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부산 법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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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39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2-1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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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8 06:30 조회 2,315회본문
염주가득 사랑가득 정진으로 서원 성취하는 법성사
"마음이 항상 밝고 마음에 분별함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어야 부처님에게 한발 다가 설수 있는 거야. 한발 다가서는데 40여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어. 그런데도 아직 뒷발을 거두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워, 뒷발을 거둬야 정말 한걸음 가는 것이데…”
가을이라는 단어는 참 쓸쓸해 보인다. 막연히 우리에게 주는 가을의 느낌이 감성을 자극하지만 감성이 체 피기도 전에 겨울이라는 단어가 가을을 삼켜버리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해의 길이가 짧아지기만 하는 어둑한 법당에는 노스승님과 불공하는 여러 보살들이 정진하고 있다.
노스승옆에는 10여년을 스승밑에서 공부하고 있는 차영희 보살이 같이 하고 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담소가 깊어지고 어느덧 노스승님의 옛낼이야기로 이어진다.
불교는 간단히 인과의 법칙이다.
몸은 늙어 예전 같지 않지만 지긋이 내린 눈가에 수행의 공덕이 가득하고 부릅뜬 두 눈에 광채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그리고 세월의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듯 40여 소년의 진언수행의 이력들이 노스승님의 주름살을타고 스쳐 지나간다.
첫 말씀이 인과의 법칙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주 간단하고 명쾌합니다. 우리가 1을 지으면 그 1은 다시 우리에게 옵니다
니다. 우리가 선지으면 언젠가는 그 선이 우리에게 다시 옵니다. 그럼 선과 악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불공때 하는 십선회향 입니다. 중생들은 열 가지 일로 선을 짓기도 하고, 또 이 열 가지 일로 하여 악을 짓기도 합니다.
열 가지 일이란 무엇이냐면 행동에 관한 세 가지, 말에 관한 네 가지, 마음에 관한 것 세 가지 입니다. 몸에 관한 세 가지란 살 · 도 · 음 이요, 말에 관한 배 가지란 양설 · 악구 · 망어 · 기어요, 마음에 관한 세 가지란 탐 · 진 · 치 · 입니다. 이런 열 가지 일은 성도를 따르지 않는 일이므로 십악이라 하고, 이런 악을 범하지 않는 것을 십선행이라 합니다. 얼마나 명쾌합니까. 그런데 중생들은 과거세부터 수없이 지은 업에 의해 선과 악을 알고 있지만 행하지 못합니다. 이 몸이 나라 생각해서 신업을 일으키고 이 말을 나라 생각하므로 구업 일으키고 이 마음이 나라 생각하여 의업 일으키는 것입니다. 나가 아닌데..자꾸 나라고 생각하는 헛된 망상이 헛된 마음이 문제지요. 그럼 문제는 간단합니다. 헛된 망상과 마음을 진실된 진리의마음으로 붙잡으면 되는 것어지요. 그래서 총지종의 불공은 마음불공이라 하는 것입니다. 불공은 자상을 가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를 굽히고 주저하는 것이 부처님에게 굽히는 것이요, 부처님의 진리에 수순하는것이요,우주삼라만상에 굽히는 것입니다. 굽히면 내가 보입니다. 굽히면 마음자리가 보입니다.”
인과에 대한 시각화스승님의 말씀이 한참 계속되고 있을 때 밖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왜 이제 왔어. 한참 기다렸잖아.” 사실 몇 시에 간다고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부산 도착시간이 점심때쯤 될 것이라 예상을 하였나 보다. 그러나 점심공양시간을 막 지나고 도착하였으니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들었다.
천진동자 같은 하정스승님
정사님의 손에 검정봉투가 보인다. 내일 부산 경남 교구회의가 이곳 법성사에서 있다하여 교구회의때 사용할 물건을사오셨나 보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삐죽 나온 물건은 다름아닌 덧버선을 사왔다.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전수님 추운 날씨에 불공하는데 줄려고 사왔지”하며 함박웃음을 웃는다. 곁에 있던 차영희 보살이 “정사님 저도 불공하는데 저도 하나 주시죠” 하는데 “안돼 우리 전수님만 줄거야 하신다.” 물론 농담이지만 천진한 아기의 마음처럼 순수함을 보았다.
사실 정사님은 큰 교통사고가 아니었다면 총지종단을 위해 커다란 족적을 남기실 만큼 수행과 실천을 겸비하신 분이었다. 그런 수행력이 뒷받침 되어서였는지 큰 사고 이후에도 남들과 다름없이, 아니 남들보다 더욱 철저한 계행과 실천을 행하니 어느 대중들이 감복받지 않으며 우러러 보지 않겠는가.
조용히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끈다. 방에는 염주가 가득하다. 작은 스텐드의 형광불 빛에 의지한체 염주 꿰는 실과 드릴. 뺀찌. 닛바등 염주 만들때 공구들과 여러 가지 작은 전자제품들로 방이 가득하다.
이것은 금강염주, 소나무로 만든 것, 대추나무로 만든 것. 율무로 만든 것, 이것은 108염주, 이것은 54염주. 이것은 단주, 차량염주 하며 자랑과 뿌듯함이 얼굴 가득하다.
사실 우리종단의 스승님들이 사용하는 염주는 대부분 하정정사님이 만들어 보시한 것이라 한다. 큰 덩치에 어울리는 굵은 손에서 섬세한 염주와 매듭이 나오는 것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난다.
마치 한 올 한 매듭에 모든 정성을 들여 부처님의 진리를 엮어가는 모습은 깊은 산속에서 조용히 수행하는 고승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리고 조용히 쪽지를 부끄럽게 내놓는다. 스승님이 평소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짧은 글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내 허물 고치고자 하면 정신 맑은 새벽불공해서 하루하루 생활의 행복을 찾아야 하며 주야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자에게는 행복이 약속된다. 모든 선과 고는 정진으로 이뤄지며 극복되니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생사를 걸고 부처님 가르침에 정진함이 어떤지 대략 이런 내용이다.
생사를 걸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가 갈려고 노력은 하였는지 스스로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리고 스승님의 통 큰 생각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모두다 이런 생각과 발심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고지식한 스승님 그러나?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자꾸 옷깃을 여미게 된다. 바깥의 날씨가 춥지도 않은데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고지식한 스승님의' 덕분에 그렇다.
종단 돈 아깝게 생각하여 보일러 불을 지피지 않고 속된 말로 ‘왠만한 추위는 몸으로 떼운다’고 하신다. 고희를 바라보는 연세인데 절약해야 한다며 불을 지피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꽉 막힌 스승님이다, 생각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고지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소견으로 절약도 좋지만, 부처님 돈 무서운 줄 알고 조심하지만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몸이라도 축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고.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난후 나의 좁은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곧바로 깨닫게 해 주었다.
“조금 춥게 지내는 것이 수행자에게는 좋습니다. 물론 몸에 큰 해가 없는 한도에서 말입니다. 따뜻하면 게을러치고게을러지면 요령이 생겨납니다. 배가 부르면 졸음이라는 고약한 마가 옵니다. 약간 고파야 정신이 맑아지는 것처럼 사람은 물질에 대해 약간 모자람을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요즘 우리의 생활은 풍족한 물질속에서 살다보니 정신적 빈곤으로 이어집니다. 정신적 빈곤은 여러 가지 사회의 문제를 야기시킵 니다. 온갖 부도덕한 문제의 발생은 물질의 풍요에서 나오며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이 근원입니다. 수행자는 물질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하면 부족하게 생활하여 항상 긴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심코 생활하였던 일상생활에서 물질에 갇혀 지낸 욕망에 대한 반성이 하나하나 일어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을 수행으로 삼고 지낸 스승님에 대해 존경심과 경외심이 든다.
스승님은 새벽불공에 시간 지키는 것도, 철두철미하다. 그래서 인지 법성사 보살중에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정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박복덕보살. 이소현보살. 김귀임 보살. 김옥순보살. 김정순 보살. 이말남 보살. 차영희 보살. 정복여 보 살. 이말악 보살등 많은 교도들이 스승님과 같이 새벽정진을 실천하고 있다.
맛보지 않은 자에게 맛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시각화 전수님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 “부처님전에 용맹으로 정진하고 나를 버리면 나와 부처님이 하나로 됩니다. 그리고 물리가 터집니다. 물리가 터지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부처님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으로 중생을 교화하라 하였습니다. 그럼 지심으로 부처님의 법을 갈구하며 수행정진 하면 방편이 보입니다.
즉 부처님의 법을 구하고자 수행정진이 제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방편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영가천도도 하나의 방편입니다. 잘 이해해야 합니다. 영가천도가 제일이 아니라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고자 하는 지심으로 들이는 마음 공부가 제일입니다.
그 다음이 복을 구하는 기복의 모습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더럽고 내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데 내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한데 어찌 부처님에게 ‘영가를 천도하여 사업 잘 되게 해주소서, 잘살게 해주소서, 혹은 아들 잘되게 해주소서’등 여러 복을 빌 수 있겠습니까? 복을 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을 빌기 이전에 비는 이의 마음자리와 마음 청정함이 중요합니다. 수행을 해보니 부처님의 묘한 진리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낍니다. 맛보지 않은 자에게 맛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맛을 찾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길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해를 하여 영가천도만 중요시 한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과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꿀의 맛을 아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단꿀의 맛 을 설명할수 있겠습니까? 꿀을 먹어봐야 알지요.
하정정사님과 시각화 전수님은?
실천과 정진을 빼놓고 스승님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실천 수행자이자 인과법을 현실에 맞게 실천하는 수행자이다.
스승님의 수행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365일 하루도 어김없이 사분 정진에서 나온다고 보살들은 귀소리를 해준다.
스승님은 젊었을때 밀교의 오묘한 진리를 만났다. 몸이 무척 아팠던 스승님은 사원에서 불공을 하면 마음이 무척 편하지만 법당문을 한발짝 이라도 나가면 마음과 몸이 편치 않았다 한다. 그래서 내 몸 해탈과 마음공부에 발심을 하고 전력으로 육자진언과 부처님에게 온몸을 던지며 불공에 메달렸다. 병원에서도 포기한 병마는 세 번의 죽을 고비를 희사법으로 막아내고 마침내 꿈인 듯 현실인 듯 관음보살을 만나면서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원정대성사님을 만나 총지종 창종의 주역이 되었다.
복지화 스승님, 정긱원 스승님등 총지종의 큰 스승님들과 함께 정통밀교의 큰 서원을 세우며 밀양, 경주, 부산에 서 불같은 교화사업을 이끌었다.
스승의 길을 걸으라는 원정님의 말씀에 “저는 배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중생을 교화하고 부처님의 진리를 배우고 가르키는 스승의 재목은 못됩니다”라고 하였으나 원정대성사님은 “진리의 세계는 학문으로 하는게 아니며 진리의 세계는 배움의 많고 적음으로 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된 마음과 사람의 됨됨이가 부처님과 통하면 세속의 문제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이 부처님의 진리속에 있으며 그대가 세속적이든 세속적이지 않든 모든 뜻을 이루고자 하면 험난하지만 이 길을 가야한다.”라는 말씀에 죽비를 잡고 40여년의 수행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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