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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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49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3-10-01 신문면수 7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김성민 필자법명 월광인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총지사 교도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05 17:43 조회 2,371회본문
묘한 인연
올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자주 내리다 보니 가을농사에 큰 지장이 많을 것 같다. 하늘은 검게 그을린 날!, 기분도 날 씨처럼 우울한 날! 지난날들을 더듬어 보면서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본다. 복지화 스승님과 저는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포항에서 교화하실 때 젊은 연세로 그때는 식량이 배급제로 지급되 기 때문에 손님이 찾아오면 식사를 거를 정도였다.
복지화 스승님께서는 정직한 실천이 으뜸이라 생각하시고 올바른 일이 생기면 실천에 옮기시는 원리원칙을 강조하 셨다. 월초불공, 49일 불공 때면 소금만 잡수시고 굿은 일, 좋은 일을 가리지 않고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셨다.
서원당을 단 한번 방문한 보살이 자성 알에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십리를 걸어 서 방문하시던 스승님!, 버선 신발에 물집이 생겨도 보살 가정에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아픈 발을 이끌고 일사천리로 방문하시던 스승님! 그런 스승님의 모습이 눈 앞에서 아련히'떠오른다.
복지화 스승님께서는 진각종에서 총지종으로 개종하여 북아현동에서 교화하 실 때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서원당 겸 침실에서 조그마한 연탄난로를 가운데 두고 지내셨으며, 낮에는 보살들과 같이 생활하였지만 밤이 되면 추운 방에서 혼자 지내셨다. 그러한 힘든 가운데도 보살들이 않을 자리가 없어서 이리저리 포개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만족하셨다. 이러한 복지화 스승님을 생각하면서 현시대의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조기교육이다 하면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아이들에게는 자성학교에 다니면서 인성교육을 가르쳐야 하는데,"
갑자기 나도 어린 시절 자성학교에 다니면서 연필 한 자루를 선물로 받았을 때 너무도 기뻤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고개를 넘어서고 있다.
포항에서 복지화 스승님께서 교화하 실 때 스승님은 의사였고, 어머니였다.
아프고 힘들 때면 스승님께서 처방을 내려 주시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모든 것을 스승님에게 여쭈어 보았다.
1966년도 봄에 있었던 일이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서대문 조흥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때 회색 실크 한복이 유행할 때 한복을 입은 아줌마 한 분이 다가와 앞에 아줌마가 돈을 주웠으니 같이 가보자 하면서 나를 으슥한 곳으로 유인하여 돈을 훔치려는 느낌이었다. 그 때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만약 잘못되 었다면 돈을 모두 잃어 버렸을지 몰랐을 것이다. 그때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었 던 것은 자성학교때 스승님께 들은 설법 덕분이라 생각된다.
복지화 스승님은 “선과 악을 흰돌과 검은 돌로 비유하여 하루에 착한 일을 하면 흰돌을, 나쁜 일을 하면 검은 돌을 분리하여 모르라고 하셨으며, 남의 잘못과 허물을 여기저기에 씨앗을 뿌리면 반드시 불행을 추수하게 되고, 자기가 지은 업은 반드시 돌아온다, 항상 선업을 짓도록 노력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도와주어라 ”하시면서 인과 법을 강조하셨다.
스승님께서는 “나는 죽어 다시 태어나 또 스승할 거라고 말씀하시면서 스승의 임무란 참으로 중차대하고 항상 남에게 베풀어야 하며, 나를 버리고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사심없이 행동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자기 것을 챙기고, 사심을 가지고 행동하면 보살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행동에 항상 조심하시고 “항상 남에게 손해보는 마음으로, 남에게 양보하는 자비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복지화 스승님을 생각할 때 마다 눈물이 난다. 중생제도라는 인연의 업에 의 해 하루도 편안히 쉬지 않으시고 오로지 힘들고 고통 받은 보살들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으로 봉사하였으며, 남들이 편안 하고 행복한 삶을 보는 것이 당신의 행복으로 생각하셨다.
총지종이 창종한 지도 30년을 넘어서고 있다. 초창기에 스승님들은 단칸방에 서 여러 자녀들을 데리고 생활하시고, 아무리 먼 거리라도 교도들을 일일이 방문하시며 혹시 교도가정에 불편함이나 힘든 일이 없는지 보살피시며 다녔다.
그 때 고생하신 스승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지금 총지종이 이만큼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도 복지화 스승님처럼 인생의 황혼기에서 목놓아 찾아 헤매는 보살이 생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훌륭한 스승님들이 배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해본다. 이것이 바로 복지화 스승님 아니 모든 초창기 스승님들의 간절한 염원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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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jpg 김성민(월광인) 보살, 총지사 교도 (18.1K) 0회 다운로드 DATE : 2018-05-05 17:4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