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에 의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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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12-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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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4 07:57 조회 2,640회본문
글리벡이라는 약품이 있다. 이 약은 만성골수 백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생존을 가늠하는, 목숨과 같은 물질이다.
글리벡은 스위스 노바티스제약사에서 개발된 신약 이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실험결과 90%이상의 환자 에게서 혈액학적 반응과 50%정도의 주요세포유전 학적반응을 보인 그리고 기존의 항암제와는 달리 암세포만 공격하는 약이다. 워낙 탁월한 효능을 입 증한 약이라서 전세계 백혈병 환자에게는 그야말로 ‘희망’ 그 자체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획기적인 약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만성환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바로 약값 때문이다. 제조사인 노바티스는 한국내 글리벡의 시판가격을 캡슐당 2만5천원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만일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한국에 글리벡을 공급하지 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 경우 환자 한명의 한달 약값은 3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월 28일 글리벡의 약가를 캡슐당 1만7862원 으로 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이 경우에도 환자는 한달에 214만3440원의 약값을 들여야 한다. 서민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가는 약값이다.
글리벡이라는 약값이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제조사인 노바티스가 오랜 연구와 개발에 든 비용을 이 약에 반영한 결과이겠거니 하고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비단 글 리벡만이 아니라 유명한 ‘비아그라’ 나 여타의 신약 이라는 물질도 제조사의 결정에 따라 국제적인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신약이라는 물질만 개발하면 제조사는 엄청난 돈방석에 앉게 되어 있어 세계의 유명한 제약회사나 연구기관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 을 들여 신약개발에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약이라는 물질을 좀던 파고들면 제조가격에 포함되어 있는 ‘지적 재산권’으로 인해 약값이 터무니없이 산정 된다는 것을 알게된다. 신약을 개발하는 기업이나 연구소는 오랜 연구와 임상실험 등을 거쳐 세계에 내어놓기 이전에 이미 국제적인 특허를 얻어 놓는다. 이렇게 얻어낸 특허는 배타적인 권리, 즉 특허취득자의 양해 없이 비슷한 물질을 개발 판매할 수 없도록 하는 강제력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이 신약의 정확한 가격을 산정 할 수 없도록 하는 주요한 요인이다. 인류를 괴롭히는 불치의 병을 퇴치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갖고 있는 신약. 그러나 그 속에는 제조사의 배타적인 권리 가 담겨 있고 따라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 들로 하여금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게 만든다. 곧 ‘엿장수 마음대로 매겨진 신약의 가격’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 약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아니 차라리 그 약이 없는 것만 못할 것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특허에 의한 살인’을 수도 없이 겪고 있다.
우리가 불치의 병이라고 알고 있는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은 사실 불치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에이즈는 치료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도 에이즈로 인해 하루 8천명이 죽고 있다. 거의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민중이다. 미국과 유럽의 에이즈환자 가운데 85%가 지도부딘(에이즈약 물의 일종)을 복용하고 있어 적어도 발병을 안 이후 20년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백만명 이상으 로 추정되는 태국의 에이즈환자 가운데 이 약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1%도 못미친다. 아프리카 케냐의 경우 0.1%도 안되는 1천 내지 2천명 정도만이 에이즈치료제의 혜택을 입고 있다. 마치 에이즈하면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만연한 패륜적 감염질환 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도 그네들이 가난하여 치료 약을 ‘사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러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배타적 권리, 즉 특허로써 엄청나게 비싼 약값을 보장하여 준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매일 3만7천명이, 연간 천4백 만명이 치료약이 있으나 가난한 까닭에 제대로 손 한번 못써보고 감염성질환으로 죽고 있다.
올해 초 인도의 한 회사는 에이즈약물을 연간 350달러 정도로 보급하겠다고 하였다. 특허를 갖고 있는 제약회사의 가격은 연간 1만5천 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비해 무려 43분의 1 가격에 해당한다. 의약품 특허가 없는 나라에서 생산되는 우수한 의약 품의 가격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원개발자의 약가에 비해 최고 68분의 1 정도면 약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보급할 수 있다. 이쯤 되면 특허라는 명목으로 선진국의 제약자본이 얼마나 폭리를 취득하고 있는지 능히 알게 된다. 98년 4월 미국 화이자제약 사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내놓아 99년 10월 한국내 시판을 개시한 이래 8개월만에 우리나라에서만 142억7천만원을 벌어갔다. 비아그라 시판 이후 비슷한 효능을 갖고 있는 약품이 시중에 나오고 있으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국제법상 불법행위로 규정된다 할 수 있다. 왜? 세계무역기구에 의해 체결된 다자간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질병 퇴치 연구와 의약품 개발을 하여 왔다. 그런 노력은 특정 국가, 민족, 인종이나 계급 계층을 막론 하고 인류 전체의 소중한 자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양은 서양대로 의과학의 발전을 이루어 왔으며 동양은 또 나름대로 독특한 의과학의 성과를 전승 하고 있다. 근래들어 이런 동서양의 성과를 집대성 하여 통합된 의과학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모든 것은 인류의 건강한 생활이라는 보편적 가치 를 추구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적재산권의 보호, 신약품에 대한 특허를 내세워 폭리를 보장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기적의 약이라면서 가난하여 그 약을 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가진 자의 기만일 뿐이다. 제약자본에게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치부되는 한편에서 가난한 나라의 가 난한 사람들은 그 거위의 사료라는 비참한 지경에 서 불행을 곱씹어야 한다.
인간이 생활에 필요로 하는 모든 물품, 자본주의 에서는 상품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인간의 노동에 의한 산물이다.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산물인 상품 자본의 초과이윤를 보장하기 위해 인간을 해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문명화된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배타적 권리 보장을 위한 특허라는 제도는 분명 자본의 독점성만을 강화하며 나아가 제 국주의적 성격을 버릴 수 없게 한다.
현재 각국의 비정부기구 단체들은 개발도 상국의 민중을 볼모로 엄청난 초과이윤을 앗아가고 있는 세계무역기구 특허법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중국의 회원국 가입을 결의한 지난 11월 9일부터 카타르에서 나흘간 열린 세계무역기 구 각료회의 때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을 개발도 상국 실정에 맞도록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수의 회원국이 이를 수용하고자 하였으나 미국 등의 적극적인 방해로 관철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 의 반대는 곧 하루 3억7천5백만원 이상의 이윤을 의약품 특허권자에게 고스란히 바치게 하는 것이다. 이윤의 반대편에서 하루 3만7천명이 죽어가고 있다. 미국은 이렇게 벌어들이는 돈으로 또 가난한 나라에 어마어마한 화력을 사용하고 있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온갖 제도라는 것에 대해 ‘인간의 눈’ 으로 뒤집어 보아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손을 빌려 인간을 죽이는 ‘자본’의 역사적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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