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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성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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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66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04-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아함경 이야기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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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 필자법명 화령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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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18 11:40 조회 1,9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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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성도(1)

부처님께서는 6년 동안의 고행을 버리시고 라자가하[왕사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루벨라 마을의 네란자라 강 근처에 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으셔서 큰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체력을 회복하신 다음 네 란자라강 근처의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기 까지는 고행을 멈추고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던 것으로'보입니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에는 다시 일어서지 않으리라고 굳은 결심을 하고 정진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나고 삶의 근본 적인 고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를 사유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7일째가 되던 날 새벽 먼동이 틀 때 완전한 깨달음을 이 루었다고 경전에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초저녁에 숙명통을 얻어 과거의 일을 꿰 뚫어보시고 한 밤중에 천안통을 얻어 미래의 일을 꿰뚫어보시고 새벽녘에 누진통을 얻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셨던 것입니다. 이 때의 감동을 경전에서는 천 지가 진동하면서 하늘에는 꽃비가 내렸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로 그것은 엄숙 하고도 장엄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진리를 깨닫고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생사를 초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순간에 번뇌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나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석가모나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고 바로 보리수나무를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7일 동안 그 나무 밑에서 당신의 깨달음을 음미하고 계셨다고 합니 다. 율장이나 자설경 등에 보면 깨달음을 얻으신 다음의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해 대체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우루벨라 마을의 네 란자라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계셨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신 세존께서는 결가부좌한 채 7일 동안 한 자세로 삼매에 잠겨 해탈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셨다.

깨달음을 얻으신 뒤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앉으셔서 7일 동안이나 해탈의 즐거 움을 누리고 계셨다고 했는데 그 즐거움은 아마 필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즐거움이 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갈구하던 진리가 또렷이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생노병사의 고뇌를 초월하여 더 없이 편안한 마음 으로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즐기는 그런 마음은 말하자면 지혜의 즐거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범부들도 사소한 것이라도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나 자기 혼자만의 방법을 터득했을때, 아니면 오랫동안 마음속에 숙제로 남아 있던 것을 지혜로써 말끔히 해결했을 때 가지게 되는 기쁨을 생각해 보면 부처님의 기쁨이 어떠했으리 라는 것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우주의 대진리를 깨치시고 생사를 초월하 는 원리를 터득하신 그 즐거움이 어찌 범 부들의 그것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 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리 범부들처럼 기뻐서 날뛰지 않고 조용히 그 즐거움을 누리시면서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음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또 부처님께서는 아마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음미하며 혹시 오류가 있지는 않은가 다시 검토하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언어를 초월한 직관에 의한 깨달음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전에서는 그것을 ‘모든 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깨달음은 말로서는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직관의 세계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태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그것을 파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순간을 말로 표현하자면 끝이 없지만 마음에 와 닿는 한 생각으로 모든 사실이 파악되고 그것의 전모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아마 그런 것이었을 겁니다. 혹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 니다. 우리가 어떤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느끼는 감흥과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감동적인 장면을 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느끼고 알뿐이치 그것을 도저히 말로 는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 부처님에게도 모든 진리가 그렇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어와 논리를 초월한 글자 그대로 모든 진리가 그 모습을 나타내는 순간이었 을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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