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묵의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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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5호 발행인 혜암 발간일 2002-06-01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현묵의 세상읽기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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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6 09:02 조회 2,326회본문
2002년 6월 한국 사회주의 시험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한 창 세계배축구시합으로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열광 하고 있을 것이다. 본선 을 앞둔 어제, 그러니까 5월 26일 저녁 한국과 불란서의 평가전 양상을 볼 때 한국편이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어 지금까지 역대 세계배축구시합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어쩌면 세계가 놀랄 정도로 더 좋은 성적도 내치 않을까 싶다. 아 무려나, 축구든 뭐든 간에 서로 각축을 다투는 시합 장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이왕 이면 우리 한국편이 멋진 기술과 조직력으로 매번 시합마다 승리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이번 세계배축구시합 기간에는 세계인은 무관심하겠지만 우리네로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정치 마당이 있다. 지방자치체의 단체장을 비롯하여 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가 그것인데, 자칫 세계배축구시합의 열기에 가려 정작 우리네 살림하고는 가장 밀접한 선거마당이 소홀히 될까 우려된다. 가뜩이나 지난 80년대 중 후반을 기점으로 대중의 투표참여가 떨어지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그 투표율이 더욱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이른 바 남한사회에 있어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는 의미가 점차 희석되고 있는 현실이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채질하는 책임은 무엇 보다 정치인들에게 있을 것이다. 그네들이 벌이는 추잡스러운 정치놀음에 대중은 식상해 하고 있으며 그러한 의사표시가 소극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정치적 무관심일 것이다. 게다가 운동경기나 오락, 전자놀이가 주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기에 정치에 대한 흥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여타의 유응처럼 재미나 응미를 끌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만 그렇다고 하여 박진감도 없고 그리하여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솔직히 따져본다면 정치인들은 의도적으로 대중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 만의 판이 되는 것이 기존의 정치인, 또는 그 기존 정치판에 들어가 입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러 한 상황이 더 좋은 조건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 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정치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을수록 안정적이다.
남한의 정치는 태생적으로 몇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해방된 직후 철저하게 처단했어야 할 친일세 력이 미군정하에서 득세한 점이라든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한의 대중을 정신적 장애로 만든 반공 이념, 오로지 경제성장 제일주의로 사회를 경직화한 독재정권 따위가 속한다. 하여 한국정치는 근본적으 로 폐쇄성을 안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그나마 대중이 정치적인 관심을 갖는 것은 폭압적 독재정권 으로부터 벗어나 시민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민주화’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 정치사의 중요한 고비에서 대중은 엄청나게 높은 정치적 열망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른쪽과 왼쪽의 날개에서 오른쪽만이 허용된 정치에 국한된 것이다.
70년대와 80년대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력’ 가운데 일부는자신들을한때 ‘용공세력’으로규정하였 던 권력에 편입되어 그 정권을 유지하는 한 부분이 되었는가 하면 정권교체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천 박한 해석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정치시장의 높은 장애를 뚫고 진입에 성공한 이후 자신들 또한 적당하게 기득권을 향유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한의 정치는 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뭔가 사람은 바뀌긴 하였는데 기이하리만치 예나 지금이나 판에 박힌 놀음만 계속되는 것은 그런 까닭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6월 13일 치뤄지는 지자체 선거에는 남한의 정치에 새로운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반공 이념으로 중무장한 사회분위기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고 결성된 사회당이 전면에 나섰다. 예전에도 민중진영의 대통령후보가 나온 적도 있고 또 진보 진영을 표방하는 정당 또는 후보가 선거국면에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양상이 다르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전국에 중요 거점에 자신들의 후보를 대거 출마시켰다. 서울시장 후보에는 사회당의 대표 원용수씨가, 민노당에서는 이문옥씨가 출마 하였고 인천에는 사회당 소속의 김영규 인하대 교수가 출마하는 등 전국 광역단체장 및 지자체의 장과 의원에 출마하였다. 이미 널리 알려진 민주노동당과 더불어 진보 정당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대중에 게 보이고 그들의 선택으로 남한사회에 사회주의를 널리 전파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 문화방송의 100분토론이라는 시사토론프로그램에는 이번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5명을 전부 초청하여 각자의 견해를 밝혔다. 물론 사회당 후보도 나왔다. 지금껏 관례로, 아니 선거법에 근거한 것이지만, 국회의 교섭단체 또는 그에 준하는 정당의 후보만 방송에 출연시켜 편파적인 선거운동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문화방송은 그런 점에서 진일보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시정해야 할 일인데도 기득권을 어떻게든 고수하려는 정치인들의 속셈 에서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어쨌든 문화방송에 출연한 서울시장 후보 가운데 사회당의 원용수후보는 첫 인사말에서 거침없이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라고 내뱉었다. 글쎄 아직 국가보안법이 벌겋게 살아있는데도 이런 것이 용인 되는 것 보면 남한사회가 그만큼 나아졌다는 반증 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방송에 출연하여 이렇게 말한 사람은 그가 처음일 것이다.
80년대 후반부터 좌파진영의 정치적 실험은 그간 몇 번 있었으나 큰 걸음으로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자신들의 삶이 벼랑에 몰린 민중으로부터도 큰 지 지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였다. 아직도 강하게 대중의 의식 속에 작용하고 있는 반공이념의 반향도 작용하였다. 이번 2002년 6월의 지방선거는 그간의 정치적 실험에 보태어 대중 앞에 당당히 나선 사회 주의자들에 대한 대중의 열정이 어떻게 나타날 것 인가에 자못 관심이 간다. 특히 이번 선거는 사상 처음으로 정당투표제가 시행된다. 후보와는 별개로 선호하는 정당에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정치적 기 득권자들은 이번 선거가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겨냥 한 발판일지 모르지만 역사와 사회발전에 자신을 나투려는 이들에게는 반공이념으로 중무장한 우리 사회에 대한 사상적 도전의 힘찬 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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