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특집 종조탄신 97주년 기념 "종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페이지 정보

호수 41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8 15:26 조회 2,129회

본문

특집 종조탄신 97주년 기념 "종조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올해는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 탄 생하신지 97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 땅에 오신 것은 밀교종의 창종 을 위해 인연으로 나투셨던 것이리 라. 탄신97주년을 봉축하며 종조님 의 발자취를 찾아 창종이념과 수행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56dccb84f81d9a1b7c529612bac16a48_1524896797_1539.jpg
 

대성사의 성은 일직 손씨요 속명은 정우요, 법호는 원정이라. 석탄 2934년 1월29일에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에서 탄생하셨다. 아버지는 기현씨요, 어머니는 재령이 근호씨라 어렸을 때부터 비범한 면이 많았다. 대성사는 소시부터 명 , 리에 뜻이 없고, 정의감에 투철하였으며 관계와 교육계에 종사하시다가 불경에 심취하여 불교 연구에 몰두하셨다. 어려운 시대상황을 보시고 구국과 중생제도(의 뜻을 세우고 호국불교를 통한 교화방편을 주창하였으니 바로 밀교종의 창종이 었던 것이다. 대성사께서는 민족상잔의 참화를 보시고 임자년1월1 일부터 국가안보와 정법봉득 입교개종을 위한 서원으로 100일 정진을 시작하셨다. 4월 10일 100일 정진을 마치시고 대성사는 총지종의 요람처인 시내 동대문구 상봉동으로 8월 21일 이거하셨다.

대성사께서 상봉동으로 이거하자 스승과 교도 대다수가 종조님을 따라 나오고, 경궤의 비밀전수를 간청하므로 대성사는 상봉동 391번지의 5호에 총본산인 서울선교부를 개설하고 비밀의궤를 천수하기 시작했다.

원정 대성사께서 서울선교부에서 임자년 8월27일부터 교화를 하시자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입교개종할 것을 요청하였다. 종조님은 이를 받아들여 그 해 12월24일 서울선교부에서 개종불사및 창교식을 거행하기로 결정하고, 종명을 총지종으로 결정했다. 총지라는 뜻은 총지 즉 다라니로써 진언행자와 모든 중생을 지도한다는 뜻이다. 이로써 개종기원이 총기원년이 되었다.

창종 이전의 역사는 창종을 위한 준비와 교상확립에 있었다. 창종 당시의 상황은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초창기 가람을 갖추지 못하고 건물을 임차하여 불법을 펼쳐야만 했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교도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었고 , 내교세는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이후 원정 대성사는 정통밀교의 교상과 사상의 정립을 주창하시고 삼밀의궤와 사종수법 및 진호국가법을 선포하셨다.

대성사는 창종전인 그해 1972년 9월9일 ‘비밀의궤법’을 정하여 선포하였다. 현밀 원통성불심요집 가운데 밀교심요의 사종수법을 발췌하여 한글로 번역배포하였던 것이다. 또한 동월 29일, 중생제도의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교도가정의 제례에 사용할 ‘욍생막’과 “법 등’ 을 고안 제작하였고, 총지종교의의 상징이자 종지를 표시 하는 ‘육합상’을 창안하였다. 중앙의 원은 불교의 진리인 무시무종의 뜻이요, 또 이 우주의 운행도 모두 원으로 운행되며 법신 비로자나가 곧 원이라는 뜻이요, 만다라를 윤원구족으로 표현하며 대일여래는 곧 태양을 의미하므로 원에서 광명을 발사하는 뜻으로 표시되는 것이다.

외곽의 6엽은 불교의 교화인 연화를 표시하는 동시에 6자대명, 육바라밀,육합,육도, 육근,육경, 육식, 육대, 육관음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육자 진언중 마니는 원이요, 반메는 연화며, 원은 남성이요, 연화는 여성이다. 즉 남녀상교 음양원융의 뜻이며 원은 물질이요, 연화는 심성이라 물심불이의 뜻이며, 원은 현실이요 연화는 진리라 당상즉도 즉사이진 색심불이번뇌 즉 보리의 뜻임을 선포하셨다.

특히 10월에는 ‘준제관음상’ 과 ‘현도만 다라’  를 채택코자 노력하였으나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종조님께서 창종원년에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역경편찬사업이었다. 즉 종단의 소의경전인『대승장엄보 왕경』전4권과『대승이 취육바라밀다경 』 전10권을 한글로 번역하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지금의『밀교장경』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또한, 현밀의 경전에서 요목 별로 발췌 번역하여『불교총전』이라는 제명으로 총지종의 교전을 종조께서 직접 집필하기도 하였다. 여기에다 총지종의 신앙대상인 본 존과 불사의식 법의 금가사 육자본존을 조성하고 제정 발표하면서 밀교종의 창종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셨다. 충정로 도량에서 스승과 교도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종조님은 총지종의 신앙대상인 본존과 불사의식을 다음과 같이 결정 발표했다.「본존은 육자대명을 봉안하고 준제관음상은 봉안하지 않는다.」「불전의 공양물은 헌화와 소향에 한하고 정수와 촛불은 쓰지 않기로 결정한다.」「법의의 의제는 신라시대의 상의양식과 같이 깃을 밑에까지 내려서 만들고 소매는 작은 홍탁소매로 하며, 색조 는 백 . 황. 홍. 황의 4유으로 사종수법(에 맞춘다.」는 것이었 다. 창종을 앞두고 법회를 위한 도량도 마 련하였다. 현재 사원의 전신인 ‘선교부’를 전국 각지에 여럿 개설 하시고, 드디어 1972년 12월 24일 불 · 법 · 승을 갖춘 수승한 교단의 면모로써 밀교종의 창종을 이루셨다.

종조님은 교상과 사상확립을 위해 직접 수행을 통하여 체득하신 후 정진의 결과로써 채택 정립해나가셨다. 서울선교부를 총지종의 총본산으로 결정하고, 불사를 계속하자 국내도처에서는 육자만다라에 귀명하여 설단봉안하는 자가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종조님은 교의를 선 포하시기를 법신대일여래를 교주로 하고, 육자대명을 본존으로 하여『대승장엄 보왕경서』과『대승이취육 바라밀다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였다. 또한 태 · 금 · 양계의 모든 경궤를 보조경전으로 하여 삼밀과 육행을 수행의 덕목으로 하고, [당상즉도 색심불이]의 원리에 입각하여 복지쌍수로 사리를 구현하므로써 현세정화와 즉신 성불의 윤원대도를 얻게하였다. ‘시시불사 처처불공법’으로 ‘생활시불법 불법시생활’의 진리를 체득하게 하는 동시에 활동하며 닦고, 닦으면서 활동하는 것을 실천하게 하는 방편을 세움으로써 완전한 교상이 확립되었다.

창종 원년인 1972년의 한 해는 창종을 위한 준비단계였다면, 1973년 이후는 종단의 교상과 사상을 더욱 체계화하고 다양한 교화방편을 전개한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다. 8개 선교부를 개설하고, ‘자성일 회향서원’ 과 ‘교도맹약’등을 제정하였다. 교도들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교도맹약의 제정은 교도들의 바른 신행과 신심고취를 위한 종조님의 각고의 흔적이었다. 교도 맹약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가지력에 일심귀명하고 2세의 신심을 결정 하겠습니다. 사은십선의 가르침을 받들어 육행을' 실천하겠습니다.」「인과응보의 진리를 굳게 믿고 이단사설에 미혹되지 않겠습니다.」「화합과 단결로써 국가사회에 헌신봉사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겠습니다.」「교법과 회칙에 절대복종하고 정법과 정의를 세워 현세정화에 정진하여 국가와 종단의 발전에 헌신하겠습니다.」「부처님의 화타정신을 본받아 5세대 제도의 의무를 꼭 이행하겠습니다.」

이렇듯 1973년은 모든 체계를 갖추어 나갔던 한 해였고, 총단 내외의 교세확장을 시도했던 한 해였다.

그 다음해인 1974년부터 1978년까지의 5년간은 종단의 종제를 더욱 확립 시켰던 시기였다. 종단의 각종 기구와 직제를 구성하고 승단의 강공회를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보은시법’의 실시, 재단법인 설립, 자성일 대중 동참불사법요 및 진택불사법요 등을 제정 하고 오대서원과 회향문을 작곡하여 공식 시간과 기타 의식에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학생회 결성, 희사금 월말보 고제도 실시, 보은심고법 실시, 전교 · 시교제도를 실시하 셨다. 보은심고법의 실시는 은혜갚는 불제자로서의 수행을 역설하신 것이다. 매식사전 또는 환의 다음의 말을 스승과 교도가 마음속 으로 고하도록 한 것이다.「부모님이 이 몸을 생육하시고, 부처님이 모든 것 내게 주시니 세세생생 은혜를 갚겠습니다.」

특히 대성사께서 는 그해 1974년 1월 21 일(월요일)부터 27일까지’ 1주간 철야정진을 실시하셨다. 종단등록과 재단설립허가를 위하여 대서원 정진을 하셨던 것이다. 종단운영과 회계인사 등 종무일체를 투명하게 하고 오직 불법홍포와 정재수호를 위한 뜻이 담겨 있다. 대성사의 공명정대한 자세와 청정수행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75년에는 진호국가불사의궤 제정, 망자에 대한 천도관정법 실시, 불교총전 초판 발행, 승직법제정, 소선교부의 명칭변경, 반포법시법 시행, 각 사원 서원당에 자성학교개설, 정법시법시행,투명단중법시행, 법장원 개원, 찬불가 제작을 완료하였다.

진호국가불사의궤는 수호국계주경 법을 근거로 하여 제정한 것으로 스승과 교도가 다 함께 5월5일 월요일부터 1주간 국가안보를 위하여 정진하 기로 했다. 지금의 상하반기 진호국가불공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천도관정법은 망자의 멸죄왕생을 위하여[불공견색비로자나불대관정광진언 ]과 오색광인을 행하는 관정의궤였다.

또한,『대승장엄보왕경』제4권중 작단법에 의거하여 권속의 이름을 단중에 투입하면 공덕이 무량하므로 그 서원에 따라 식재,증익, 경애등 으로 구분하여 교도들이 재시를 행하는 투명단중법의 실시는 희사법의 틀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다.

1976년에는 망자관정시 5색광인의 결인 결정, 성불서원 확립, 관음공덕수집, 화도 의궤를 제정하였다. 특히 당시 선교부라는 명칭은 불교색채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선교를 연상케하는 면이 있어 종조님은 재단소유건물은 총지종 00절로하고, 전세로 교화하는 곳은 '총지사 00사당”으로 사원명칭을 변경하였다.

1977년에는 총본산 건설, 신축사원 건물 옥상에 법신불의 상징인 입체원상 건립, 밀교장경 초판 발행, 성불탑을 건립하였고, 78년에는 성도절 양력실시, 합장례 인사법 결정, 공덕성취 십선성취법 채택, 공식시간 불사의궤 통일, 법의착용법 개정, 삼종불사식순 결정, 가사봉대 및 행위승서식거행, 현대화 . 생활화를 위한 4종수법의 혁신, 수륙대재 행사실시, 흑백두수행법실시, 단일정진과 복수정진법을 제정 하였다. 1979년에는 총지대학 건설기금 조성, 각종 진언결인법 채택, 1979년에는 총지대학 건설기금 조성, 각종 진언결인법 채택, 준제연명법 등을 실시 하셨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원정 대성사 께서는 사종비법의 창안, 5세대 제도법시행 등으로 더욱 교상과 사상을 체계화하고 교화방편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스승의 인사이동과 신규 스승임명을 통하여 활발한 교화활동이 가능케 하셨다. 즉 제도와 의궤의 정비 이후 본격적으로 인재양성에 주안점을 두셨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창종 8년이 되던 해인 1980년 9월8일 원정 대성사께서 종단발전의 무수한 불사들을 남겨 두신 채 안면의 열반에 드시고 말았다. 창종역사와 종조님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종조님께서 이 종단을 위해서 얼마나 정진하시고 노력하셨는지를 읽게 된다. 이에 종조님의 탄신 97주년을 맞는 총지종의 승단 스승님과 교도들은 그 분의 가르침과 유훈을 길이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 것이 진정으로 대성사의 탄신을 봉축하는 길이리라.

〈자료정리 법장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