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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한 출가자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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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06-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종단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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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18 19:15 조회 2,6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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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한 출가자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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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차석(동국대 강사)

최근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고 말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치인들이 불교계 행사에 출입하고 있다. 불교신도로서 불교행사에 참석하는 일은 그다지 나무랄 일은 이니다. 이교도이면서도 대선이나 자치단체장 선거가 임박하니까 표를 의식해서 참석하는 것이다. 문제는 손님으로서 조용히 참석하고 가면 그만인데 그들을 위한 잔치집인양 떠벌이다 썰물 처럼 빠져나가 불교행사장을 엉망으로 만든다는데 있다. 따라서 차제에 불교인들의 각성을 촉구히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한마디로 최근 불교계는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있는가 의심스럽다. 모두 부처를 팔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이비들만 득시글거리는 것 같다.

경전에서는 출가자가 국가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초기불교에서는 국가의 권력에서 벗어나 승가 자체를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으므로 출가수행자가 국왕을 가까이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출가자가 국왕을 가까이 히면 열가지의 과실이 생긴다고.말하 고 있다.

〈〈증일아함경〉〉제42권〈결금품〉에서도 국왕을 가까이 하는 출가자는 열가지 비법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국왕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국왕이 요청하는 일이 있으면 우선 그 일을 들어주는 것이 타당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을 강조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강대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국 왕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보다 중요한 생각은 출가수행 자들은 “국가에 속하지 않는 존재” 즉 “국가를 벗어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불교에 한정된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인도사상사에서 구루로 지 칭되는 출가자들 일반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정교분리 원칙이 일찍이 설정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런 점 에서 국왕과 마찰을 피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따라서 국왕이 설사 불교도라 히더라도 “왕이 통치하는 국가의 영토를 칭찬하 거나 비방하지 마라. 또 왕이 뛰어나다느니 못났다느니 논하지 마라”고 말한다. 국사의 인연을 논하는 것은 멸진정에 이르지 못하는 일이며 사문의 정행법을 얻지 못하며, 심지어는 국사를 논하는 것은 정업이 아니라고 엄격하게 교훈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 자체는 승가가 추구하는 이념에 유익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단을 정략적으로 이용당할 우려도 했으리라 생각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의해 합당하지않고, 법에 합당하지 않으며, 범행에도 이르지않게 하고, 지도 정의도 아니고 열반에 이르는 길도 아니라고 보고 있다. (〈〈잡아함경〉〉권16)

현실적으로 정치가란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권위를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고 있다. 권력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백성들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고 보있다. 따라서 부처님은 국왕를 뱀과 같은 존재 혹은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훔쳐가는 도둑에 비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왕과 가까이 하는 출가자가 있디면 그는 마음에 사사로움이 있던가 없다고 히더라도 승단의 본질을 왜곡시키거나 파탄을 초래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승가의 이상과 같은 태도는 역사 속에서 쉽게 지켜질 수 없었다. 현실 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국왕과 결탁하거나 권력자와 결탁하여 승단을 이용하는 일이 많았다. 정교분리의 관념이 일반화되어 있는 인도에서 보다는 중국에서 그러한 경향은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소위 중국불교사에서 3무1종 의 법난으로 알려진 불교박해의 이면에는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정치적 이익 내지 사사로운 이익을 탐닉했기 때문에 그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을 발견또한 중국불교전래 초기에는 외국승려 들을 중심으로 불교교단의 정체성을 지 기 위해 노력하지만 5세기를 전후로 출가자들 스스로가 왕권에 기생하여 승단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일이 발생하며, 당 나라 시대 이후가 되면 불교교단은 완전히 국왕의 통제하에 어용불교로 전락하 는 것이다.

이것들을 미화하여 호국불교라 부르고, 이러한 호국사상을 정치적으로 이용 하기 위하여〈〈인왕호국반야경〉〉과 같은 위경을 만들어 교단과 불교도들을 오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도가 되면 근 불교 이래 사회개혁을 통해 불국정토를 건설하고 일체의 생명체들이 평화롭게 사는 사희를 건설하는 구심점이 되겠다던 불교도들의 염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국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불교도의 본분이요 출가자의 본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출가자 스스로 중국 고대의 봉건제도를 모방하여 승가를 조직하고, 출가자 내부에 계급제를 도입하여 왕명을 통해 교단을 통제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현실화 되어 버린 이래 현재까지 그것을 대단한 전통인 것처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불교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마침내는 중국불교가 망하는 지름길이 되었던 것이다.

근대 중국불교부흥을 이끌었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던 구양점은 중국불교 패망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선종이라 지적했는데 그 이유는 당나라 시대 이후 가장 권력과 유착했던 종파가 선종이며, 그러므로 불교 교단 본래의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라 본다.

현재 중공에서 선종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교단이 본래의 정체성을 버리고 가장 중국화된 불교가 바로 선종이라 보기 때문이다.

역사의 입장은 시각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자기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히면 결국 사라질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인도에서 지나친 밀교화가 불교의 역사적 퇴장을 재촉한 것이나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불교가 무비판적으로 중국불교를 수입한 이래 권력과 밀착하여 자기 정 성을 망실하였기에 성리학에 의해 퇴출 당하는 비운을 맞이한 것이나 동일한 시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불교의 절대적 영향권 안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불교는 외세에 의해 해방과 더불어 정교분리의 민주제도 아래서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나 자원의 질적 저하와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어떠한 정도인가에 따라 출가자의 지 위를 평가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 유신 이후 불교를 박해하자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국민들과 공동체 의식을 함양 하기 위해 교육사업, 사회복지사업, 문화사업 등에 매진한다. 그 결과 각 종단의 정체성을 침해받지 않고 세계불교계를 이끌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권력은 영원한 것이 이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불국정토를 건설하고, 국민들의 의식을 계몽하여 성숙한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불교도 들이 추구하는 참된 영원성의 추구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태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종단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면 신도들이 앞장서서 저들이 종단행사에 출입하는 것을 강력하게 제지해야 한다. 그것이 교단의 항구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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