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진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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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1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2-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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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8 14:41 조회 2,118회본문
본 글은 종조 원정성사께서 서적 간행을 위해 친히 쓰셨던 원고의 일부입니다. 원정 성사께서 창종의 뜻을 구국도생에 두셨던 만큼 구구절절 일체중생제도의 대비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한국밀교의 중흥을 창종정신으로 삼았던 종조 원정 대성사께서는 정통밀교종단의 교상과 사상의 체계와 정립에 전념하셨습니다.
특히, 한때 진각종단의 총인직에 계셨을때는 모든 교리체계와 교전편찬을 손수 완성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면면은 원정 대성사의 유고에서 엿보게 됩니다. ‘심인진리’ ‘진각’ 등의 언급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총지종과 진각종의 교전을 아우르고 있는 종조 원정 대성사의 가르침에서 대성사의 숨결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편집자주〉
진실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는 나 에는 어떠한 교를 막론하고 종파가 발전하므로 그 교가 발전해서 그 국민 전체가 다 믿다시피 되어 있다. 이때 종파로 나누어지지 못하는 종파는 현시대에 맞지 않는 전체를 가졌으므로 재래기 을 가지고 보수적 체가 되어 있을 뿐이요 발전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현재 자유세계 각 나라 가운데도 많은 종교가 많은 종파를 가져서 발전하고 있는 나라에서만이 민주주의가 최고로 발달하고 따라서 최상의 행복으로 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실상은 부분으로 분파해서 발전하더라도 결국 통솔적 체용에 돌아가게 되고 진리는 하나로 원리만은 다르게 세워서 교화하더라도 결국 전공적 다원이 되어지는 것이다.
물질이 발달하는 현시대의 도로는 기계 힘으로 행하는 물도가 있고 사람의 힘으로 행하는 인도로 나누어져 있는데도 더욱 물질이 변화한 곳에는 좌우측에 인도가 있고 그 가운데 오로지 물이 왕래하는 큰 길이 나누 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좌측으로 행하고 물은 우측으로 행하여야만 되는 교통 도덕에 이르기 까지 법이 되어 있어 공 도를 아니 행할 수 없는 이원시대 에는 만사만리가 다 이원법칙에 따라 발달하게 된다.
물을 발달하는 공도는 커서 과학은 물질문명을 열고 종교는 정신문화를 열게 된다.
실리는 분파적으로 발달해도 일원정신이 서 있고 진리는 전문적으로 발달하되 이원진리가 서 있기 때문에 사람의 생활에 필요한 과학이다면 다 분파적으로 발달하게 되고 중생의 행복에 필요한 종교라면 다 종파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세상에는 없는 것 이 없이 물심이원으로 발달 하는 세계라.
공도적인 물도세계가 서게 되므로 과학이 발달해서 물질이 풍부하며 문명의 생활을 하게 되고 종교가 발전해서 인성적으로 선량하고 육행으로써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고 만사만 물이 본래 악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났고 과학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문화적인 생활을 위해서 세운 것이므로 구름에 가리운 해와 같은 우리의 본성을 깨닫게 하는 종교도 역시 과학이 분파로 발전하는 날에는 현 사회상 그대로 진과 실이 각각 사명을 이루어서 문화세계를 건설하는 도구가 될 것이요 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심인불교의 원리가 곧 이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이 모두 과학은 자유로 발전하는 데에 열을 내고 있으나 종교는 아직 자유발전이 적은 오늘날의 사회현 상을 보면 악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진실한 이원종교가 서게 되는 날에는 오늘날 악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다 지상 극락을 건걸하는 이 국토에 장엄소속이 되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발전과 과학발달이 상대로 발전되는 사회의 그 현상은 악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과거 조상 으로부터 세워오던 중도를 새로 건설하는 불교는 우리나라에서 주관아 되어 세계적 종교의 상대원리 속에서 발전하게 된다. 과거 유교 전제 밑에 살아오던 민족은 진리불교가 아니면 자유와 평등을 완전하게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전해오는 유교 도덕은 보이지 않는 토대로 만들고 진리의 불교로 바꾸어서 지어가는 것은 20세기 조류와 보조에 꼭 맞아지는 까닭이다. 이와같은 혁신적인 진리불교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 우리 민족은 이교의 교리를 보고 듣고 믿어보아도 풍토성과 현지성에 맞지 않는 이가 많아서 신앙에 주저하고 방황하고 타락되어 고유성에 맞는 선교를 희망하고 있는 이가 많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이 때에는 교를 믿어 야만 된다고 하면서도 교를 믿지 않는 국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 불교계에서 책임을 마땅히 져야만 할 것이다.
수백천년 우리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풍토성과 혈지성과 고유성과 본말선 후 체용을 알아서 바꾸지 않고 다원시대의 주의 하나만 알아서 우리의 근본을 일조일석에 거연히 버리고 다르게 교화하는 것은 뼈가 굳어서 없는 곱추를 곧 바루고저 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일원으로서는 이 틀을 바루게 되는 통치의 힘이 되고 이원으로 서도 독재를 바루게 되는 평등의 힘이 된다. 플러스는 마이너스가 있어서 밝게 되고 양은 음이 있어서 항구하게 되는 법이다.
일원은 이원을 상대하고 이원은 다원을 상대 하고 다원은 일원을 상대해 가장 높고 큰 자유로 발달하고 장원하게 되는 법이다.
일원시대에는 이와 흡사한 적은 법을 쓰되 자체안에서 부분을 나누고 보니 지배하게 되므로 적은 범위로 발달하는 법 이요, 이원시대는 이와 같은 상대방법을 쓰게 되어 광대한 범위로 발전하기 위해서 다른 것과 같이 종파를 나누고 보니 자유로 크게 발달하는 법으로 되는 것만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족이 다 종교를 믿어야 할 때는 여러 종파가 나누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 민족 가운데라도 종지가 달라지므로 해서 모두 각각이 여러 가지를 믿을 수가 있게 된다.
율법과 진리, 유상과 무상, 사판과 이판같은 각각 의 종지를 주로해서 대립적으로 발전하 는 것은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보게 되면 최고로 발달하는 법이 될 것이요. 또 종파로 발전하는 것은 그 교의 전체가 크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므로 쉽게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하루에 습관된 행사는 하루에도 없앨 수 있거니와 여러 해 동안에 습관된 행사는 하루나 이틀에는 고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십년에 습관된 행사는 그만 한 세월을 요하게 되므로 이런 것을 체로 하고 새것을 세워서 고쳐야 하며 어려서부터 익힌 행사를 고치는 데는 그 와 같은 시일과 이원을 요하게 될 것이며 조상으로부터 수천년 동안 세워 오던 일원중도를 토대로 하고 이원공도를 새로 건설하는데 장원한 역사가 수천년동안 요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보는 지혜가 있어야 오늘날부터 우리 민족과 혈연성에 맞는 자유국가로 혁신되어 행복하게 되어질 것이다.
가령 이원공도를 세우는 역사가 반비례로 수천년을 필요로 한다면 수천년 동안에 고통 받고, 수천년 혁신한 후에는 이원공도의 행복을 받아 점점 공도가 높고 큼에 따라 행복도 점점 크게 받게 될 것이다. 즉 수미산 같은 일원실상은 그대로 두고 이원진리를 새로 크게 세워 가는 것이 반비례의 이원인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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