도 그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지 못하는 사회는 ‘식인사회’ 라고 못박았다. 먹을 것이 오히려 사람을 잡는다는 역설이다. 이 나라가 혹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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