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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자력으로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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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5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5-01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이달의 설법문안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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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2 06:47 조회 2,4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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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자력으로 기도하라

올바른 기도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수 십 년을 절에 다닌 교도들 조차도 요행수를 바라며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에는 요행수가 통하지 않습니다. 같은 햇빛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고, 형상이 길면 그림자도 길고, 형상이 짧으면 그림자도 짧은 것입니다.

이처럼 불보살의 광명정대한 자비는 언제나 중생의 정성과 함께 하 지만, 중생은 요행수를 바라고 기도를 하는 일이 많습니다.

심지어 “측신에게 기도를 하면 재수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변소에 밥을 가져가서 기도를 하고, 아무개가 족집게라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을 찾아가 점을 보기도 합니다.

사실은 신이 내린 용한 점쟁이라 할지라도 찾아가는 ‘내’가 아는 것 이상은 모릅니다. 하다못해 ‘내’가 전혀 모르는것을 알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냥 넘겨짚어서 하는 말입니다. 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불자라면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자기 속을 차리고 자력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요행수를 바라고 하는 기도는 마음에 잔뜩 때를 끼게 하고, 언젠가는 사도로 빠져들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진실한 불법은 10만8천리 밖으로 달아나버리고, 업장이 맑아지기는 커녕 더욱 두터워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진성연기의 뜻을 바로 알아서 요행수를 떠난 자력의 기도를 하고 자력의 참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업장은 저절로 맑 아지고 복은 저절로 찾아들게 마련 입니다.

무착스님은 출가하여 문수보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스님은 문수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항주에서부터 오대산까지걸음을 옮길 때마나 온몸을 내던지는 오체투지의 절을 하며 갔습니다. 마침내 오대산 금강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한 노인이 소를 거꾸로 타고 오다가 말을 걸었습니다.

“자네는 어떤 사람인데 무엇하러 이 깊은 산중에 앉아 있는가?” “예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왔습니다.” “문수보살을 가히 친견할 수 있을 까?” 말 끝에 노인은 그 순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 노인은 무착스님에게 “진심 없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구요, 부드러운 말한 마디는 미묘한 향이 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일세, 쓸데없는 생각 말고 부지런히 참선하라. 날마다 하루 종일 누굴 위해 바쁠건가. 바쁜 중에 한가로운 소식을 알면 한 그루 연꽃이 끊는물에 피리라.”

이 노랫소리를 듣는 순간 크게 깨달은 무착스님이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보이던 노인은 씻은 둣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오대산에서 돌아온 뒤 공 과 색이 화합되도록 열심히 공부를 하여 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리고는 젊은 스님들이 도인이 되는 것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공양주를 자청했습니다.

하루는 큰 가마솥에다가 죽을 끊이는데 갑자기 솥에서 상서로운 광명이 나타나더니 문수보살이 연꽃 처럼 피어올랐습니다. 이전에 꿈에도 그렸던 문수보살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대중들이 절을 하면서 경탄하였지만, 무착스님은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후려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문수는 네 문수요 무착은 네 무착이니라.”

그러자 죽의 방울방울에서 천만의 문수보살이 나와 허공을 가득 채 웠고, 무착스님은 닥치는 대로 주걱으로 쳤습니다. 이에 문수보살은 자취를 감추며 일러주셨습니다.

“내가 삼대겁을 수행하였건만 오늘 노승의 혐의를 입고 돌아가는구나. 쓴 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도다.”

무착선사는 진성연기를 알아서 완전히 공과 더불어 상응하였기 때문에 내 마음 이외에 나타나는 것은 모두 사임을 알고 허공 속의 문수보살을 주걱으로 치면서 물리 쳤던 것입니다. 진정 수행인이 온전히 공을 체득하게 되면, 그의 일거 수일투족에는 아무런 조작도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걸림도 없게 됩니다.

산하대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를 이루고 천지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 되어서, 천진난만한 세계로 그냥 돌아가게 됩니다. 또 이런 경 지에 들어가면 티끌 수와 같이 많은 세계가 그대로 진실한 그 모습을 나타냅니다

참 마음자리의 공무를 체득하여 어떠한 걸림도 없게 되는 것! 이것이 기도를 비롯한 각종 수행의 끝입니다

부처님을 돌로 만들었든 쇠로 만 들었든 나무로 만들었든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지 극정성을 드리면 모든 업장이 소멸 되고 복은 저절로 생기게 됩니다.

신앙심, 곧 타력에 너무 깊이 의 존하면 마침내는 자기의 속까지 빼주게 되므로 정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오히려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도인은 반드시 자력을 가지고 타력을 믿어야 합 니다. 곧 타력에 의지할 지라도 진성연기의 도리를 분명히 알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비결이요, 기도를 통하여 해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요긴한 가르침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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