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태장계만다라

페이지 정보

호수 43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4-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3 08:54 조회 2,118회

본문

연재글: 기획연재 - 양부만다라 (2회)

태장계만다라

지난 12월 한국불교 최초로 봉안했던 양부만다라의 봉안은 밀교종단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종단의 교리와 사상적 체계를 공고히 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밀교의 정신! 양부만다라를 기획연재를 통해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1cf5ca7710cd596f70e7306dfa19e45d_1525305255_2448.jpg


지난 호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도 태장계만다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태장계만다라가 갖는 의의에 관해서는 여러 가치 해석이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고 단지 ‘태장’이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본다.

이 태장이라는 사고방식은 불교교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태장’ 이란 생명의 근원인 모태를 의미하지만, 대승불교가 전개되는 과정에 있어서 부처, 즉 불성을 잉태하고 있는 모태를 중생 누구나가 선천적으로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여래 불성을 잉태하고 있는 이 모태를 ‘여래장’ 이라고 한다.

여래장이라고 하는 생각은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찬탄이며, 인간의 존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 이라 고도 할 수 있으나, 반면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현실화시키지 못 하는 인간에 대한 비탄이기도 한 것이다.

태장계만다라는 이 여래장이라는 사고를 계승하면서도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생명의 근원인 모태가 구체적으로 가능성을 현실로 옮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래장은 부 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현실로 잉태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였으나, 태장계만다라는 여래장의 사고를 넘어 가능 성이 새로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현실에 주목하여 보다 긍정적인 종교적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대일경소』에서 ‘생 만다라’라고 해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대일경』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전생명적 활동을 궁극적인 삶의 목표로 할 것이 강조 되어 그것이 대비태장생만다라로 그려 지는 근본사상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부처의 지혜라고 하는 마음, 즉 보리심을 구족 하고 있는 자가 중생과 함께 고뇌하며 함께 신음하면서 대비 중생구제의 전생명 활동을 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처가 펼치는 광대한 생명의 모습이 태장만다라에 그림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태징계만다라는 중앙의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각원이 순서대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으로 점차 넓혀져가는 모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일경/구연품」에 의하면, 태장만다라는 세 겹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삼중구조라 한다.

삼중이란 중대팔엽원을 둘러싸고 있는 각원을 세 개로 나누어서 의미를 부여한 구조를 말한다.

초중은 변지원 · 지명원 ·  연화부원 · 금강수원이라고 하는 사대원이다.

제2중은 석가원 · 문수원 · 허공 장원 · 소실지원 · 지장원 · 제개장원이라는 육대원이다.

제3중이란 최외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삼중구조는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번째 해석은『대일경』「주심품」에서 설하고 있는 ‘보리심을 인으로 하고, 대비를 근으로 하고,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 는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다. 이를 ‘삼구의 법문’이라 한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지혜가 대비심에 의하여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작용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중 대팔엽원은 대일여래의 깨달음의 근원을 가리키며, 팔방으로 벌어진 연잎 위의 4불 ·  4 보살은 깨달음의 지혜의 내실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일여래의 깨달음이 사방으로 번져 넓어지면서 현실세계에 기능적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두번째 해석은 '밖에서 안으로’ , 즉 ‘수행자는 범부에서 부터 부처의 경지로 차례대로 자신을 높혀간다’라는 해석이다. 이것은 ‘삼구의 법문’에 대하여 ‘부처의 삼신설’의 입장에 서는 견해이다. 삼신이란 자성신(깨달음 그 자체), 수용신(깨달음의 즐거움을 맛보는, 즐기는 부처), 변화신(갖가지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부처)을 말한다.

이 중에서 수용신은 자수용신(스스로 즐기는 부처)과 타수용신(다른 자에게 즐기게 하는 부처)으로 나뉜다. 이 삼신을 삼중구조에 적용시키는 것이 두번째 해석이다. 즉 중대팔엽원은 자성신, 초중은 자수용신, 제2중은 타수용신, 제3중은 변화신에 배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다양한 중생들을 인도하여 대일여래의 경지로 향하게 하는 방향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상과 같이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라고 하는 것처럼 대일여래의 이면성을 동시에 나타내고자 한 것이 바로 태장만다라인 것이다.

〈법장원 자료제공〉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