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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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우리사원 우리 스승님(서울 총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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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6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7-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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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4 18:51 조회 2,4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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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원 우리 스승님(서울 총지사)
불교는 불교의 수행이요, 그 목적은 성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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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싸늘한 기운이 몸을 감싸 안으며 다가선다. 주위에는 옅은 안개가 온 동네를 맴돌며 자욱하게 드리우고 어른 새벽이지만, 오고가는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항해 빠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서울의 한 복판이면서 한국 문화의 중심지이며,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동네인 역삼동에 위치하면서 부처님의 진리를 체득하고 유가삼밀관행법으로 즉 신성불의 대도를 이룩한 밀교의 정통도량인 총지사!

총지사는 총지종의 본산으로 총지종의 모든 법과 의식과 의궤와 법신 비로자나불이 법을 설하는 밀교의 근본도량이다.

또한 생활의 불교화, 불교의 생활화를 기치로 유명 불교사찰이 대부분 산속에서 상구보리를 주장하는 스님들과 달리 중생을 구제하고 중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생활속에서 즉신성불의 대도를 이룩할 수 있는 밀교문으로 자신의 집착과 망상과 아집으로 인해 번뇌와 고뇌에 빠진 중생들어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심신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밀교의 정통도량인 총지사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호기심과 더불어 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간절한 서원과 함께 서원당으로 들어서니 불단에는 옴마나반메훔의 본존이 가운데에 자리 잡고 계시면서 태장계와 금강계 만다라의 수 천의 불보살들을 통솔하며 자비의 금빛 환희한 광명을 발하시며 수행자에게 법을 설하시고 계셨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주인공아, 그대가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난 것은 눈 먼 거북이가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한평생이 얼마나 되기에 도를 닦지는 않고 게으름만 부릴 것인가?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렵나니, 금생에 도를 닦지 않고 헛되이 죽어버리면 만겁을 지나도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라. 모름지기 법에의지하여 날마다 새롭고 부지런히 닦아 물러나지 말고 속히 정각을 이루어 모든 중생을 제도하라.

나의 근본 원은 그대 혼자만 생사의 바다에 서 구해내는 것이니라.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대가 시작 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기 까지 태란습화 네 가지로 생명을 받을 때마다 부모를 의지하여 출몰하였으니, 지극히 오랜 세월동안 부모가리었던 이만 하여도 한량이 없다. 이렇게 관찰한다면, 육도 중생 중 그 많은 생애에서 부모가 되지 않았던 이 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중생들이 악취에 떨어져 밤낮없어 고통을 받고 있나니, 만약 그대가 구제하 지 않는다면 어느 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가슴이 찢어지듯 애달고 슬프도다. 천번 만번 바라노니 그 대는 빨리 큰 지혜를 밝혀 신통력과 자재한 방편의 힘을 갖추고, 속히 거친 파도를 헤쳐가는 돗대가 되어 탐욕의 저 언덕에서 헤메는 미혹한 중생들을 널리 제도할 지어다.“ 모든 것은 마음자리 주인공이 만들어 내다는 일체유심조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부처도 만들어 내고, 천당도 지옥도 만들어 냅니다. 마음자리 주인공, 그것이 씨앗이 되고 작용을 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 냅니다. 너와 나뿐만이 아니라 크고 작고 , 길고 짧고 착하고 악하고, 아름답고 추하고, 친하고 성글고, 살고 죽고, 성하고 쇠한 중생세 계가 쫙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겉모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니에 따라 각기 다른 껍질 을 덮어쓰게 되는 것입니다. 돼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돼지가되고, 호랑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호랑이가 되고, 모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모기가 되는 것입니다.


불공은 불교의 수행이요

해탈의 길

불공은 불교의 수행이요 그 목적은 성불에 있습니다. 인간이 불교를 공부하고 그 가르침을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성불하기 위해서 인데 부처가 되고자 하는 것은 곧 세상이 모든 고로 부터의 완전한 해탈을 의미 합니다.

육도를 끊임없이 윤회전전하며 겪어야 하는 온갖 고통의 반복을 수행을 통해 부처의 경지에 이르면서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아무데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를 누림은 물론 이요, 혼자만의 해탈이 아닌 고해의 뭇 중생을 구제 하여 다 함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 불교수행이요, 불공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불은 다 생겁동안 전전해온 윤회의 아름다운 완성인 것입니다. 우리가 불공이라고 하면 진언행자는 염송을 생각하게 되고 불공은 염송이요, 염송은 곧 불공임을 알고 행하고 있으면 염송은 우리의 주된 신행방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교수행의 목적은 그 어떤 것보다도 행자 자신의 마음을 닦아 대낮같이 밝고 맑은 마음 하나로 일체고에서 해탈하여 부 처님처럼 대광명으로 세상을 밝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불교수행의 실천과제이며 불교의 씨앗이 아니겠습니까? 행자의 마음가짐은 불공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은 우리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세간적인 모든 욕망과 욕구는 집착할 것 없는 허망한 것임을 알고 자신이 먼저 그 모든 집착을 끊어 버리시고 또한 그렇게 평생을 가르치셨는데 오늘날 우리는 교주인신 부처님이 다 버리신 것들을 다시 모으려고 하고 있으니 진실로 잘못되었다 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밀교의 소의경전인 대일경에서도 밀교수행의 목적을 말씀하시되 자신의 본래청정한 마음을 여실히 깨닫은 여실지자심에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백팔염주 빛나는 것만큼 우리 마음과 업을 잘 닦아서 마음 다스리고 산다면 이것은 바른 불교수행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염송을 많이 하눈 것이 불공 많이 하는 것이고 현실적인 모든 것이 다 성취된다는 생각과 마음 갖지 말고, 그 마음이 욕심에 가득 차 있고, 교도 보살들도 욕심에 가득 차서 불공하게 되면 기복신행으로 빠지게 되고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교도들은 기복신행에 편승하지 말고 항상 바른 믿음과 신행이 되도록 해야 하고 바른 마음가짐으로 삼밀관행과 육행실천을 꾸준히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마음 닦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잘못된 신행이 되어서 아무리 불공해도 안되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면서 법을 비방하고 종단을 비방하며 결국은 퇴전하여 떠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밀교를 수행하려면

밀교수행자는 윤회와 생사고해에 대한 염리심을 내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을 일으키고 중생에 대한 대자비심을 내어야만 밀교를 바르게 수행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지게 되는 것입 니다.

밀교의 소의경전인 대일경의 서품인 입진언문 주 심품은 이 경전의 대의를 총론한 것으로써 그 주된 내용을 ‘대일경 삼구법문’이라 하는데 수행자가 비로자나 부처님의 경계를 깨달으려면 보리심을 인으로 하고 대비심을 근으로 하여 방편을 구경으로 한다. ‘고 하듯이 밀교를 수행하려면 중생을 위해 깨달음을 향한 보리심을 먼저 낸 다음 중생구 제를 위한 대자비심을 닦고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일체중생을 고와 고의 원인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대서원을 굳게 세우고 중생을 애민하게 생각하여 광대한 자비심을 남보다 더 일으켜 중생구제의 선교방편을 세워서 구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극도로 강력하게 이타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비로소 금강승인 밀교수행에 입문하고 수행 하여서 성불의 경지에 오르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화는 중생을 제도하는 길입니다.

교화는 중생을 교도화 하는 뜻이니 만고불변의 진리인 부처님의 가르침을'설하여 진리에 무지한 어두운 중생들을 진리의 문으로 바르게 인도하고 끝없는 자비를 베푸는 일입니다.

첫째 잘못을 보면 잘못을 덮어 두지 말아야 합니다. 교화할 상대의 잘못을 보고도 모른 채 한다면 이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요. 따라서 죄가 됩니다.

잘못을 덮어두게 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고치지 못하게 됩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우선은 조용하다 할지라도 중생이 복되게 되지 못한다는 더 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잘 못을 고치지 못하고 살다가 죽게 된다면 어찌 되겠 습니까?.

그래서 중생교화에 섭수법과 절복법이 있으며 밀교에는 밀교삼륜신이 있는 것이라 때로는 교화를 위해서 자비한 마음의 보살이 되고 무서운 명왕인 교령륜신의 모습을 보이며 교령신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중생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섭수하고 절복하는 그 근본이 대자비인 것입니다.

둘째 모든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진실한 구도자로서의 서원을 해야 합니다.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 남의 잘못을 외면하는 것은 구도자로서의 자신의 소임과 사명감을 망각하고 충실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밀교사상중에 대락사상이 있습니다. 자신을 위하는 일체의 욕심을 버리고 소욕지족 하고 내 감정과 편견에 거슬리고 맞지 않는다고 해서 성내고 화내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오욕속에 살면서도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구현하고 사리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을 위하고 세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욕심의 불씨, 진심의 불씨를 버리지 말고 대욕과 대노를 발해야 합니다. 이렇게 실행하며 살때 그 무엇과도 비교할바 없는 ‘대락’을 얻게 되고 이 대락에서 깨달음을 얻어 세상을 구제하고 중생을 제 도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밀교의 수행인 것입니다.

넷째 응병여약이라 합니다. 불공중에 오는 마장이나 어려움이 있을때는 그 마장이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벗어 날 수 있는 적절한 교화방편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종조법설집에서 말씀하듯이 “불공중에 오는 마장을 현실적으로나 진리로써 막지도 않고 삼업과 삼독심에 습성이 되고 젖어있는 중생의 병에 응해 약을 안주고 그 미진에 약 안주면 시련고개를 못 이겨서 시간어겨 중단하게 되고 마장따라 가기 때문에 퇴전하게 된다 어떤 어려움이 보일 때는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을 사용해야 하며 조용히 희사하고 불공하여 그 마장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다섯째 사물에 대한 편견과 주장을 버려합니다. 삼해경에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사물에 대한 자기의 편견이나 소견의 주장에 대한 잘못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적은 소견만 내세우며 남의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함과 잘못을 지적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알고 행하는 법만이 불법이라고 내세우지 말고 내 마음에 사가 없고 행함에 미가 없다면 모 든 것이 한 법도 불법이 아닌 것이 없겠으나 내 생각이 어둡고 좁고 미련하여 내 아는 법만을 고집하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은 불교와는 인연이 멀어지는 것임을잘 알아야 합니다.

내 법은 정이고 네법은 사라고 하지 말고 오직 바른 법을 행할지언정 불법안에서 아시타비를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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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이 설법한다

밀교에서는 형상이 없는 이불이 설법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법신이 설법하며 또한 중생이 어떻게 알아듣게 되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밀교수행자는 수행을 통하여 마음의 눈과 귀를 기울여서 대우주를 관찰하며 현상을 통해 보여주고 들려주고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를 통한 현상 그대로가 당체이며 일사일물이 당체 그대로 무한의 진리를 나태내고 있으며, 사는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기게 된 것으로 모든 연기현전하는 법이 법계의 법 문임을 말하는 것으로 당체설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법을 설하는 밀교의 법신중에 등류법신이 있습니다. 등류란 중생과 같은 모습이 되어 법을 설한다는 뜻으로 깨달음에로 이끌고자 하는 중생과 같은 장소, 같은 모습이 되어 경책하고 법을 설해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법신의 몸은 형색이 없어 다 함이 없는 무진상이므로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케 하기 위해 서는 법문도 다함이 없는 지라. 어떤 때는 부처님 모습, 보살 모습, 연각, 성문, 범천, 제석, 대자제천, 나라연쳔 등의 모습을 나타내며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의 모습으로 나타내며 장부, 부녀자, 동남 동녀, 나가 개나 소등 금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이니 이것은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중생을 가르치고 인도하기 위해서 밀교 삼륜신, 자성륜신, 정법륜신, 교령륜신이 있으니 이것은 중생구제를 위해 나타나는 법신의 세 가지 모습으로 이 삼륜신의 나타남은 수행자의 수행공덕에 의해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밀교에서는 진리를 본체로 하는 형상이 없는 이불인 법신불이 법신으로 설법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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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의 수행풍토 조성

총지사 스승님과 교도들은 총지종의 크고 작은 행사를 담당하며 굳은 일 등 모든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총지종의 모든 법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종단의 수행풍토를 조성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 때 문에 총지사에서 수행하는 보살들과 스승님은 자부심과 더불어 부담감도 많다고 한다.

한 보살님은 종단의 모든 행사도 다 부처님께 공 덕을 짓는 일이라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부처님 의 공덕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피로하지만 정신적으로 행복하며 이러 한 일을 행함으로 인해 부처님의 공덕을 많이 입었 다고 하면서 자신의 수고로움을 감추려고 하셨다.

또한 현 시대는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서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삶이란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즉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갑작 스런 사고에 의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백만장자도 삶을 살아가면서 외부의 환경과 자신이 만들어 낸 상에 의해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용맹정진하며 모든 탐.진.치 삼독 을 버리고 삶의 근본원인을 관찰하며 청정한 마음으로 용맹정진 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돈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항상 남을 위해 봉사하는 보살도정신으로 생활한다고 하셨다.

총지사 서원당에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과 총지사 스승님과 교도들의 진주같이 아름다운 보배의 법을 듣고 있을 때 이곳이 바로 극락이요, 천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나태했던 자신을 자책질 하며 위대한 스승님과 교도들을 만날 수 있 었음에 부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며 서원당을 나왔다.




법등정사와 인덕심 전수님은 

자경문에 “몸을 정중히 가지면 산란함이 쉬어져서 선정을 이루게 되고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을 돌려 지혜를 이룬다. 참된 바탕은 말을 여의었고 참된 이치는 움직이지 않으니라. 입은 재화의 근본이니 반드시 엄숙하게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릴 위험이 있고, 가벼이 쏘다니는 짐승은 화살 맞을 재앙이 업지 않느니라. 몸과 마음에 동함이 없이 하고 고요하게 다만 부처님을 보아 스스로 귀의할 지니라.“ 라는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오직 수행정진을 최고로 생각하시면서 용맹정진하시는 분 들이며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바른 마음가짐으로 정진하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바른 수행 가운데 공덕도 생기고, 소원도 성취된다고 하시면서 불도를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수행정진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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