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바르고 고요한 마음을 갖는 수행 ‘인욕바라밀’

페이지 정보

호수 268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3-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법문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정사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3-07 13:28 조회 2,086회

본문

연재글: BBS 부산불교방송 법경 정사의 수요법문 (5회)

바르고 고요한 마음을 갖는 수행 ‘인욕바라밀’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진심과 원망심을 이겨내는 것도 인욕
인토(忍土)에서 벗어나면 바로 그것이 정토(淨土)가 되는 것


불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육바라밀 실천 가운데 두 번째 수행인 지계행(持戒行)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지계(持戒)란 계를 지킨다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청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청정한 생활은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해야 한다는 의미인데요. 몸을 다스리고, 입과 말을 제어하는 것은 그나마 어렵지만은 않은데요. 가장 힘든 것이 마음 다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을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욕심내거나 화내지 않는 것도 어렵고, 분노에 따른 폭력과 폭행을 순간적으로  멈추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 이전에 그러한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다짐을 한다고, 맹세를 한다고 해서 금방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으로부터 받는 멸시나 모욕, 비난의 욕(辱)됨을 참기 어렵고, 또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탐심(貪心)과 진심(瞋心)을 잠재우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욕됨을 이기고 마음 다스리는 것이 육바라밀 가운데 가장 어려운 실천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인욕(忍辱)에 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인욕은 참는 것을 말하는데요, 무엇을 참는가 하면, 욕(辱)됨을 참는다는 것입니다. 욕(辱)이란 욕설(辱說)의 줄임말인데요.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이나, 잘못을 꾸짖거나 나무라는 말, 인격적으로 당하는 수치스러운 말을 가리킵니다. 비방과 험담 등도 여기에 들어가지요.
그래서 인욕이란, 남이 나를 욕하거나 때리거나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을 능히 참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훼방하는데 이를 참는 것이 인욕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자신의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진심과 원망심을 이겨내는 것도 인욕에 들어갑니다.
즉, 화나고 짜증나는 일을 참는 것이며, 억울함과 고통과 괴로움을 이겨내는 것도 인욕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불선(不善)한, 좋지 못한 것을 이겨내는 것이 모두 인욕입니다.
인욕(忍辱) 외에 안인(安忍)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둘을 굳이 구분한다면, 인욕(忍辱)은 그냥 참고 이겨내는 것이라면, 안인(安忍)은 참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애쓰지도 않아도, 저절로 참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힘과 용을 써가며 억지로 참지 않아도 저절로 참아지고 견디어지는 것이 안인입니다.
‘세상에 그런 안인행이 어디에 있느냐, 그리고 참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어떻게 저절로 쉽게 참아질 수 있느냐’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많이 닦아서, 크고 둥글고 가득 찬 마음이 되면 충분히 안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능성으로서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요. 다만 우리가 그 정도의 경지까지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라고 여기고 발심하지 않을 뿐입니다.
인욕과 안인을 비교하자면, 인욕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것이 안인(安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인(安忍)이,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참아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왕에 우리가 인욕을 행한다면, 저절로 참아지는 안인의 단계에 오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안인을 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음공부를 단단히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생활 가운데 안인을 행하는 공부가 바로 기도이고 불공이고 수행입니다.
생활 속에서 무엇이 안인(安忍)인가 하면, 다른 사람이 욕을 하거나 중상모략을 하거나, 비방을 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왕따를 시켜도 개의치 않고 마음에 분심(忿心)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안인입니다.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이 마치 송곳으로 나의 옆구리를 찌르는 것과 같이 말로써 내게 고통을 준다고 하여도 화내지 않고 폭력을 쓰거나 되갚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잘 참아낼 수 있을까요? 아마 참기는커녕 당장 되갚아 주려는 마음뿐이고 복수와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앙심을 가슴 속에 품고서 언젠가는 기어이 되갚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인과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지 못한 것은 바람으로 날려 보내고, 물처럼 부드럽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바람과 물에는 걸림이 없습니다. 그물과 걸림이 없으므로, 내 마음 속의 악심(惡心)과 분심(忿心)은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가게 됩니다. 이것이 인욕입니다. 더욱 무르익으면 그것이 안인(安忍)이 됩니다.
또 ‘인욕’은 어떤 박해나 곤욕을 참고 용서하는 생활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고통을 참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고통을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여서 원한과 노여움을 용서와 평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고통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감수법(甘受法)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달게 받아들이면 바로 고통과 원한과 노여움은 눈 녹듯 없어지거나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이를 불교수행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오로지 불도(佛道)를 이루고자 여러 가지로 힘든 것을 피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마장과 맞서 싸워 이겨내고 참아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욕이 온갖 모욕과 번뇌를 참고 어려움을 극복하여 안주하는 것이라고는 말하지만, 실제로 생활 가운데서 인욕을 행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대부분 자기감정에 못 이겨 악심과 분심을 일으키고 맙니다.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항상 성내고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못하고 표출하고 있는 것이 중생입니다. 그러한 중생세계를 인토(忍土)라고 합니다. 참아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인토인 것입니다. 또 당연히 참고 이겨내어야 하기 때문에 인토(忍土)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고 이겨내어야 합니다. 인토(忍土)에서 벗어나면 바로 그것이 정토(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참는 것에 익숙해져, 하나의 병처럼 규정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에게만 ‘화병(火病)’이란 게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는 것도 잘못하면 병이 됩니다. 바로 화병입니다. 그래서 마냥 참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막무가내로 화를 내어서도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를 다스리는가. 그것은 불교공부를 반복하는 데서 가능합니다. 양약이나 한약으로 다스리기보다 마음공부를 통해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마음공부밖에 없습니다. 불교의 마음공부 속에서 참을 줄 알아야 인욕의 참 공부가 되고, 화병이 되지 않습니다.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침으로써 집착과 편견을 다스리고 일체가 고(苦)임을 자각하는 데서 고(苦)는 줄어듭니다.
참는 것이 부족하면, 분노조절장애를 일으켜 종국에는 씻지 못할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참을 인(忍)을 세 번 새기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참는 것은 정말 훌륭하고 값진 실천행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육근(六根)을 잘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욕이고, 기도이자 불공입니다. 그것이 곧 수행입니다.
그러나 중생은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고 상처도 잘 받습니다. 또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 감내하지 못하고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맙니다. 특히 정신적인 고통은 참아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아내야 합니다. 참지 못하면 결국 수없이 악업을 짓게 됩니다. 선업의 씨앗을 잘라버리니 첫 번째 악업이오, 그 행동으로 또다른 악과보(惡果報)를 일으키니 이것이 두 번째 악업입니다. 그러므로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이 선업이오, 짓지 않기 위해서 참는 것이 곧 선행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절대 노여워하거나 흥분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엷어집니다. 엷어지고 허물어 없어질 것인데, 왜 거기에 마음을 두고 속을 끓이고 있습니까?
일체는 무상하고 무상하므로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이를 깨칠 때 악심(惡心)과 비심(非心), 부정심(不淨心)과 탁심(濁心)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인욕을 행한다는 것은 곧 정심(正心)과 정정심(正定心)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심(正心)과 정정심(正定心)은 바른 마음, 좋은 마음, 깨끗한 마음이오 고요한 마음입니다. 좋고 나쁨에 걸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인욕행이란 마음을 바로 잡고,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기도와 불공을 통해 정심(正心)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심(正心)을 갖는 것이 곧 인욕행의 시작입니다. 성불하십시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