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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 (청주 혜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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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3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4-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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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3 18:23 조회 2,3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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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 (청주 혜정사)
수행의 가장 큰 목적은 부처님의 지혜를 깨치는 것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내린 가랑비는 아침에도 가는 나그네의 옷깃을 적시듯 가냘프게 내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졸리우는 눈꺼풀을 비비며 청주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른 아침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게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으로 오고 갔다.

청주로 향하는 버스에도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들을 보며 자신의 직업을 간직한 채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정취와 인연과 인연으로 서로 엮어지듯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전생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주에 도착했을 때 가랑비는 그치고 자욱한 안개로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지만 차장밖엔 즐비하게 늘어선 고목들과 개나리와 백목련이 오는 손님을 환영하듯 활짝피어 방굿 웃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주에 초행길이라 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문화방송국을 찾아갔다. 문화방송국에서 내려 혜정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길을 돌리며 혜정사라는 간판이나 표시가 없나 하고 찾고 있을때 한 보살님이 다가와서 “혹시 총지종 통리원에서 오신 분이 아니십니까?” 하고 물었다. 당황해하며 무의식적으로 “예”하고 대답하였다. 그 보살님은 혜정사를 방분하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줄곧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

한 보살님과 함께 혜정시로 경내로들어갔을 때 수증원 전수님은 겨우내 쌓였던 먼지들과 마음속에 채워진 번뇌, 망상을 청소하시 듯 건물들을 청소하시고, 나무들이 새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빨리 돋아나도록 잔가지들을 손질하는 모습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뇌를 해탈하는 부처님의 모습처럼 인자하고 단아하게 보였다.

부처님의 전당, 금강 법계궁 밀법의 총지 도량인 서원당에 들어갔을 때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장보살인 최영례(해보심), 부회장 보살인 신미자(이타심) 등 많은 보살들이 진언행자로서 수행정진하고 있었다. 불공을 다 마친 보살들은 모두가 환하고 밝은 미소로 “오느라고 고생이 많으셨지요”라고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고, 수중원 전수님은 보살들과 환담을 나누기 위해 과일과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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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사의 유래

혜정사는 총기원년 북문로에 주택 한동을 임차하여 청주 선교부로 개설하였고, 이어 총기 4년 해탈 서원당으로 개칭하고, 총기 5년 북문로 3가 79-1에 3층 건물을 임차하여 불단이설을 하고. 총기 7년 수동 117-1에 대지를 매입하고 수리하셔 이설불사를 하고 혜정사로 개칭하였다. 총기 12년 청주시 내덕동 651-1에 대지 190평을 매입하였으며, 총기 16년에는 지하1증 지상2증 건물로 신죽하여 헌공불사를 하였다.

혜정사를 거쳐간 스승님은 총기 원년에는 대자행 전수님이 1년 7개월, 총기 3년에는 도자, 길선혜 스승님이 6년 3개월, 총기 9년에는 청암, 일성혜 스승님이 2년 1개월, 총기 13년에는 법청, 법지원 스승님이 1년 8개월 동안 근무하였고, 이후 현재까지 수증원 전수님이 주교로 근무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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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의 공덕은 참 신기하다

수증원 전수님을 비롯한 여러 보살님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보살님은 불공의 공덕은 참 신기하다며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 보살님은 총지종이 창종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수행 정진하신 분으로서 처음 절에 다닐 때 남편과 시어머니는 절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여 절에만 갔다 오면 집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 고, 하물며 미친 사람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가족 및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러나 그 보살님은 불공의 공덕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주위의 어떤 압력과 자신의 나태함을 물리치고 절에 다니며 불공한 공덕으로 자녀들은 한결같이 착하며 부자로 섕활하고 있어 예전에 자신을 핍박한 사람들은 부러운 모습으로 자을 쳐다보고 있다고 하시며 불공의 공덕과 부처님께 감사한다고 말하시며 자녀들에게도 꼭 절에 다니며 불공하라고 말을 하지만 자녀들이 불공에 태만하는 것 같아 서운해 하셨다. 

또 어떤 보살님은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이혼할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의지할 곳은 부처님밖에 없다고 판단하여 삼칠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과 저녁으로 서원당에 나와 자녀의 이름을 동참판에 달아놓고 자녀를 위한 불공을 하였더니 며칠 후 아들은 그만두던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되고, 아내와 이혼위기까지 직면했던 일도 몇 년 동안 체인 배가 하루아침에 나아지 듯 없어 지게 되었다. 그 보살님은 부처님의 공덕을 실감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나태할 때에는 자신이 받은 공덕을 생각하고 부처님께 은혜 갚는 마음으로 매일 서원당과 경내를 청소하시고 계신다.



수행의 목적은 지혜를 깨치는 것

수증원 전수님은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지혜를 깨치는 것입니다. 특히 밀교의 진언행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당체법문을 증득할 수 있으며 그러한 당체법문을 통해 마장을 미연에 예방하고, 실생활에 활용하면 삶을 윤택하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항상 넉넉하고 즐거운 웃음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젊은이들은 쉽게 사는 방법만 찾고 있고,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면 포기하고 체념해 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수님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시아버지와 시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암담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쓰러지신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8년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분들을 위해 대소변을 직접 받아내며 극진히 모신다고 모셨지만 돌아가신 후 남은 것은 자신이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조금 더 극진히 모셨을 걸 하는 후회만 남는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은 항상 우리에게 지혜를 베풀고 계시지만 우리는 탐,진,치 삼독과 번뇌와 망상과 집착으로 가득하여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선 자신에게 쌓여진 업장과 번뇌를 소멸하여 보름달에 비춰진 밝은 달과 같이 산속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같이 항상 청아하고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생활 할 때만이 부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히기 위해서는 항상 정진하고 끊임없는 자기 수행과 성찰이 필요힙니다. 꾸준한 수행과 지극한 정진을 하지 않고 부처님의 지혜와 공덕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지혜는 결코 어떤 노력이나 수행 없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을

수증원 전수님은 불교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특히 대승불교와 밀교는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의 근본진리는 자비의 실천입니다. 항상 어려운 이웃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도와주는 봉사야 말로 진정한 자비실천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항상 착한 행동을 해라’ 라고 교육사키지만 정녕 본인들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착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한번 성찰해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증원 전수님은 실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 조하시면서 작년에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꿋꿋 하게 생활하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이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방법이 없을 까?’하고 고민하던 중 전국 스승님 들을 대상으로 매달 1만원씩만 모금하면 큰 금액이 되리라 생각하여 자비회라는 명칭으로 장학금을 모금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스승님들에게 홍보가 부족하여 시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고민을 많이 하였지만 불법을 공부하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불법을 포교하고 부처님의 공덕으로 생활하는 사람으로서 바른 일은 꼭 실천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포기하지 않고 스승님들을 설득하고 직접 종령님을 찾아가 자비회라는 공식명칭을 부여받아 현재는 스승님 들의 협조로 많은 금액을 모금하여 이번 춘계 강공회에 모금된 금액에 대한 활용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하셨다. 또한 어려운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매달 금액을 보내주신 전국 스승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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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교도들은 가족이다

보살님들에게 수증원 전수님의 흉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더니 흉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너무 착하다는 것이 흉이라고 말하였다.

수증원 전수님은 처음부터 혜정사 교도로 생활하시다가 85년 승직의 계를 받고 혜정사 주교로 임명 받아 혜정사에서 지금까지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에 교도들의 가족 한분 한분의 이름과 행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항상 교도들과 같이 생활하시고 어떤 때는 교도들에게 승직자로서 위엄한 자세로 부처님의 말씀을 설법하시고, 어떤 때는 따뜻한 어머니처럼 자상하여 교도들의 사소한 생활들을 일일이 보살펴 주시고, 챙겨 주시는 살아있는 부처님과 같이 생활하고 계신다.

전수님은 교도들은 너와 나라는 분별심이 없이 항상 한 가족처럼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서로 울고, 기쁜 일 이 있을 때는 서로 웃으며, 나이가 많으신 분은 나의 어머니요, 작으신 분은 나의 동생, 아들, 딸이라고 생각하며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고 교도들도 모든 교도들이 가족처럼 생각하여 나를 많이 도와주어 교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보살은 살아있는 부처다

한 보살님은 총지종교도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하였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물어보았더니 우리는 교도들을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경전을 보면 관음보살, 지장보살, 대세지보살 등 많은 불보살들이 존재 합니다. 그 분들은 항상 부처님처럼 생활하고 부처 님의 화신이기 때문에 보살이라 지칭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을 보살이라 부르는 것은 부처님처럼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부여된 명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부처님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 공덕인지 모르지만 절에 올 때마다 남편이 직접 운전하여 절에 태워다 주시고, 절에서 불공하는 동안 남편은 집안 청소를 하시고, 불공이 끝날 시간이 되면 자신을 태우러 절에 오시고, 집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남편과 함께 염송을 한 덕분인지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고 집에 들어와 염송을 하지 않고 잠을 잘 때면 이상한 꿈을 꾸어 항상 염송을 한 후 주무시며, 혹시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자성일에 절에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먼저 불안해하는 것 같아 늦은 시간이라도 꼭 절에 다녀오신다고 하였다.

그 보살님은 총지종 교도로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항상 평온하고 남편과 자녀들이 자신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이순간이 바로 극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이며, 또한 부처님의 법을 만나 부처님처럼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가족들이 변하되고,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 조심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 공덕에 의해 모든 것이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항상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 하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전수님께서는 사원신축 후 건물 뒤편으로 큰 도로가 생겨서 입출입이 불편하여 건물의 방향을 바꾸어 줄 것을 종단에 요구하였다.

수증원 전수님과 혜정사 교도분들과 이야기를 나눈지 몇 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많은 시간이 흘러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어야만 했다.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혜정사를 나올 때 전수님과 보살님들이 “조심히 잘가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마치 자식을 객지에 보내는 어머님의 걱정스러운 모습과도 같았다.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창밖을 쳐다보니 아련한 안개속에서 비춰진 희미한 모습처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수증원 전수님과 혜정사 교도들의 부처님 처럼 행동하는 모습과 따뜻한 마음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시기를 마음속으로 서원하였다.



수증원전수님

경진생으로 부모님들이 모두 불심이 돈독한 불교 집안으로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천안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교회에 가자고 유혹하였지만 엄격한 부모님의 교육과 불교에 대한 신심으로 인해 교회를 방문한 적이 없을 정도로 불교의 인연 업에 의해 1985년 수증원이라는 법명을 받으며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를 담당하는 승직의 계를 받게 되었다.

전수님은 승직에 계시면서 1989년에는 종의원에 피선되고, 1994년에는 원의원에 임명되었으며, 1997 년에 제7대 중앙종의원에 피선되었으며, 2001년에는유지재단 이사로 선임되어 종단에서 중요한 보직을 두루 거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며, 항상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부처님의 진리와 지혜를 깨닫기 위해 철저한 수행으로 용맹정진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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