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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여래를 교주로, 준제법과 사종수법 등 실천수행 체계 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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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69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4-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창종 50주년 특집 서브카테고리 총지종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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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4-07 14:20 조회 2,24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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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01. 전사 : 정통밀교종단의 발아 (2회)

대일여래를 교주로, 준제법과 사종수법 등 실천수행 체계 정립
서울선교부, 교화의 시작 ②

회당 대종사의 넓은 도량과 인품, 원정 대성사의 지혜와 박식한 교학을 바탕으로 진각종은 나날이 발전했다. 1963년 회당 대종사(대한불교진각종을 개종한 창종주로서 진각종 공식 칭호인 ‘진각성존 회당 손규상 대종사’에 준해 본지에서는 회당 대종사로 기술한다.)가 입적한 후 종단의 최고지도자인 총인직을 이은 원정 대성사는 통리원, 종의회, 사감원의 체계를 갖추고 진각종이라는 종단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했다. 현재 진각종 총본산이 있는 하월곡동 대지를 매입하여 불사를 시작, 종조비와 사리탑을 비롯해 회당 대종사의 위업을 추모하는 불사를 진행했다. 교화에 가일층 매진하여 진각종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갈수록 커져가는 종단의 규모에 걸맞는 경궤와 수행법을 정립하여 밀교종단으로서의 정당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교리적 기반을 탄탄히 하는 데에도 열정을 쏟았다.

진각종과의 석별
대성사는 신구의(身口意) 삼밀(三密)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밀교의 의궤와 수행법을 갈무리하기 위해 경전을 탐독했다. 특히 1968년 한일불교도대회에서 삼밀의궤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일본불교 대표의 지적을 계기로 정통 밀교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매진했다. 연구를 거듭한 결과 『불설대승장엄보왕경』과 『칠구지불모대다라니경』 등에 육자대명왕진언과 준제진언이 설해진 것과 『현밀원통성불심요집』에 밀교의궤법이 수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직접 수행함으로써 검증을 마무리한 대성사는 1971년 이의 시행을 원의회와 종의회에 제안하여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불명확하고 불합리한 의궤를 보완해야 한다는 데 대다수의 승직자와 교도들이 공감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당 대종사 재세 시 시행했던 수행법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반대 입장이 대두되면서 종단은 흔들렸다.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고 분종의 조짐마저 보였다. 결단을 내려야했다. 원정 대성사는 20여 년간 회당 대종사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온 종단의 앞날을 먼저 생각했다. 분열을 원치 않았던 대성사는 1971년 12월 총인직을 비롯한 모든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회당 대종사의 영전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대성사를 따르던 이들의 동요와 분란을 막기 위해 아예 종적을 감추고 칩거에 들어갔다.

백일정진과 깨달음
바른 밀교수행법을 정립하여 진각종을 정통밀교종단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려던 대성사의 뜻은 무산되었다. 정법 밀교에 대한 무지와 종단을 혼란에 빠트릴지 모른다는 오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생을 걸고 실천했던 중생구제의 대원력을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옴마니반메훔으로 불철주야 기도해 생사가 위태로웠던 아들을 구했고, 법신 부처님의 신묘하고 불가사의한 가지력(加持力)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진언염송의 가피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수많은 밀교경전 속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잊힌 비밀의궤법과 다라니의 밀교수행법을 이대로 묻어야 하는가?
정통밀교종단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것은 정녕 헛된 열망인가?

원정 대성사는 1972년 1월 1일 새벽, 영등포구 상도동의 은거지에서 다시 정진을 시작했다. 세상에 본래 존재하는 법신 부처님을 마음 안에 온전히 담기 위해 염송했다. 민생고에 허덕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참된 밀교수행법을 다시 확증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과 해탈을 얻는 진리의 방편을 체득하고자 온 몸을 던졌다. 정진이 이어졌다. 두 손으로 맺은 결인은 우주 법계의 법신 부처님과 자비의 화현 관세음보살님, 그리고 간절한 진언행자를 하나로 이어주었다. 지극한 진언 염송이 거듭되었다. 우주의 소리와 고통 받는 중생들의 소망이 소용돌이쳤다. 진언염송의 뜨거운 염원과 정통·정법의 밀교종단 창종을 위한 서원이 대성사의 몸과 마음을 채웠다.
백 일째 되는 4월 7일 밤, 원정 대성사는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금관을 전해 받고, 다음날 밤 다시,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한 줄기 서광과 함께 ‘대승장엄보왕경과 준제관음법으로 교화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관세음보살님은 현몽으로 대성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한 점 티 없이 바르고 깨끗하고 완전무결한 밀교법으로 중생을 고난에서 구하라는 불보살님의 부촉이었다.
곧바로 교상확립에 착수했다. 정통밀교종단으로서 법신불인 대일여래 비로자나부처님을 교주로 모셨다. 『불설대승장엄보왕경』과 『대승이취육바라밀다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아 교리의 기틀을 갖췄다. 그리고 『현밀원통성불심요집』 등 밀교경전에 근거하여 준제법과 사종수법의 밀교비법과 관법, 의궤 등 실천수행의 체계를 정립했다.

서울선교부, 교화의 시작
각고의 정진과 부처님의 가지력에 힘입어 정순하고 완전무결한 정통밀교 사상과 수행체계를 완성한 원정 대성사는 드디어 1972년 8월 21일, 백일 정진하던 곳을 떠나 상봉동의 자그마한 2층 양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성사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록정, 환당, 청암, 현수, 불멸심, 법장화, 대자행, 복지화 등 진각종의 스승과 교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대성사와 마주한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밀교의 비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한 원정 대성사의 근엄하고 단정한 위의와 확신에 찬 법문 앞에 두 손이 모아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옴마니반메훔’ 염송이 절로 솟구쳤다. 스승과 교도들은 바른 밀교수행법으로 중생을 구제할 뜻을 세운 원정 대성사와 앞날을 함께 하기로 결의했다.
8월 27일, 마침내 새로운 불교 교화의 세상이 열렸다. 대일여래 비로자나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힘이 중생들의 기도에 마땅히 모습을 드러내는 진언밀교의 교화가 시작되었다. 상봉동 양옥집은 서울선교부의 근거지가 되었다.
큰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남녀노소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미 진각종 총인 시절부터 대성사를 흠모해 애타게 찾아 헤매던 이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서울에서는 물론 멀리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이 문을 두드렸다. 이십 리 밖에서 걸어오는 교도들이 있을 정도였다. 이들에게는 고단한 삶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려운 자리라고 여겨 잔뜩 긴장하기도 했지만 자애로운 미소로 맞아주는 원정 대성사에게서 편안함을 얻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소연을 풀어놓았다. 먹고사는 문제, 고부간의 갈등, 부부 사이의 불화, 가족의 질병과 자식 걱정 등 눈물과 한숨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원정 대성사의 옷매무새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의 고민에 정성껏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밀교 수행법을 차분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간곡하게 일러주었다. 원정 대성사는 말을 맺으며 마지막 당부를 잊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법문으로 보여주실 것이니 반드시 불공부터 하시오.”
“법계에 물어보고 진실하고 간절하게 불공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터이니 꼭 그대로 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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