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행은 자기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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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8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9-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이달의 설법문안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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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5 06:40 조회 2,384회본문
장아함경 반니원경을 보면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사람은 애욕에 매이지 않으므로 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이 세 가지를 잘 지키는 사람은 덕망이 높고 명예를 드날리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과 잡된 생각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을 일러 해탈이라 한다.
계행이 있으면 저절로 선정이 이루어지고, 선정이 이루어지면 지혜가 밝아진다. 이를테면, 흰 천에 물감을 들여야 그 빛이 더욱 선명하게 되는 것과 같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갖추지 못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두루 갖추면 마음이 저절로 열리어 세 상일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시냇물이 맑으면 그 밑에 모래와 돌자갈의 모양을 환희 들여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진리를 찾으려면 먼저 그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 여래는 청정을 가장 즐거워 한다.“
얼마 전 한 택시 운전사가 손님이 두고 내린 현금 100만원을 보고, 돈의 유혹과 양심사이에서 이럴까 저럴까 밤새 뜬눈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양심을 택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전해 듣기만 해도 흐뭇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영업하는 차에서 주운 것을 잃어버린 주인을 찾아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의무인데, 이런 일이 신문의 기사로 다루어져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요즘 세상이 각박하고 삭막하기 때 문입니다. 남의 일이라 말이 쉽지, 누구나 그런 경우를 당해 보면 유혹의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돈을 잃어버린 자기 차의 손님이 얼마나 애타할까를 생각하고 신고하 것입니다.
도둑이란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일만이 아니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도 도둑이라고 경전에서는 규정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것이란 없습니다. 뿌려서 거두는 것이지 뿌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횡재를 만나면 언젠가는 횡액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이요 인과관계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런 거액의 돈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사소한 유혹 앞에서 흔들릴 때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남의 눈에 뜨지 않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생활규범이 있어야 하고 자기 질서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 규범과 질서가 없으면 조그마한 것에 부딪쳐도 이내 넘어지고 맙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하게 살망정 자기 질서를 지니고 사는 사람에게는 인간적인 긍지와 품위가 따릅니다. 겉으로는 아쉬운 것 없이 그럴듯하게 사는 사람일지라도, 생활에는 규범이나 자기 나름의 질서가 없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인간의 기품이 끝내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한 집안에도 그 집안 나름의 가훈이나 가풍이 있듯이 종교에도 그 신자들이 지녀야 할 규범 과 질서가 있습니다. 무슨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지키는 계율이 바로 그것입니다.
불교도의 기본적인 생활규범은 오계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 않고,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술을 마셔 취하지 않겠다는 것들입니다.
불자란 이 절 저 절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이니고 불 . 법 . 승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와 같은 생활규범을 지니겠다고 일단 맹세를 했으면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규범과
질서를 통해서 우리들의 생활이 개선되고 삶의 질이 향상 될 수 있습니다.
흐트러지기 쉬운 마음에 안정을 가져 올 수 있고, 마음에 안정이 이루어져야 자기 자신의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 의 경우, 오늘 이 땅의 불자들은 출가나 재가를 가릴 것 없이 계 는 받을 때뿐이고 일상에 잘 지 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계 를 지키는 것은 콱 막힌 소승의 짓이고, 닥치는 대로 먹고 행동하 는 것을 대승인양 착각하는 무리들마저 없지 않습니다.
흔히 계율과 선정과 지혜는 누구나 마땅히 배울 것이라고 해서 삼학이라고 합니다. 불교는 여러 종파가 있지만 계 - 정 -혜 삼학은 수도의 기본 틀입니다. 그리고 이 삼학은 독립된 것이 아니고 선정을 닦지 않고는 심성의 빛인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간혹 덜된 사람들이 깨치면 그 만이지 술을 마시건 어디서 놀아 나건 그게 무슨 문제냐고 하지만 그런 허황한 말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올바른 행위가 전제되지 않고는 올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알았다면 반드시 바른 행실이 따르게 해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진리는 혀끝에 있지 않고 오로지 청정한 행동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의 불교교단이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도 그 근 본원인을 파악해 보면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삼학을 교리로 모셔 두기만 하고 실지로 닦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건전한 생활규범 없이는 건전한 생활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는 받는 일보다 지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해마다 이 절 저 절에서 보살계를 몇 번 받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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