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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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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6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07-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한보살의 아름다운 세상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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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한주영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불교연구개발원 연구과장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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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4 18:00 조회 1,8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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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하자

얼마 전에 장기기증서약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버스를 타고 퇴근을 하던 중에 한 정류장에서 버스가 잠시 멈추어 있을 때였다. 길가 정육점에 진열되어 있는 고기들이 거룩해보였다. ‘소나 돼지는 죽어서 그 살점으로 다른 생명을 먹이고 살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은 저 고깃덩어리들을 먹고 만들어졌으니 본래 내가 아니고 바로 저기 있는 저 고깃덩어리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내가 저들에게  은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내 몸뚱이를 기꺼이 줄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죽어 이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시신기증 이겠다. 이 몸이 실험대 위에 올려지고 그것이 공부의 재료가 되는 모 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더욱 경건해졌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색을 계속했다.

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는 어떻게 죽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그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나는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죽고 싶다. 만일 일할 능력이 없어지면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해야겠다. 그리고 맑고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참선과 염불을 열심히 해서 삼매력을 키워야겠다.

만일 죽음이 가까워져 의식이 흐려지면 누군가 내 임종을 지켜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 영혼이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위로해 주고 내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사람이 있다면 좋겠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나는 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빨리 찾아야겠다. 그리고 나도 그를 위해 기꺼이 그의 임종을 지켜보고 그를 잘 인도하기 위해 명상할 것이라고 서로 약속해 야겠다.

이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장기기증 회원증이 우편으로 도착해 있었다. 어머님께 장기기증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는 어차피 화장할 것이니 나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장기기증은 50세 이전에만 할 수 있고, 시신기증은 실험용으로 사용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싫다고 하셨다. 이 몸에 대해 나라는 집착이 남아 있는 한 그건 매우 끔찍한 상상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이 아주 없는건 아니니까, 공감이 간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 오히려 몸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끊는 명상의 기회로 삼는다.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관법으로 불교에서는 백골관이나 부정관과 같은 명상법이 발달해 있다. 우선, 연기의 이치를 생각할 때 이 몸은 모두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서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고 태어나서는 젖과 음식물로 몸을 키웠으니 이 몸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어디 에도 없다. 나는 이와 같이 연기법을 생각하고, 백골관과 부정관으로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몸이 “나”라고 하는 착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장기기증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공부를 하고 있다. 더불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구체적으로 해 보았다.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가장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을 삶과 격리시켜 놓고 아주 먼 이야기 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죽는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사실이라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자 않을까.

〈한주영/불교연구개발원 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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