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금줄 문화와 밀교의 만다라작법

페이지 정보

호수 27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10-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생활속의 밀교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9 17:36 조회 2,719회

본문

연재글: 법장원 연구소 (회)

금줄 문화와 밀교의 만다라작법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60, 70년대 까지만 해도 애기가 태어난 집의 대문에는 반드시 새끼를 매달았 었다. 흔히 ‘금줄’ “검줄’ 혹은 ‘인줄’로 불리는 새끼 줄이다. 깨끗한 볏짚으로 꼬아 내걸었던 새끼줄은 단순한 볏짚이 아닌 생명탄생의 신호요 상징물이었다.

그런데, 왜 새끼줄을 ‘금줄’이라 했을까. 금줄에는 분명 구분과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 액운을 없앤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니까 금줄의 안쪽, 즉 산모와 아기가 있는 곳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는 신성한 곳이므로 그 바깥과는 분명 구분 되는 것이요, 새끼줄로 경계를 표시하여 부정을 없애어 산모와 아기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금지의 줄’이다. 당연히 새끼줄은 금줄일 밖에 없다.

금줄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과도 아주 밀접해 있다. 장담그는 장독대나 부엌, 뒷간 등 집안 곳곳에도 금줄을 쳤다. 금줄로 부정을 막으므로써 장맛을 더욱 낸다고 믿었던 것이다.

밀교의례에서도 우리의 금줄문화와 유사한 예를 보게 된다. 밀교의 만다라작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만다라법(히휴부)에서 우리의 금줄문화와 유사 한 ‘경계, 금기,성역공간’ 의 경우를 보게 된다.

‘금강궐’이 한 예다. 금강궐은 만다라를 건립하기 전에 도량이나 토단의 네 구석에 세우는 길다란 막대 기둥이다. 사방궐이라고도 한다. 금강궐의 역할은 당연히 악마의 침입을 막고, 단과 도량을 견고히 하여 여하한 악마도 도량의 지계를 동요치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금강궐은 단순한 막대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의 상징’이요, ‘중대한 임무를 띤 막대기’이다.

금강궐 외에도 팔방계를 결하기 위해 두르는 금강장, 상하 허공의 상방계 를 망으로 펼쳐서 결하는 금강망등의 밀교 결계법들은 우리의 금줄과 많이 닮았다.

우리의 금줄과 마찬가지로 구획, 경계, 결계, 성역을 표시하며, 마중과 악귀의 침입을 막고, 부정으로부터 보호하며, 액운을 없애는 역할을 한다.

 또, 밀교에서는 만다라 토단이나 도량 주위에 구마 이를 바르는데, 우리의 경우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이나, 당수나무에 금줄을 치고 그 주위에 붉은 흙을 뿌리는 동제나 당산제와 흡사하다. 우리의 붉은색은 액운과 부정, 악귀를 물리치는 효과를 지닌다.

밀교의 구마이는 땅에 닿지 않은 소똥으로, 단의 치지, 견고,도량의 청정을 의미하고 있다. 밀교의 구마이가 당산제의 붉은 흙에 비유된다.

우리의 금줄문화가 액운을 없애고 풍요를 기원하는 제재초복에 있다면, 밀교의 결계문화는 궁극적인 불신의 성취에 있다. 결국 밀교의 작법은 성불을 위한 과정 이요, 현세의 방편인 것 이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도 금줄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의미와 기능이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줄에는 억압과 통제만이 있을 뿐이다. 

사건현장의「수사 중 출입금지」를 알리는 표식줄에서부터, 접근금지와 통제의 살벌함만이 강조되고 있다. 금줄의 신성함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 나에게 금줄은 무엇일까.

삿된 마음을 조복하고 퇴전하지 않는 용맹정진. 그 것이 나의 금줄이 아닐까.

〈법장원 밀교연구소 법경〉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