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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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종령 록정 대종사 추모기획 특집 -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극락왕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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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5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6-02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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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4 09:29 조회 2,2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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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령 록정 대종사 추모기획 특집 -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가지력으로 극락왕생 하소서

불교 총지종 종령 록정 대종새

밀교의 정신으로 생활불교를 지향하는 총지종의 최고 어르신이며 반세기 를 중생들과 함께 수행하며 불법을 전해왔으며 종조인 원정 대성사를 보필 하여 총지종을 창종한 후 지금까지 총지종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셨던 분!

이제 속세의 연을 다하시고 무여열반의 세계에 원적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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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 교

록정 대종사는 1920년 경주 황남동에서 탄생하였으며 불심이 돈독한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평소부터 부처님과 인연으로 인해 학창시절부터 절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절에 갔다오면 부모님들이 칭찬을 하는 등 불심이 아주 깊은 집안이었다.

록정 대종사가 옴마니반메훔과 인연을 맺은 것은 결혼 후 처갓집에서 진각종의 전신인 참회원과 인연을 맺고 난 후이었다. 그때 록정 대종사는 “일본식 적산건물에서 옴마니반메훔하고 시끄럽게 큰소리 치는 곳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병을 고친다는 소문이 무성하여 병자를 리어커에 싣고 오고 냄비에 밥도 해먹으면서 며칠 동안 옴마니반메훔하며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 당시 록정 대종사는 종교적인 경과 내용도 모른 체 단지 법당에 나가 절만 하는 정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생의 연으로 인해 불교에 대한 깊은 신심과 자신도 모르게 다가오는 법문을 들으시고 중생제도의 큰 서원을 발하시어 밀교문에 입문하게 되었다.


2. 원정대성사와 총지종 창종

창종 전의 우리나라 불교계는 밀교에 대해서 잘 몰랐고, 또 당시만 해도 밀교라는 말을 쓰지도 않았다. 그런데, 원정 대성사께서는 이 땅에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뿌리 내리게 하신 분이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육자 진언염송법을 의궤에 맞추어 창안하셨다. 즉 ‘육자의궤법’을 정립하셨던 것이다.

창종과 더불어 밀교종단으로써의 면모에 걸맞게 모든 교상과 사상을 정립해 나가셨다. 첫째, 관세음보살의 육자진언염송을 명확한 경전의 근거에 의하여 수행케 하였다는 점이다. 그전에는 그냥 ‘옴마니 반메훔’을 염송하고만 있었는데, 종조님께서는『불설대승장엄보왕경』을 소의로 삼아 모든 교리적 근거와 수행체계를 정립 해나가셨다. 여기에다 이전과 달리 ‘옴마 니반메훔’을 ‘준제관음보살’의 진언과 함께 지송토록 하였다.

두 진언으로써 현세정화와 무량공덕의 상승적 공능이 일어난다고 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철저한 경전의 고증을 통해 설하셨던 것으로『대승장엄보왕경』은 물론이요『불설 칠구지불모준제대명 다라니경』이라는 소의경전에 근거한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창종 이전의 진언염송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원정 종조님께서 모든 것을 철저히 경전에 근거하시고, 이를 또 직접 정진을 통해 그 결과로써 정립해 나가셨다는 점이다.

밀교의 의궤를 갖추고 진언염송을 하게 된 것은 원정 대성사에 의해서 부터라고 말할 수 있겠다.

초창기에는 불공할 장소 마련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그래서 창종을 앞두고 몇군데의 사원을 개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때는 재정적으로도 어려웠고, 겨우 셋방을 얻어 교화를 하기 시작 했다. 그 대부분이 스승님이나 교도 가운데 건물을 무상으로 보시하거나 자기 집을 서원당으로 내놓기도 하였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때의 교화열기란 대단하 였다.

원정님께서 밀교법을 가지고 교화를 하셨지만, 밀교종의 창종은 법제자와 교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니다. 그때 당시 원정님의 가르침에 뒤따르던 법제자와 교도들이 원정님께 밀교종의 창종을 간곡히 간청하여 창종하게 되 었던 것이다.

종조님의 뜻에 동조한 많은 스승과 교도들이 원정님의 사상과 교상에 동의하고 육자의궤법과 경전에 근거한 새로운 종단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원정님의 수행정진과 스승, 교도들의 지원과 성원공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좁은 서원당이긴 하였지만 앉을 자리가 없었고, 원정 종조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이십리 밖에서도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열의와 사명감으로 중생 교화에 임했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때는 공생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고 어려운 상황이라 오로지 부처님 법을 믿고 종조님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교화할 때였으니까 어려움도 몰랐다.

한 일화로 종암동에 있을 때 원정님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고, 환당님은 따뜻한 곳에 못계시는 체질이고 내가 올라오면 원정님과 함께 잠을 잤다.

연탄을 때면 방 전체가 따뜻해져서 원정님과 같이 잠을 자면 나는 더워서 땀으로 흠뻑젓곤 하였다. 환당님은 별도의 다른 곳에서 주무시고 여름에는 옥상에서 자는 경우도 있었다.

환당님이 원정님과 함께 지내셨으므로 제일 가깝게 모셨고 나는 지방사원에서 교화를 하고 또 올라와서 종단의 일을 하는 2중의 일을 했다.

지방에 있으면서 원정님께서 어느 지방에 가서 일을 보라고 명령하면 즉시 방문하여 처리하여 지방일은 내가 전부 처리 하였다. 다시말하면 야전사령관의 임무를 맡으면서 업무를 처리하였다. 한때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온종일 3개 지방을 돌 아다니곤 했다. 또한 종교단체로 인가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동분서주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같은 군소종단을 인가해주면 다른 많은 종단에서 인가를 해주어야 하고 형평성의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은 담당공무원이 시찰을 나왔는데 외형상 절의 형태도 아니고. 우리 형편은 보잘 것 없을 정도로 열악하여 종교단체 등록은 연기하고 당장 법인체는 승인을 해주겠다고 해서 정식적으로 인가를 받았다.

그 후 법이 개정되어 전통유물이 있는 곳은 전통사찰로 인정을 해주고 없는 곳은 재단의 형태를 인가 해주어서 종교단 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환언하면 총지종의 법인체 및 제반적인 행정업무를 추진하였다. 또한 실천서원은 선교부에서 사원의 절 이름이 붙을때 수인사에서 닦을수자 참을인자를 생각하며 실천서원을 만들어 원정님께 동의를 구하니 결과를 보시고 승낙을 하여 의궤에 실천서원을 삽입시켰다.

실천서원은 내가 마음에서 서원하고 부처님 앞에 다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3. 록정 대종사의 수행

원정님께서 총지종을 창종하실 때 강조 하신 것이 삼밀수행과 육행실천이었다. 이를 수행의 덕목으로 꼽으셨다.

지금까지도 수행의 제일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히 원정 대성사께서는 창종과 함께 밀교의 의궤법을 바로잡아 교도들에게 수도하는 방법과 덕목을 가르치면서, 신구의 삼밀로써 좋은 업을 짓도록 하고, 나쁜 업은 추호도 짓지 마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진언염송을 통해 본인의 허물을 깨우치고 자기참회의 시간을 많이 가지게 하였다.

자기의 허물을 알자는 것이다. 내 허물과 결점을 찾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진언 염송의 정진에 있다. 육자진언 염송과 준 제진언 지송을 지극히 하면 자연적으로 내게 있는 문제들이 나오게 된다. 진정한 참회야말로 내 마음을 바로 잡고 깨달음 을 이루는 데 좀더 가까이 갈 수가 있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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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화 생활과 일화

교도가정의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가 가장 보람을 느꼈다.모든 고통과 재난이 소멸될 때가 가장 보람되고 환희한 마음이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과 같은 것이 바로 스승의 마음이니까. 특히 병자 가 들어와 지심으로 불공하여 완쾌 되었을 때나, 또 가정화목과 병고해탈의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고 큰 보람을 느꼈다. 또 패역했던 자가 심성을 바르게 하고 부처님 말씀을 지심으로 믿는 사람으로 바뀌었을 때는 스승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5. 현실에 대한 조명

과학이 발달되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높은 반면에 범죄와 불안 상태가 깊어지고 있다. 그럴때 일수록 종교의 역할이 강조된다.

정신과 심성의 개발이 중요하다. 물질과 정신이 공존하여 발전하는 모습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사회병리의 모든 문제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먼저 상대의 허물을 탓하지 말고 내 허물의 모습을 바로 보고 고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야 화합과 단결을 이룰 수 있고, 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6. 종단발전을 위한 방안

승단의 스승양성이 가장 큰 문제이다. 지도자로 손색이 없는 종교인을 육성해야 한다. 교도들의 수준은 높아만 가는데 스승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신규스승채용에 있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스승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스승이 되려고 하는 자나 승직자는 생활의 모든 면에 앞서고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종단 발전은 외적 성장에 중심을 두지 않고 내적인 모습을 갖추는 작업을 해야 하며 교화방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예전과 지금의 상황이 맞지 않는 경우는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또 스승의 자질향상은 물론이요, 인성교육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 동안 항상 구호에만 그쳤는데, 이제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한 가지라도 실행하는 종정운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화를 해보면 지식이 높다고 교화를 잘하는 것 아니다. 물론 지식도있으면서 마음도 잘 닦으면 참 좋은데, 대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굳이 선후를 따진다면 먼저 마음의 닦음이 최고이고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인재 양성은 바른 심성을 함양하는 데 맞춰야 할 것이다. 특히 신규스승에 대한 교육과 스승의 재교육이 중요하다.


7. 스승님과 교도들에게 당부의 말

종단전체는 화합과 협동이 제일 필요하 . 화합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화합이 우선되어야 단결심과 협동심이 일어나고 그 힘으로 어떠한 난관도 극복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승단 스승님 들과 교도들에게 꼭 당부드리고 싶다.

(이글은 1998년 6월 2일 불교텔레비전에 방영된 뜰앞의 잣나무 종령 록정과 2002년 종령 특별대담, 2003년 3월 기로원을 방문하여 녹취한 종단의 행장에 대한 기록에서 발취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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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설법내용 - 설법자 응행사법
법을 설하는 자는 마땅히 네가지 법 으로 행해야 하느니라
첫째는 많이 배워서 폭넓고 해박한 지식을 가져야 하고 또 능히 일체의 언사와 장구를 갖추어야 하느니라.
둘째는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법이 나고 멸하는 모습을 반드시 알아야 하느니라
셋째는 선정과 지혜를 체득하여 모든 경법에 수순하여 다른 생각이 없는 것이요
끝으로 보태지도 않고 줄이지도 아니하며 설한대로 행하는 것이다.
포교에 있어 이를 지침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바르게 닦지 않고 지성으로 정진하지 않으면 잘못된 믿음, 삿된 가르침이 되느니라. (총기3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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