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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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9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1-12-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생활속의 밀교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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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0 20:13 조회 2,894회본문
점과 밀교의 방편
점은 오랜전부터 우리 일상생활과 함께 해왔다.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운세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에 대소사가 있거나 우환이 닥칠 때, 결혼과 큰 사업 등을 앞두고 잊지 않고 점집을 찾는다. 자신의 운명과 앞 날을 알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점은 기원전 4천년경 고대 중국과 이집트, 칼데아, 바빌로니아 등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주로 종교의식과 의술에 쓰여졌는데, 점을 보는 방법으로는 천체의 변화를 보고 점을 치는 점성술, 숫자의 계산이나 수의 변화를 통해 점치는 수점술, 자연현상을 통해 점을 보는 자연 관상점등이 사용되었다.
대개의 경우 무당이나 신내림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점이 행해지나, 더러는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도 점이 행해 지기도 하였다. 이런 경우는 관습으로 전승되면서 누구나 쉽게 행하 여졌던 점이다. 그저 재미삼아 쳤던 심심풀이 점이었다. 어렸을적 누구나가 한번쯤 경험했던 것으로 손바닥을 펼쳐놓고 생명선이 길다 짧다, 재물운이 많다 적다’하며 서로 손금을 보아주었던 지난 추억들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점복의 범위는 매우 넓어서 그 한계를 정하기 어렵다. 일상의 모든 현상들이 점복의 범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것, 자연현상, 관습이나 놀이에서부터 동식물과 사람까지도 미래를 점치는 데 이용되었다. 자신의 운명과 앞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이 얼마나 크고 근원적인가를 짐작케 한다.
점은 오늘날 비과학적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그대로 남아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연 우리 진언행자들에게 점은 무엇 일까. 근본적 불교입장에서는 점을 비불교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밀교에서는 점을 방편으로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밀교가 재래의 토속신앙을 수용, 습합하여 다양 한 방편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남는다. 대표적인 예가 점성술과 그에 관련된 경전의 존재다. 석존재 세시나 초기 불교시대에서 점술은 부분적으로 허용되었다. 그것이 밀교에 와서는 더욱 다양한 방편으로 전개되었다.『대일경』은 밀교의 방편을 이렇게 설하고 있다.「보리심을 인으로 하고, 대비를 근으로 하며,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
밀교수행의 목적은 즉신성 불이다. 그런데 경에서는 왜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고 했을까. 그것은 방편이 방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경에는 성불로 귀결됨을 역설하고 있 기 때문이다. 구경성불을 위한 과정이 곧 방편이요, 방편은 성불을 위한 과정의 방평인 것이다. 그런고로 구경 방편은 곧 구경 성불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밀교는 점을 위시한 여러 가지 방편에 대해서 관대하다. 긍정적으 로 받아들이면서 때론 적극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편이 구경이라 할지라도, 방편은 방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말해서 방편 그 자체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방편은 어디까지나 방편일뿐이다. 그것이 모든 것이 될 수 없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운세나 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방편은 나의 신행에 좌우되 어서는 안된다. 그저 참고만 할 뿐이다. 좋은 방편으로 삼으면 약이요, 집착하면 독이나 다름없다. 방편으로 인하여 수행의 본의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법장원 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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