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계와 소승계의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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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4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5-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차차석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동국대 강사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8 09:30 조회 2,768회본문
특히 밀교의 사상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화엄경〉〉 은 대승 경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대승불교를 숭상 히면서도 대승계에 대한 정의가 미흡하 다는 점이다. 미흡히다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종단은 종단 독자적인 계율에 대한 입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편의 에 따라 관성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조계종을 예로 들어보자. 조계종은 장자 종단으로서 대승불교의 핵심인 반야사상에 입각해 있는〈〈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출가할 때는 남산율종의 정립 이래에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에서 숭상해온〈〈사분율〉〉에 따라 비구 250계를 받는다. 받기는 하지만 애초에 그것은 통과의례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킬 생각도 하지 않는다. 250계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애시당초 지킬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야사상을 주창히면서 대승불교 운동을 전개했던 불교운동가들은 250계의 시대 착오적 발상에 대해 그 현실성을 인정 하고, 붓다의 근본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붓다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소소계는 버려도 좋다는 말씀 을 제자인 아낸에게 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문제는 소소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자 더 이상 소소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암묵적인 동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제1차 결집 당시의 사정일 뿐, 시간의 경과는 새로운 사회와 문화 환경을 초래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행동양식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불교도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가 장 바람직한 대응일까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초기대승불교운동가들 중 에서 반야사상을 주창했던 운동가들은 십선계만 지키면 좋다고 결정하고 250계 를 십선계로 대치시켰던 것이다.
반야사상가들이 십선계를 주창했다면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는 종 단은 250계가 이닌 십선계만 지키면 될 것인데 왜 250 계를 지키는 것인가. 이것은 불교가 중 국에 전래되어' 일정한 시간을 거치면서 중국적으로 여과된 이후에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기 때문이며, 한국불교는 전반적으로 중국불교의 원심력 이내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불 의 중국 전래 이후 대략 3-4세기를 거치면서 학파불교가 등장한다. 학파불교란 관심있는 경전이나 율장, 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그룹의 탄생을 의미한다. 열반학파, 성실학파, 지론학파 등 많은 학파들이 생긴 가운데 율장을 연구하는 그룹이 탄생했다. 문제는 율장의 종류도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이 당나라 시대에' 들어와 종파불교로 전환 되는 가운데 율종은 모두 남산율종으로 통합 정리되었다. 이런 위대한 작업을 완성한 스님은 도선스님이다. 이 분이 남산율종을 통해 율종을 통합하기 전에 이 분은〈〈사분율〉〉을 연구히던 학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렇기에〈〈사분율 〉〉을 중심으로 중국율종을 통합했던 것 이다. 이후 남산율종의 전통은 각 종파에 그대로 흡수되어 동북아 3국의 불교 종단은 모두〈〈사분율〉〉에 의거하여 수계작법을 시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조계종이나 태고종도 이런 전통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은 대승을 표방히면서도 계율은 소승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소승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대승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대승불교운동 가들 스스로가 전통불교에 대해 그렇게 부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대 흐름에 뒤처진 계율, 개개 종단의 종지종풍과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계율을 받아 놓고 전통의 유지니 문화의 계승이니 운운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지면 불교의 교리에 입각해 말한다면 전통이란 것도 그 고정불변의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전통이니 문회니 하면서 그 진부성을 털어버리지 못한디면 무아, 무상의 법칙을 제대 로 파악하지 못한 어리석운 군중이 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을 상기하면 한국의 여타 종단은 더 이상 언급할 의 미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돌아가 대소승 계율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비구들의 구족계와 연관되어 있는 七界의 形가 바로 소승계에 해당하며, 혹은 대승계로 보고 각각의 계가 지니고 있는 현상을 구별한다.
대승계라 히더라도 칠도형 제외시킨 것은 이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를 단순화시켜 이제까지 정리된 대승계와 소승계의 차이점을 몇 가 지로 압축하여 설명히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의와 의지의 차이가 있다.
소승계는 자신의 깨달음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대승계는 대타적인 행동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둘째 마음가짐이 다르다.
소승계를 받을 때는 한 생애의 수지를 다짐하지만 대승계는 영겁토록 수지를 다짐핸다.
셋째 계를 주는 대상이 다르다.
소승계는 3세와 7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구족되어야 비로소 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승계는 지혜와 힘과 훌륭한 말씀과 의의와 잘 암송하고 잘 지닐 수 있는 보살을 매개체로 3세와 시방에 가득찬 부처님과 대지 위의 일체의 보살 앞에서 계를 받는다. 즉 소승계는 승가의 일원으로서 그것에 따르고자 하는 결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반면에 대승계는 시방의 3세 , 구체적으로는 석가모니부처님을 비롯한 과거의 다섯 스승과 현존하는 전계사에 따르는 것이므로 남에게 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소승계처럼 승보를 따르는 것이 이니라 불의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녯째 타율과 자율의 차이가 있다.
소승계는 계율에 따라 규제를 받지만 대승계는 자율적인 참회에 의지하고 있다.
다섯째 외형와 내형차이가 있다.
이것은 형식주의와 정신주의의 차이를 말한다.
여섯째 수형과 생형의 차이가 있다.
소승계는 수도의 과정에서 과오에 따라,계율을 적용하는 것이라면, 대승계는 〈〈범망경〉〉이 역설하듯이 본성계 즉 의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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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jpg 차차석 (동국대 강사) (24.6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4-18 09:3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