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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경주 건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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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8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9-01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사원탐방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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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5 07:55 조회 2,37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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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원 우리 스승님(경주 건화사)
마음자리를 찾고 진리를 구하는 자 해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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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맑은 공기가 가슴속 깊은 곳으로 들어오며 몸속에 있는 모든 번뇌를 한 순간에 쓸어버릴 것 같은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소불교의 요람이요, 신라 천년의 고도로

불국토를 유지하고 있는 경주!

8월 중순이지만 뜨거운 햇쌀은 여전히 푸른 창공에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들판에는 실 록의 물결로 출렁이며 오는 나그네를 반가이 맞아준다.

경주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안강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경주시내를 지나고 짙은 녹색으로 가득찬 시골마을을 지난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환하게 피어나 행인들에게 인 사를 한다.

안강읍에서 하차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웅장한 건물로 모든 세속의 번뇌와 고통을 해 탈하고 세상의 삶에 걸림이 없이 바람이 불면 바람결 따라 비가 오면 물결 따라 유유자 적하며 오로지 부처님의 참 깨달음을 구현하는 자태로 굳건하게 서있었다.



건화사의 유래

건화사는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위치하고 있으며'1972년 총지종 창종과 함께 교도의 집을 전세로 임대하여 안강선교부로 시작하여 1973년인근의 땅을 매입하여 헌공불사를 한 후 건화사로 개명 하였으며 1982년 증축하여 1983년 헌공불사를 하여 현존하고 있다.

건화사는 초대주교로 자비혜 전수님이 임명되었으며, 청암, 일성혜 스승님, 혜암, 최상관 스승님, 불멸심 전 수님이 주교로 근무하였고 현재는 정원심 전수님이 주교로 근무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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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에 인연을 맺고 업장을 소멸하자.

잡아함경을 보면 “ 나쁜 업의 인, 나쁜 마음의 인, 나쁜 소견의 인이 있다. 그런 중생 은 몸은 헐어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제계 지옥에 떨어진다. 비유하면 둥근 구 슬을 공중에 던지면 그것은 땅에 떨어져 굴러서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 것처럼, 나쁜 업 의 인, 나쁜 마음의 인, 나쁜 소견의 인이 몸이 헐어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안정하지 못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선 내게 생긴 나쁜 일을 살펴보십시오,화만 내지 말고 왜 그러한가 살펴보십시오. 무엇인가 나쁜 일이 생긴 원인이나 그 이전의 행위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련존 자는 길 도중에 어떤 사람이 비구형상을 하고 쇠판을 옷으로 입고, 몸이 불타고,쇠로 된 발우에 쇠로 된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전생에 비구가 되어 다른 비 구들을 이들은 나쁜 대머리, 나쁜 옷이라고 말하며 욕설했기 때문에 지옥고통을 받고 다시 그 남은 과보로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집의 아이를 죽이거나 해치는 여자는 죽어서 아귀로 태어나 매일 일곱의 아이를 낳고는 배가 고파서 잡아먹는 과보를 받는다고 합니다.

몸의 악한 행위를 지니고 말의 악한 행위를 지니고 마음의 악한 행위를 지니고 성스러운 자들을 비방하고 잘못된 견해의 업을 지니고, 죽은 후에 나쁜 존재의 길, 괴로운 곳,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과 몸의 선한 행위를 지니고 말의 선한 행위를 지니고 마음의 선한 행위를 지니고 성스러운 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바른 견해의 행위을 지니고, 죽은 후 에 좋은 존재의 길, 하늘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업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을 주 지 않습니다. 업을 믿는다는 것은 인과 법을 안다는 것입 니다. 업이라는 것 은 바로 몸과 입과 마음의 행위입니다. 이 것으로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이것으로 나쁜 과보를 받습니다. 업의 차를 잘 운전하는 사람은 수렁의 도로로 달리지 않고, 악한 과보와 부딪혀 사고를 내지 않습니다. 업의 차를 함부로 운전하는 것은 술을 '마시고 도로를 질주 하는것과 같이 위험하여 자신과 타인에게모두해를끼칠 수'았습니다.

업의 차를 잘 몰고 다니려면 먼저 인연있는 중생이 되도록 정진해야 합니다. 자주 부처님을 찾아 뵙고, 자주 좋은법문을 듣고, 자주 스승님을 찾아 뵙는 일이야 말로 인연 있는중생아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듣고 믿을 수'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들음으로써 생기는 믿음과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믿음을 지니면 바른 길로 갈 수 있고 천상에 태어나고 이 믿음이 없으면 나쁜 길 로 들어가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됩니다.

아무튼 모든 중생들은 불법과 인연을 맺고 불법에 대한 굳은 신심을 가질 때 업의 차를 잘 운전 할 수 있습니다.



교도들 한 분 한분을 실어나르며

오늘도 시간의 흐름속에 어김없이 자성일이 찾아옵니다. 밖에는 뜨거운 햇쌀이 내리쬐고 시골의 들판은 실록이 녹색물결로 출렁이며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에게 세월의 허물 속에서 남의 잘못을 보지말고 자신의 허물을 보라 속삭입니다.

건화사는 시골이라 대부분의 교도들은 농사철에는 뜨거운 햇볕에서 농사일을 하시면서 자성일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하는 신앙심이 돈독한 보살들입니다.

특히 자성일 공식불공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몇 분 동안 걸어서 1시간에 한번씩 오는 버스를 타고 와야 합니다. 이러한 교도들을 볼 때마다 편안하게 자 성일에 참석할 수있는 방법이 없을 까하고 고민하다가 집까지 직접 방문하여 차로 모셔오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조그마한 승용차를 구입하여 운행하고 있지만 승용차라 보살님들을 모시고 절까지 왔다가 다시 모셔다 드리기를 여러번 해야합니다. -

보살님들도 다른 보살님들을 모셔다 드리는 동안 농사철에 바쁜 일이 있더라도 기다 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큰 차를 구입하여 모셔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만 앞섭니다.

부산에서 직장생활하고 자성일이면 건화사에 와서 보살님들을 한 분 한 분 실어나르 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삶이요, 수행자의 길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저분들이 나의 어머니 같은 생각이 들어 잘 모셔야.되는데 잘 모실 수 없어 아쉽지만 오늘도 보살님들을 한 분 한 분 실어나르며 최선을 다해 모실 뿐입니다.



불공은 수행정진의 길

새벽 일찍 서원당을 들어서니 한 보살님이 며칠 째 열심히 염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골이라 버스도 새벽 일찍 다니지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서원당에 나왔을까?’하 고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보살님의 뒷 모습이 마치 관세음보살님이 조용히 앉아 있는 것처럼 아주 고요하게 편안한 모습을 하고 인기척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후 며칠 뒤 그 보살님은 서원당을 떠난 후 아무리 기다려도 몇 달 째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보살님이 혹시 귀신이 아닌가? 아니면 관세음보살님이 환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 지금까지 자신의 수행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염송을 하고 있음에도 잡념과 번뇌로 가득하여 수행에 장애를 초래하였지만 그 보살님을 생각 할 때마다 수행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수행하는 가운데 공덕이 생기고, 서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되며, 항상 하심하는자처로 오로지 일념으로정진수행하는 가운데 전생의 업이 소멸되 며 성불을 어루# 되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중생은 한 순간의 외부 환경에 의해 수 십 년 동안 쌓아온 공덕을 한 순간에 무 너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사람은 제대로 수행하 것이 아닙니다. 수행자란 무릇 파 도와 같은 그나큰 폭풍우가 몰아쳐도,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 바위처럼 자 신의 내면을 조용히 관찰하며 항상 맑고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 이며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청정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 하루도 배I지지 않고 불공을 해야 하며, 계행을 치키기 위해 자산의 마음을 채찍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바람불면 문틈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듯 번뇌 망상은 한 순간 방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으로 들어와서 수행에 훼방을 놓고 달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바른 수행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나태한 마음 없이, 청정한 마음으로 열심히 수행을 하기위해 용맹정진을 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가 해탈의 길

유교경을 보면 “나는 아주 용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약을 주나니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나는 또한 훌륭한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 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나니 듣고서 가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니라.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법이 원래 다 구족되어 있으니 내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할 지라도 더 이상 이익될 것이 없느니라. 이제부터 나의 제자들이 이 법을 끊임없이 이어서 그대로만 실천할 것 같으면 부처님 의 법신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으리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시기 전에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흩어지는 마음을 신.수.심법의 사념처로 바로잡고 도심을 일으키고 계율로써 스승을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자기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것은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려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려가고 살아가는 법은 누구나 갖추어져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 한번 바르게 쓰면 나와 남을 모두 살릴 수 있고, 그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삼매를 이루면 능히 해탈을 이룰 수 있 게 됩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무려 45년 동안이 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더 오래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더 이상 이익이 될 것 이 없다. 이제부터 나의 제자들은 이 법을 끊임없이 이어서 그대로 실천하기만 하면 부 처님의 법신이 항상 머물러서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더 이상 밖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보물 창고를 열어, 나도 풍요로울 수 있도록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나도 살리고 남도 살리고, 나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해야 합니다. 나의 보물 창고도 열고 남 또한 보물창 고를 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갖고 있는 보물창고를 열 때 이 세상은 그대로 부처님 세계로 바 뀝니다. 이 세계가 그대로 영원한 진리의 몸인 법신의 세계로 탈바꿈되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삼매을 이루면 해탈세계가 열립니다. 이것이 참된 나를 찾는 묘법이요, 정법인 것 입니다.



말을 삼가고 행동을 가벼이 하지 말라

신, 구, 의는 삼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삼업 중 말은 생각과 행동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무수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번뇌망상들까지 끊임없이 일으키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생각들 중 대 부분은 그냥 사라지지만 일부는 말이라는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표출됩니다. 그 표출된 말이 뜻하지 않게 비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별 생각없이 한 말일지라도 일단 내뱉고 나면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 다. 책임을 지겨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마음은 평정을 잃게 됩니다. 곰곰 히 내가 얼마다 불필요한 생각과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생각이 많고 말이 많으면 실속이 없어집니다. 번뇌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마음이 고 요해질 날이 없습니다. 실로말이라는 것은 껍질에 불과합니다.

행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움직이는 것은 굴러서 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생사법이지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자리를 볼 수 있는 진리법 아아닙니다..

우리의 몸유마치 밑이 동그란 항아리와 같습니다. 너무나 동그랗기 때문에 바람만 불어도 항아리는 움직입니다. 일렁일렁, 대부분의 시간동안 항아리는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데 그 항아리 쇄는 구정물이 들어 있습니다. 번뇌망상이라는 구정물이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움직이니 구정물 찌꺼기가 언제나 부옇게 떠다닐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움직이는 항아리는 계행이라는 밧줄로 꽁꽁 묶허 두어야 안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선정으로 정진해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정력을 성취하면 찌꺼기는 저절로 가라앉고 위쪽에는 맑은 물만 남게 됩니다. 이 맑은 물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 비치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수행자는 계. 정. 혜 삼학을 이루고 해탈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탈을 이루고자,하는 이는 몸을 정중히 가지고 말을 적게 하여 울렁거리는 항아리, 동요하는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자리를 찾고 진리를 구하는 자는 언제나 말과 행동을 절제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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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심전수님은

“사랑을 끊고 부모를 떠나도록 한 까닭은 불법의 세계가 평등한 때문이다. 만약 가깝고 멀리하는 것이 있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한 것이니, 만약 마음 가운데 미움도 있고 사랑도 없고 취함도 없고 버릴 것도 없다면 어찌 이 몸과 괴로움과 즐거움, 성함과 쇠함이 있으리. 평등성 중에는 이것과 저것이 없고 대원경 위에는 가깝고 먼 것이 끊어졌느니라. 삼악도의 고해에서 출몰함은 미움과 사랑에 얽혀 있기 때문이요, 육도를 오르내림은 가깝고 먼 것을 따져 지은 업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라는 경전의 내용을 인용하시면서 아직까지 부족한 면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항상 계율과 청정한 모습으로 탐.진.치 삼독을 소멸하기 위해 나보다는 교도들의 해탈을 위해 오로지 수행하는 자세로 항상 배움의 자세로 생활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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