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릴 새 없이 쏟아지는 갖가지 상품과 광고로 인해 소비자는 항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아침 신문을 들면 새로운 소식보다 먼저 속지광고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이런저런 상품이 있다, 아주 값싸게 판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후회한다라는 현혹이 눈을 가린다. 개중에는 아주 그럴듯한 정보 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전적으로 믿다가는 발등 찍히기 십상이다.

나는 지난 해 선물을 하나 받았다. 전자수첩이다. 요즘처럼 한 사람에게 여러 종류의 전화번호를 갖고 있는 시절에 일일히 적자니 수첩이 여간 볼썽 사납게 되지 않아 평소에 꼭 갖고 싶 었던 전자제품이었다. 아주 적절하게 선물을 받았고 한 일년 넘게 대단히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워낙 정밀하고 충격에 민감한 제품인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주의 깊게 사용하였다. 제품의 사용설명서와 주의사항을 머리속 에 꼭 챙겼음은 물론이다. 특히 전자 수첩은 전지를 갈 때 전원이 완전 끊 지지 않도록 전지를 한꺼번에 갈지 않고 두개 중 하나를 갈고 나서 후에 나머지 전지를 갈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입력된 자료가 모두 날라가게 된다. 이렇게 주의 깊게 사 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약 두달 전에 멀 쩡하게 사용하던 전자수첩이 갑자기 작동되지 않았다. 

이리저리 점검을 해보아도 영 멍청해진 전자수첩이 되살 아나지 않았다. 더 건드려봐야 문제만 커질 것 같아 즉시 제조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로 들어가 제품고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신통한 답변을 들을 수 없어 서비스센터에 문의하였다. 그곳의 말인즉, 전화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니 센터로 갖고 오라고 하였다. 서울 구의동에 있는 센터에 제품을 맡겼는데 그곳의 설명에 따르면, 회로의 선이 외부 충격으로 끊어졌다는것이다. 더욱 분개한 것은 그동안 입력된 전화번호가 모두 지워 져 복구가 안된다는 것이다. 각설하 고, 센터와의 실랑이로서는 해결될 문 제가 아니었기에 다시 제조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음과 같은 요지 의 항의 편지를 남겼다. ‘귀사의 전자 제품을 사용설명서와 주의사항에 있 는대로 대단히 주의하여 사용하였다. 그런데도 전자회로의 선이 끊어져 수 첩 안에 입력된 자료가 모두 지워졌 다. 사소한 전화번호라고 치부할지 모 르지만 나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자료 들이다. 만일 내가 영업하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거래처가 모두 끊어질 판 아니나? 귀사의 성의 있는 답변을 촉 구한다. 만일 빠른 시일내 성의 있는 자세가 없을 경우 인터넷을 통해 귀사의 제품을 사용하다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을 사람을 모아 대대적인 귀사제품의 불량성을 폭로하고, 집단적인 배상운동을 벌이겠다.’  인터넷 시대, 전자통신망의 위력은 실로 업수히 볼 것이 아니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이런 소비자권리보호운 동의 사례를 소개하겠는데, 역시 전자 제품을 다루는 회사라서 그런지 제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회사제품의 결함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결함을 보완한 제품을 생산하여 시판 중 이다. 이미 사용하신 제품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실에 사과한다. 회사의 성의로 전자수첩과 개인용컴퓨터를 연결하여 서로 데이타를 호환할 수 있는 연결장치를 우송하여 주겠다.’는 답변에 이어 다음 날 약속대로 연결장치 등을 소포로 전달 받았다. 그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더라도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관철한 사례 가 될 것이다.

권리는 지키려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부당한 피해를 입고 묵묵히 지낸 다면 앞으로도 영원히 부당한 피해를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선한 것은 절대 아니다. 권리를 지키려는 것이 탐욕은 아니다. 자신이 부당하다고 여긴다면 어떻게든 표현하라. 도움을 줄 사람과 문제 해결의 방법은 그때 찾아진다. 옛말에 ‘병 자랑 하라’고 하지 않았든가.

〈자료제공: 종단협소비자보호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