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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6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7-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불교에세이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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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손승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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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6 18:48 조회 2,17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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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소 떼까지 죽일 필요야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이?”

친구들이나 동료들끼리 지내다 보면 누구나 한 두 번 쯤은 다툴 일이 있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튀어 나오게 됩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입장이지요.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정당함을 옹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는데 여념이 없기 일쑤입니다. 선거를 전후하여 쏟아져 나온 후보들간의 상호비방은 중생들의 그런 경향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지요.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가 정당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실 지극한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잘못이 전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는 잘못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보다, 조그만 잘못에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  훨씬 인간다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 엇비슷하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분명히 다른 몇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더러움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 하는 사람, 부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하천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마음속에 더러움이 있는 이가 ‘아, 이것이 나의 허물이구나!’하고 안다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있다면 언제라도 그 허물을 고칠 수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잘못된 행위를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죄책 감도 없이 말입니다.

물론 죄책감에 빠져 밝은 생활을 못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죄책감이나 반성의 마음은 바람직한 삶의 세계로 우리를 건네주는 뗏목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거나 반성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마음을 계속 안고만 있는 것은 결코 현명 하지 못한 일입니다.

많은 소를 기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소 기르는 일에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러던 하루, 소들 중 한 마리가 병으로 죽어버렸습니다. 낙심한 나머지 그 사람은 나머지 소들마저 죽여버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완전 한 소 떼가 못된다고 홧김에 그랬던 거죠.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누구나 그 사람을 비웃겠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사소한 실패에 좌절하는 사람.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고 그 선생님의 과목은 거들떠도 안보는 학생. 부모님에게 혼 좀 났다고 집을 나가버리는 청소년 등등. 그런 사람은 저 소 떼를 죽인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월드컵 경기 때 천금같은 페널티킥을 실패한 선수가 있었지요. 틀림없이 그는 전 국민의 한숨과 비난이 가슴을 짓눌러오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수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고, 더욱 열심히 뛰어 끝내는 동점골을 멋지게 어시스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듯,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은 절망하거나 비관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활기차고 아름다운 내일, 다가올 시간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참회는 자신의 잘못을 느끼는데서 출발하여, 적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서 눈물을 흘리며 꿇어앉은 채가 아니라, 불상 앞에서 108배를 반복함으로써가 아니라,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선한 행위로써 잘못을 뉘우쳐야 하는 것입니다. 나쁜 행위가 반복되면 나쁜 인생을, 선한 행위가 반복되면 좋은 인생을, 그저 그런 행위가 반복되 면 그저 그런 인생을 가지게 됩니다. 나쁜 인생에 빠져 있지 말고, 그저 그런 인생에 만족하지 말고, 좋은 인생의 주인이 됩시다. 〈손승현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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