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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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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1호 발행인 총지화 발간일 2001-0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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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7 08:01 조회 2,63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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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시대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인격의 소유자가 사람됨됨이의 표상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사회든 가정이든 모든 관계를 막론하고 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믿음이 늘 변함없이 굳건하게 있다면야 다행이지만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시 류에 따라, 혹은 적절한 잇속에 따라 혹은 비록 생기는 것은 없을지 모르지만 나중 뭔지 기대되  바가 있어 믿음이 배신으로 바뀐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든 서양이든 간에 바위처럼 흔들림 없는 인격의 소유자를 사람됨됨 이의 표상으로 삼고 있는 것일게다. 어떤 경우 세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집스러울 정도 로 변함없는 사람을 벽창호라고 힐난하기도 하지만, 그 힐난의 깊은 속내에는 오히려 본받을 바가 있음을 내포한다고 보게 된다.


세태의 변화로 인해 인문사회과학은 뒷전이 되어 마침내 전문서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

지난 해 말 서울의 신촌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이 마침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전 그 서점을 간혹 들렀던 바가 있어 안타까움 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미 세태의 변화로 인해 인문사회과학이 뒷전으로 밀렸고 무슨 첨단정보 화 관련 서적이든가 아니면 월간지, 그것도 주로 이삼십대의 젊은 층을 겨% 여성, 연예잡지가

서점의 판매대를 장악한지 꽤 된다. 한술더떠 공상문학, 이른바 판타지소설이 장안의 지가를 조정 할 정도가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니 벽창호처럼 시대의 조류에도 아랑곳없이 인문사회 과학서적만을 전문으로 판다는 것은 앉아서 돈을 까먹겠다는 의지의 소산일게다. 그런 모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세태에 밀려 자신의 의지 를 저버린 서점의 주인 심정이야 여북했을까.


저 광주의 그 참담한 학살의 소식을 담았던 누런 갱지로 엮어졌던 그 소식지를 받아들고 부들 부들 떨었던 곳

지난 시절, 지금은 아득하게 잊어버린 그 시절,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았던 칠팔십년 대를 가슴앓이하며 살았던 이들에게 인문사회과 학을 전문으로 취급하던 서점은 서점 이상의 의미 를 갖고 있었다. 시인 양성우가 단적으로 표현하 였듯이 ‘겨울공화국’의 시대에 그래도 %을 간 직하고 있던 공간이었다. 온갖 곳의 서점이 기껏 해야 군부의 검열을 통과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 였지만 그곳에 가면 민주주의의 한가닥 따스한 온기가 서려 있었다. 민중의 고혈이 얼마나 값진 것 인가를 담고 있는 서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명한 어문학자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었던 브레이트의 시가 이름없는 청년에 의해 거칠게 번역되어 불법적으로 간행된 시집을 볼 수 있었고 러시아혁 명의 지도자가 펴낸 ‘무엇을 할 것인가’ 일본판을 번역한, 그것도 정식활자가 아닌 구식타자기로 찍어 복사본으로 나돌던 책자도 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 가면 따스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광포한 시대를 밑둥부터 갈아엎으려는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이었다. 서로 알지는 못해도 그곳을 드나든다는 자체로 ‘동지적 연대 감’ 을 충분히 느끼는 사람들이다. 철필로 긁어 배 포하던 소식지, 저 광주의 그 참담한 학살의 소식 을 담았던 누런 갱지로 엮어졌던 그 소식지를 받 아들고 부들부들 떨었던 곳. 그곳이 지금은 천연 기념물처럼 몇곳 안남은 인문사회과학서 점이었 다. 광화문의 털보서점, 그 맞은 편의 논장, 대학의 인근에 있었던 광장, 장백, 알, 인 그리고 지방의 각 대학가에 뭔지 생소한 이름 내세운 서점들. 그런 곳이 이제 두어 곳이나 남았나….


우리사회는 배신이 합리화되고 동토를 녹이려 던 이들의 정열은 먼 전설이 되다

그런 서점이 점차 사라지면서 아니 그 서점에 서 함께 가슴앓이를 하던 사람들이 점차 돈과 명 예를 좇아 자신들의 과거를 저버리면서 우리사회 는 배신이 합리화되고 동토를 녹이려던 이들의 정열은 먼 전설이 되었다. 동토에 몸바쳐 싸웠던 전사들의 이름조차 까맣게 지워버리고 그저 먹고 사는 일에 익숙해진 이들이 되어 권력의 재생산 기반이 되었다.

우리 시대 영웅적인 전사의 모범을 보였던 김남주시인은 이렇게 가슴 아파하였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나는/ 갑자기 지난날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다/ 숙박계에 가짜 이름을 적어놓고 뜬눈의 밤을 새웠던 싸구려 여 인숙들/ 날이 새는 것을 두려워했던 어둠의 골목들/ 차라리 어둡고 괴로운 시절이라면/ 가시 덤불 속에서 깜박깜박 어둠을 쫓는 시늉이나 하 다가/ 날이 새면 스러지고 마는 개똥벌레라도 될 것을/ 차라리 춥고 배고픈 시절이라면/ 바람 찬 언덕에서 늙은 상수리나무쯤으로 떨다가/ 나무꾼 의 도끼에 찍혀 땔감이라도 쓰여질 것을/…’(유 고집의 시, “근황"에서)


과거를 팔아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정권의 안위를 거론하고 사라진 자리에는 돈과 명예가 또아리를 튼다

인사동의 허름한 술집도 사라졌다. 대신 국적도 불명한 술집이 들어서고 저 동남아 뒷골목의 난장이나 다름없는 좌판의 장사치들이 설친다. 혁명을 노래하던 사회과학서점이 사라졌다. 대신 싸구려 연애소 설이나 터무니없는 공상무협소 설류가 사람의 의식을 농락한다. 전사가 사라졌다. 대신 과거를 팔아 정치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정권의 안위를 거론한다.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돈과 명예가 또아리 틀어 그 혀를 날름댄다. 감격도 없고 의리도 없고 깃발도 없고 진짜 사람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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