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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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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2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3-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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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5 07:51 조회 2,4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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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악

인류가 원시성을 벗어난 이래 무릇 모든 종교, 도덕, 교육은 선을 가르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모든 덕목 가운데 으뜸이다. 어느 정도 양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덕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종교, 도덕, 교육은 사회적 산물이자 역사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종교, 도덕, 교육이 가르치고자 하는 덕목이 어느 시대에서는 지고의 선이었으나 이 선이 어느 시대에서는 낡은 것이 되면서 아울러 역사발전에 장애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봉건제적 사회에서는 양반과 상놈의 신분관계를 잘 지키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으나 자본제적 사회관계에서는 자유로운 신분으로서 얼마나 ‘이윤’을 남기는 행위를 하는가라는 점이 우선적인 덕목의 기준이 된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하여도 사회적 지위에 따라 도덕적 덕목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사회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비는 미덕’일 수 있지만 빈곤층에게는 그 미덕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상층의 부류는 사회적 재화를 최대한 활용하고 한편으로는 근로대중을 잘 길들여 그들의 부와 명예를 영속시키는 미덕이 사회에 충만하도록 노력하지만 하층 대중은 빈곤을 재생산하는 사회구조가 영속되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다. 전자는 자신들의 사회가 지속되는 것이 선이겠지만 후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사회가 하루 빨리 해체되는것이 선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있으면서 선에 대한 기준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전혀 다르거니와 첨예한 문제에 있어서는 상극의 상황에까지 이르러 물리적인 충돌도 불사하게 된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덕목은 대단히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에서는 계급적 이해관계에..따라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덕을 현실적이 사회 관계에서가 아니라 ‘전인류적’ 혹은 ‘도덕일반’ 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이들은 기실 그 속내에는 위선과 기만이 또아리 틀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겨울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프 카니스탄에 대한 대대적인 공습으로 우쭐해진 미국 대통령 부시는 올해 들어서자마자 아라비아반도의 두 개 나라와 우리가 반만년을 살아온 아름다운 한반도의 북쪽을 싸잡아 ‘악의 축’으로 규정, 언제든지 선제공격을 할 것이라고 포고하였다. 이들 세 개 나라는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으며 이들로 인해 국제사회는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잡는 축이고 이 축에 교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국가는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였다. 곧 미국은 ‘절대선’이라는 궤변에 다름 아니다. 자신들은 도덕적이며 인류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나라이므로 모든 국가는 자신들을 닮아야 한다는, 강자의 오만이며 억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들의 억지에서 보듯이, 그들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덕목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 는데 기초하고 있을 뿐 전인류적 보편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적어도 전인류적 보편성을 띄려면 모두가 현상의 질서를 존중하자는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그나마도 없다면 선을 가장한 악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을 따름이다. 부시의 발언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핑계를 내걸어 제국주의적 침탈을 자행했던 근대 서양인들의 야만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선이니 악이니 하는 개념에도 끼지 못하는 ‘야만’ 그 자체인 것이다. 뒷골목 낑패에게 선과 악의 기준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듯.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되고 난 직후 남한에는 미군이 진주하고 있다. 무려 반세기가 넘도록 그네들이 진주하고 있는 구실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 이다. 이들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여타의 국가 보다 월등 많은 혜택을 누리며 남한에 머물고 있다. 지난 2월 19일 한국을 방문한 부시는 이런 미군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고 그를 환영한 김대중대통령은통일 이후에도 미군의 주둔’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노벨평화 상으로 진 빚에 대한 보답 인가.

진짜 미군이 있어 한반 도에 전쟁이 억제되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아직도 많은가 보다. 부시 방한 반대 시위가 고조되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그의 방한을 환영하는 시위도 있었다. 서로의 도덕성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갖고 있는 가를 보여준 현장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한 명이라도 위협을 받게 된다면, 그 위협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미국은 베트남, 이라크에 이어 아프카니 스탄 등에 대해 엄청난 화력을 퍼부은 전례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군은 전쟁의 억제력이 아니라 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시 방한 반대를 주장하던 어느 종교인은 노골적으로 미국을 ‘악’이라고 하였다. 남한에서 미군이 물러가라고 늘 외치던 이였다.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폐기 등에 늘 앞장 서 있다.

점잖게 사람들에게 자비,박애를 가르치는 종교인 이 볼 때 이런 종교인은 ‘비종교인’ 으로 보일지 모른다. 비록 점잖지 못하더라도 종교가 진정 내세의 행복이 아닌 현세의 행복, 그것도 핍박받고 가난한 근로대중의 행복이 구현되는 극락정토를 일구려고 할 때 종교, 도덕, 교육이 가르치고자 하는 덕목 또한 발전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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