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우란분절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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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5호 발행인 안종호 발간일 1999-07-19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서동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종단협 소비자보호워원회 실장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3 07:53 조회 4,044회본문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어머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간단히 점심을 드셨다. 소화기능이 거의 다하신 탓에 밥을 물에 말아 드시는 정도였다. 늘 그랬듯이 창가에 놓여진 의자에 어머님을 앉혀 드렸다. 창밖으로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만을 물끄러미 지켜보시길 삼년째였다.
어느 때던가, 그렇게 지켜보다가 문득 당신도 밖에 나가시겠다고 신발을 신겨 달라 하신 적이 있었다. 어머님 연줄의 동네분들이 창 아래 길에 나와 한창 얘기 를 나누시는 모습에 깜빡 당신의 몸 상태를 잊으셨다. 그저 귓등으로 듣고만 있는 자식에게 투정을 부리셨다.
“나, 나가야겠다. 신발 찾아줘라. 지팡 이도 내놓고…”
이미 신체의 정상 기능을 잃은 탓에 제 대로 발음은 안되지만 그 뜻은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 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걷기는커녕 당신 혼자 일어설 수 없는 분이었다. 업고 내려가지 않으면 바깥은 그저 바깥에 불과했다.,
점심을 드신 후 창가에 앉혀드렸으나 어쩐일인지 바깥을 쳐다보지 않으셨다. 대신, 밖으로 난 창과는 90도로 다른 방 향에 있는 출입문 쪽만 초점없이 쳐다보 고만 계셨다. 마치 그 문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제 누가 그 문을 통 해 들어올려고 준비하고 있는지도 몰랐 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당신은 보고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 거기 누가 있어요?”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던 존재. 그 존재 의 실체를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어 머니의 통증은 그때부터였다. 배가 아프 시다고 했다. 근래들어 잦아진 통증이었 기에 처음에는 건성으로 들었다. 하지만 정도가 심해졌다. 문밖에 찾아온 존재는 어머니를 모시고 갈 손님이었다.
혹독한 통증은 무려 5시간이나 계속되 었다. 이승으로부터 떠나는 통과의례는 그토록 심하게 어머니를 괴롭혔다. 마침 일요일이었기에 가까운데 사시는 고모님 과 큰형님, 시집간 여동생, 아우들에 당 신의 손자들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모인 피붙이들은 눈물로 어머님의 고통을 지 켜보아야 했다. 누구라도 나눠가질 수 없 는, 당신이 가져갈 ‘시간’ 이었다. 그 시간 을 고모님은 짧게 정의했다.
,“마지막 정을 떼려는게다.”
이승에 메인 정을 뗀다는 뜻이었다. 당 신에게 아직 남은 미련이 당신으로하여 금 당신의 손을 잡고 끌고 가려는 손님을 거부하게 하는 것일까.
“어머니. 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만큼이면 충분해요. 그냥 편히 길 떠나세요.”
늘 주무시고 일어녀시던 당신의 방, 당 신의 자리에서 이제 뜬 구름 한 조각같은 생사를 나누신다. 무심히 제절로 도는 녹 음기에서 흘러나오는 금강경 독송소리가 방안을 넘어 집 곳곳에 배인다. 바깥은 봄이었다.
어머님은 화장을 싫어하셨다.
“내가 이 다음에 죽더라도 화장은 하지 마라.”
그런 '어머님께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지요.”
어머님의 병세가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 되었을 때부터 속으로 화장을 결정 짓 고 있었다. 마땅히 모실 산도 없거니와 인연을 다한 육신이 대지를 차지하고 있 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뜻을 거스려야 나 또한 언젠가 당신을 쫓 아 갈 때 남은 이들에 의해 태워질 것이 기 때문에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 고집으로 인연 다한 어머님 육신에 불을 넣었다. “어머니이. 불 들어가요오.”
어머님 고향은 함경도였다. 해방 몇 해 전에 남선땅 서울에 계신 이종오빠집에 오고가다가 그냥 서울에 살게 되었다. 아 버님은 충남에서 태어났으나 어릴적 고향을 떠나 노동으로 조선팔도를 떠도신 분이다. 한국전쟁 직전 두 분이 만났다. 험한 시절, 갖은 고생을 모두 겪으신 분 이다. 적빈하였다고나 할까. 인생의 부침도 있긴 있었다. 남의 부러움을 받는 호사도 겪었지만 그 기간은 그 분들의 인 생에 있어 지극히 짧았다. 아버님은 어머 님보다 7년 전에 돌아가셨다. 그 분들의 살아온 얘기를 기록으로 남길려던 계획 을 갖고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 궁무진했을 당신들 시대의 이야기.
연극이 끝나서 무대의 막이 내려오듯 이승의 인연이 다해 서서히 잠기는 눈꺼 풀 밖으로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점차 가려지는 순간을 맞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속에 품었던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들려 주고, 문밖에 대기중이던 길손님과 함께 툴툴 멀길 떠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리라. 세 상에는 그렇지 못한 이들도 얼마나 많은 가.
우란분절이 다가온다. 선망부모의 천 를 비는 날이다. 앞서 간 분들의 애틋한 사연을 각박한 세월탓에 잊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이 모처럼 그리움을 담아내는 날이다. 인연있었든 아니든 앞서 간 모든 이들의 천도를 빌어야 겠다. 그 공덕으로 살아 있는 모든 중생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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