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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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5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4-08-02 신문면수 3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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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5 09:53 조회 2,163회본문
사람의 욕망은 한이 없다.
“욕망이란 결코 채워지지도 만족 되지도 않는다.”는 서양의 속담이 있듯이 우리가 살아 가는데 있어서 욕망이란 끝이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욕망만을 고집하며 살아간다면 화약을 지고 불길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며 절제없는 욕망이란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욕망만을 고집하듯 절제만 고집하는 경우도 수행하는 사 람들에 있어서는 삼가야할 일입니다. 욕망에 함정이 있듯이 절제에도 함정이 있기 때문인 것 입니다.
수행자의 실천수행에 있어서는 보시, 지계, 인욕, 정진,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육바라밀의 수행을 통해 욕망과 절제의 집착에 사로잡힌 편협한 인식을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에 “믿음만 있고 아는 것이 없으면 미신으로 흐르기 쉽고, 알기만 하고 믿음이 없으면 상만이 생긴다.”라는 구절을 보면 믿음과 아는 것이 겸해야 모든 행의 근본이 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삶의 지표를 정할 수 있습니다.
진리와 현실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른 진리를 알고 수행하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요, 지혜인 것 입니다.
다음은 지월록이라는 책에 실려있는 노파의 소암에 대한 이야기를 할 까 합니다.
'“불심이 강한 한 노파가 조그마한 암자를 지어 젊은 스님 한 분을 모시고 20년을 하루같이 음식과 의복등 수발을 하며 스 님의 수행을 도왔다. 어느날 노파는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진전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을 해 보았다.
노파는 젊은 딸에게 스님을 유혹해 보라고 시켰다.
‘오늘은 암자에 가서 스님을 한번 껴안아 보아라.’ 딸은 어머니 말씀대로 스님의 품속에 안겨서 교태를 부렸다.
‘스님 저는 스님에게 안기니 무한히 기쁘고 즐겁습니다. 스님의 감정은 어떠하신지요?’
스님은 무표정하고 점잖게 대답했다.
‘고목나무가 엄동설한에 찬 바위를 기대고 선 것과 같고 불씨 꺼진 재가 따스한 기운이 전혀 없는 것같소’
젊은 딸은 스님의 도력을 찬탄하며 어머니에게 스님이 말한 것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나 딸의 이야기를 들은 노파는 벼락처럼 고함을 치며 “내가 사람을 잘못보고 20년이나 헛고생을 했구나. 흑산귀굴에 들어앉은 악마를 받들다가 나도 그놈과 함께 지옥에 떨어지겠다.” 며 곧바로 암자로 달려가 스님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질렀다.“ 꼭 산속에 들어가 앉아야만 도를 얻고 계율에 매여 살아야만 깨치고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속에서 도를 찾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속이 꽉 막힌 사람이 잘 살아보겠다고 불교를 믿기 시작하여 살생의 계율을 지켜야 한다며 부부간의 잠자리를 하지 않기 위해 별실을 사용했다가 얼마안가서 결국 이혼하게 되어 가정의 화목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또 한 스님이 조그마한 암자를 맡아 교화를 시작 하여 그 마을 사람들은 암자에 계시는 스님의 계율에 감동하고 그 스님을 존경하고 받들었습니다.
하루는 스님이 마을에 내려가 독실한 신도집에 들렀습니다. 그 신도는 존경하는 스님이 오셨고 마침 점심때라 스님을 대접하기 위해 정성껏 수제비 국을 끓여 대접하였습니다.
수제비국속에는 마늘, 멸치, 파가 들어 있었는데 스님은 이것들을 일일이 건져내고 갖은 인상을 쓰며 수제비국를 먹은 척만 했습니다.
그 신도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계율이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정을 무시한 행동에 마음이 들지 않고 그 스님에게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회의심을 가지고 다시는 그 암자에 가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 스님의 행동이 옳았을까?
그 스님은 계율에만 메여 동사섭의 진리를 몰랐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이웃 가까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사정을 헤아리고, 아픔을 알고, 이해하는 육바라밀을 진실하게 수행하고 실천하는 자만 이 진정한 수행자일 것입니다. 겉으로만 진리니 자비니 인욕이니 말하면서 본인은 스스로 이러한 것 들을 수행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느 스님은 한 보살이 찾아와 “남편의 고집이 여간 아니어서 집에 오면 잔소리만하고 죽을지경 인데 어떻게 하면 그 버릇을 고치겠습니까?”
하고 하소연하였다. 스님은 “고집센 남편의 고집을 고치려는 보살의 고집이 더 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한번만 참으면 남편의 고집이 수그러질 것입니다. 우선 보살님의 고집부터 버려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어느 집에 가정불공을 갔을 때다. 불공을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는데 같이 갔던 한 보살이 음식을 실컷 먹고 배가 아프다며 “내배가 아픈 걸 보니 이 집은 절량희사를 안하는 모양이다.”라고 말하여 할 말을 잊은 적이 있다.
가시를 잡으면 그 손이 상처 입는 것처럼 잘못된 수행은 당사자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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