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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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10-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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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9 17:45 조회 2,704회본문
참으로 끔직한 광경을 생생 하게 지켜보았다. 거대한 건물을 향해 돌진하는 여객기와 화염 그리고 붕괴되는 건물. 그 안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죽음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는 그야말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만하여도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도시, 뉴욕시민이라는 것만으로도 자긍심을 가졌던 그 도시가 불과 몇 십분만에 인류사 최악의 참사를 기록하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그런 대참사를 전세계인이 동시에 지켜볼 수 있게 하였다. 미국은 아침 출근시간이었고 우리나라는 저녁밥상을 물리고 난 후라는 시차로 인해 생기는 거리감 외에는 너무도 생생한 중계가 이루어졌다.
이런 참사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던 미국 정부는 고층건물이 붕괴되기도 전에 ‘테러’라고 발 표하였다. 어떻게 그런 단정을 할 수 있는 정보가 주어 졌는지 궁금한데 그 이후 현재까지 저 가난한 나라 아프가니스탄의 한 인물이 이번 사태의 배후 조종자라는 점만큼은 요지부동이다. 그리하여 전면적인 공습을 결정하였고 곧 대규모 폭격이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이 활자화되어 대중 앞에 다가갔을 때는 이미 아프간은 초토화되어 있을지 모른다.
미국의 분노에 기가 질린 세계 각국은 앞을 다투어 미국의 보복을 지지하고 나섰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는 세계 각국에 대해 미국의 편에 설 것 인가 아니면 미국의 적으로 될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서슬퍼런 협박조의 성명을 연일 발표하였다. 그러니 미 국이 재채기만 하여도 병원에 입원하여야 할 처지에 있는 이 나라로서야 ‘전폭적인 지지’를 나타내지 않을 수 있겠나. 미국이 요청하지 않아도 미국이 점찍은 나라를 공습할 때 우리의 군대를 보내야 할 판인데 말이 다. 하긴 지난 90년 미국이 걸프전을 감행하던 당시에 도 적잖은 돈을 동맹국의 분담국 명분으로 준 관례도 있고하니...
이번 사태를 맞아 미국은 그야말로 국제경찰국가로서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간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표본인 나라라는 인상은 오간데없다. 오로지 국제경찰국을 해꼬지한 결과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보복과 응징의 결의에 가득찬 그네 나라의 단결에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남녀노소 인종을 가리지 않고 손에 손에 성조기를 들고 응징을 다짐하는 그네들에게서 그간 감춰왔던 파시즘의 광분을 보게 된다. 그네들의 뉴욕지도에서 세계무역센터가 지워진 만큼 이참에 아프간을, 아니 미국을 반대하는 나라들은 아예 세계지도에서 없애버리려는 전쟁의 광기를 본다. 이것이 그네들이 그간 입에 발린 듯 읊어대던 자유, 평화, 공존의 본질이었던가.
미국의 보복전쟁에 대한 일치단결은 미국내 유색인종 에게도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참사 직후 미국내에서는 아랍계로 보이는 미국인을 살해하였는가 하면 미국 의회 의 병력동원안에 유일한 반대표를 던진 흑인계 여성하원의원은 살해 위협을 받아 경찰의 보호하에 있다. 어느 상품선전 문구에 ‘모두가 예할 때 아니오하는 소신’은 미국내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듯 하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던 그 목소리나 행동이 이번에는 발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광분이 이번 참사에 대한 순간적인 반작용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에 숨겨져 왔던 본성일수도 있다. 자본주의 문명으로 그럴 싸하게 포장되었던 ‘야만’의 폭발 이라고나 할까.
혹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70년대 중반 바로 뉴욕 전역에 정전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발전소에 벼락이 떨어져 그랬던 것 같다. 일시적인 정전이 끝나고 난 뒤의 뉴욕은 그야말로 전쟁을 치 룬 뒤의 모습이었다. 밝은 빛 아래에서는 세계 제일의 도시 사람으로서 점잖은 체 했던 그네들이 정전으로 온 시가지가 칠흙같은 어둠에 잠기자 일시에 강도로 돌변 상점을 약탈하고 강간을 비롯한 온갖 강력범죄가 순식 간에 도시를 휩쓸었다.
문명으로 감춰진 그네들의 야만은 그렇게 나타난다.
부하뇌동이라는 말이 있다. 막말로, 어지간히 힘깨나 쓴다는 놈이 나서면 그 하수인들끼지 눈을 부라린다는 말이다. 미국의 광분에 덩달아 일본이 쌍수를 들고 나왔다. 오히려 더 설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일본은 미국의 보복전에 기꺼이 일본군대를 파견하겠다고 나섰다. 올해들어 부쩍 극우파의 준동이 격심해진 일본으로 서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사태 직후부터 이스라엘은 연일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자신들의 절대 적 지지국인 미국이 공격 당했으니 가만이 있을 수 없다는 충성의 표시일까?
확실히 세계는 지금 광기의 도가니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보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도 그 광기는 전혀 제지를 받지 않고 있다. 그 광기의 배후에서 음흉하게 웃고 있을 군수산업재벌들의 모습과 지금 척박한 땅일지라도 저희들의 땅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저 가난한 아프간의 난민들 모습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댸왕이시여, 도리에 멎는 행위를 실천하는 수왕이 악을 저지른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먼저 자비심을 일으키고 지혜로써 관찰해 다섯가지 일을 생각해 본 뒤에 다스려야 합니다.
다섯가지란 첫째로 사실에 의지하고 사실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이요 둘째로 때에 의지하고 때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이요 셋째로 도리에 의지하고 도리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이요 넷째로 부드러운 말에 의지하고 거친 말에 의지하지 않음이요 다섯째로 자비로운 마음에 의지하고 성냄에 의지하지 않는 일입니다.” [니건 자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미국이 보복전에 앞서 잠시 냉정을 되찾길 바란다. 그 공습에 드는 돈을 가난한 나라에 보시하길 바란다. 미국의 희생자에 대한 추모도 당연하지만 그간 미국의 공습으로 희생된 무슬림을 비롯한 이들에 대한 추모도 잊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 간절하다. 그것이 자비요 때를 생각함이요 싸우지 않고도 승리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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