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뤼사원 우리 스승님(서울 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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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1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2-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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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9 18:34 조회 2,058회본문
부처님에 대한 신심과 구도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부처란 깨달음이니, 마음을 보고 마음인줄 깨달은 것이 부처이며,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중생 이다.
부처는 허물이 없거늘, 중생이 전도하여 자심이 부처인줄 알지 못하는 것이나, 자심이 부처를 찾지 않는 것이다. 불성은 스스로 있는 것이나, 스승을 인하지 않으면 마침내 밝게 요달하지 못 하나니, 만일 깨달아 알지 못하거든 급히 선지식을 찾아 힘써 참구해야 한다.
성품을 보는 것이 부처요 성품을 보지 못하면 중생이다. 중생을 여의고 따로 불성이 있다고 한다면, 부처는 지금 어느곳에 있는가. 중생성이 곧 불성인 것이다.
부처에 있어서 더하지 않고 중생에 있어서 덜하지 않는 똑같은 마음이나, 부처님은 그 마음을 믿고, 중생은 그 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니, 믿고 믿지 않는 것이 다를 뿐이요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닌 것이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채찍삼아
새벽 3시
매일 시작되는 새벽인데도 새벽 시작은 무거운 눈꺼풀을 치키면서 시작된다. 20여년이 넘게 같은 시간에 하루를 맞이하는데도 매일 시작되는 새벽은 각기 그 냄새와 모양이 달라 새롭고 경이롭기까지 한다.
남쪽 끝 통영 단향사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서울의 새벽바람은 매섭기만 하다. 서울생활의 시작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비로자나 부처님이 알려 주시는 걸까? 수은주는 영하 20도로 내려가고 지금 까지 느껴보지 못한 매서운 칼바람과 추위가 서원당 문틈을 타고 황소바람처럼 밀려 들어와 새벽정송의 자세를 여미게 만든다.
벌써 20여년을 한결같이 사분정진속에 마음 닦는 진언수행을 하는데 그놈의 마음은 가물가물 한 것이 진언 수행의 멀고 험한 길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오늘 하루도 작은 서원당에 몸을 의지하고 옴마 니반메훔 육자진언에 육신을 던져 새벽정송으로 마음에 남아있는 탐 - 진 - 치의 잔상을 닦으며 아침의 여명을 맞이한다.
부처님이 이곳 유서 깊은 관성사에 보내심은 더욱 정진하여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라는 큰 뜻으로 이 곳 낯선 곳 까지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관성사가 어떠한 곳인가? 큰 스승이었던 복지화 스승님과 기로스승인 경관스승님의 숨결과 손때가 곳곳에 배인 곳이 아닌가!
큰스승님의 뜻에 어긋남 없이 수행에 전념해야 하는데, 앞선 선배스승님을 생각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보며 해정스승님과 정법계스승님은 흐트러짐 마음을 다시 한번 붙잡는다.
어느덧 아침 해는 솟아오르고 긴 새벽불공을 훔자오인으로 마친다.
마음닦는 것은 무엇인가. 스승님은 “이 세계에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부자, 가난 한자, 많이 배운자, 그렇지 못한 자, 과학자, 종교가, 철학자등
일체 중생이 누구나 다 중생임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견해도 역시 업안으로 밖에는 보지를 못함 또한 사실이고, 우리 일체 중생이 이 업안을 해탈하여 진리의 심안으로 세상을 보고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진리의 법안을 만들려면 어두운 마음을 밝게 하는 심성수양이 필요하지요.
이상하고 묘하게도 성품은 각자가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탁한 육안으로는 성품을 보지 못하고 고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부 중생은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재물에 대한 욕심, 색에 대한 욕심, 음식에 대한 욕심,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이 가득 찬병에 걸린 환자 들이다.
바른 성품을 보고자 하면 탐. 진. 치삼독과 오욕락을 버리고 육바라밀을 행해야 한다. 그러면 본 성품, 본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고 한다.
모든 중생이 전언의 공덕을 생각하며
아침 공양과 사원주위를 청소하다 보면 다시 오전 불공이다.
새벽불공에도 교도들이 한 둘 참여 하였지만 오전불공에는 제법 교도들이 모였다. 교도들 사이에 가족들의 모습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띤다.
관성사 이타심 회장보살님 왈 “관성사에 다니는 교도들은 모두 남편과 가족들을 제도하고 심지어 출가한 사위와 며느리 그리고 손자 손녀들 까지 제도를 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습니다.”고 자랑을 한다.
해정정사. 정법계 전수님의 평소 가르침이다. “혼자만의 수행과 불공 진언염송여 아닌 가까운 가족 모두 나아가 주위 친척, 더 나아가 모든 중생을 제도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중생들이라 조금만 방심을 하면, 진언염송에 회의가 오고 나태와 마장이 항시 주위를 맴돌며 우리들을 유혹합니다.
그렇지만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서 수행을 하면 금강같이 단단해져 온갖 마의 유혹을 견뎌 진아를 볼 수 있습니다. 혼자만 열심히 불공해서 선인을 맺었지만 가까운 가족들 중 한사람이라도 선인을 맺지 못하면 가슴이 아프듯, 그래서 가족들과 한길을 간다는 것은 큰 복을 짓는 것이며 좋은 인연을 맺는 출발점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이들의 생명에 대한 모습을 한번 봅시다. 좋은 사주를 갖기 위하여 미리 사주쟁이한테 사주를 받아놓고 아기를 낳는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웃음이 나고 미련한 이야기 입니까. 그렇다고 태어날 아기가 정말 좋은 인연을 맺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좋은 인연은 태중에 아기가 있을 때 부모의 마음 공부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조용히 본성닦는 불공은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가장 좋은 태교입니다. 태어 날 아기가 과거 많은 악업을 가지고 있다 해도 부모의 지성불공을 모든 악업을 선업으로 물길을 돌리는 것입니다.”
스승님의 법문이 한참이다. 법문을 듣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 끄덕이며 법문속에 동화되어 파묻힌다.
풍자와 해학으로 교도들과 늘 대화
아침부터 꾸물한 날씨가 급기야는 하얀 눈이 되어 흩날린다.
관성사는 사랑방의 냄새가 나는 곳이다. 늘 스승과 교도가 허물없이 대화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다. 가정의 문제에서부터 종단발전까 자 주제가 딱히 정해짐 없이,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은 무차법회를 하 모양으로 높고 낮음 없이 대화하여 결론을 공유한다.
스승님의 말씀이 이어 진다. “관성사에 부임하고 며칠이 지나고 새벽에 공양간에서 중얼중얼 거리는 전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요? 유난히 추운 겨 울에 공양간의 낡은 미닫이문이 얼어 잘 열리지 않아 힘을 쓰면서 전수님이 실천서원인' ‘인욕과 하심으로...’를 외우면서 문을 열려고 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웃음이 나왔던지”하며 과거의 시절을 회상하듯 시작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각사. 지인사. 자석사. 삼밀사등 많은 사원을 신축하였지만 정작 스승님이 기거할 사원은 낡아 교도들에게 명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원을 완공하고 나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이 듣게 되어 마음이 상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마다 실천서원인 인욕과 하심으로 진애심과 원망심을 없애고... 하는 문구가 없었다면 수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다”며 “옛날 법을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법을 교조적으로 해석하고 교조화 시키면 그 법은 사장된 법입니다. 법의 기본 정신은 바꾸지 않고 시대와 사람의 변화에 맞는 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시대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법은 법의 가치를 잃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 차 운전을 하는데 시내 속도가 평균 60키로라 하자. 세월이 흘러 생활이 윤택해지고 생 수준이 높아서 자동차 수가 늘어나서 60키로의 속도를 내지 못 하는데 그 법을 고수 한다고 하면 도로는 엉망이 되고 사고가 엄청 일어날 것입니다.
40키로 30키로 규정속도를 줄여서 도로의 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며 종단의 종헌 종법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종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은 다양합니다. 젊은 사람이 있으면 나이든 사람도 있고,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그보다 못한 사 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화합과 조화로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조화와 화합이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스승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스승을 보았을 때는 곁에서 섬기고 보지 못 할 때는 가르침을 생각하여, 효자가 부모를 생각하는 것같이 하며 사람들이 음식을 생각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또한 스승은 불법에 의지해 마부가 말을 잘 다루듯 중생이 악을 짓지 못하도록 하고 스승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잘 가르켜야 한다.
이렇듯 스승과 제자는 서로 깊이 믿어 상대를 자기처럼 여겨서 제가 못하는 일을 상대에게 요구하지 말며. 예의를 숭상하고 진리를 가지고 가르치며 온화하고 성실하여 서로 원망해 다투지 않아야 한다. 스승은 스승답게 제자는 제자다워 서로 비난한다는가 미워한다든가 하지를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비단 사제간의 관계가 아니라 사회에서는 선배와 후배, 가정에서는 남편과 부인, 아버지와 자식, 늙은이와 젊은이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참회로 새로운 날을 준비한다
겨울의 하루해는 무척 짧다. 스승님의 저녁불공은 참회가 주축이 된다. 물론 모든 불공의 시작은 참회에서 시작되지만 저녁불공에서는 하루의 얼과를 반성하고 참회하며 새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해정정사님과 정법계전수님은 말씀하신다 ‘지극한 마음 로 참회를 하면 내 업장만 녹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업장을 녹여준다. 참회와 말로 만인을 편안케 해주고 수행을 완성케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참회는 하심에서 시작을 합니다. 마음공부하는 사람을 하삼을 해야 합니다. 내몸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 경하고 존경하다 보면 자신도 존경을 받게 됩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정정사님. 정법계전수님의 말씀에 한없는 자애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마음을 가슴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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