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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향기가 풍기는 용문산 용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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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0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7-01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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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31 07:01 조회 2,9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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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전통사찰 문화탐방 (3회)

천년의 향기가 풍기는 용문산 용문사
말없이 천년을 지키는 은행나무와 용이 든천하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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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했으니, 나무에게도 업이 있을 것이다. 그 업에 따라 나무도 종류별로 저마다 다양한 생태를 지닌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각기 처한 환경이 다르고 생사가 다른 것도 그 업 때문이 아닐 런지...”

총지종보 편집위원들과 함께 서울에서 올림픽대로를 타고 세속의 고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잊은 채 고요히 흐르는 한강의 물줄기를 타고 올라가다 보니 양평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녹색의 신록 물결이 출렁이는 나무들과 드넓은 북한강의 물줄기를 바라보며 차창 가로 불어오는 향긋한 자연의 향기를 음미하며 달려가는 차량들은 시의 딱딱한 빌딩 숲 속에서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생 활 속에서 탈출한 듯 너울너울 춤을 주며 아름다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달리고 있다.

높고 높은 산등성이를 지나 신록의 물감을 맘껏 머금은 채 바라보는 나무 잎사귀들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결에 너풀너풀 움직이며, 향긋한 춤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몇 분을 달려가니 우람하고 장엄한 용마산이 보인다.

신라고찰 용문사를 보듬고 있는 용문산은 해발 1,157m로, 몸집이 커서양평, 가평, 홍천이 모두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장군봉, 문례봉,백운봉,도일봉, 중원산 등이 모두 용문의 아우들이다.

용마산 입구에 도착하여 입장료를 들고 들어서니 용마산 관광지라는 푯말이 보이고, 주변에는 마치 큰 궁궐을 짓는 듯 기왓장 지붕에 우람한 가람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현장 에는 농산물 박물관 공사 현장이라는 현수막이 나풀대고 있어 이곳에 박물관을 건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사현장 위로는 야외공연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주말과 야간에는 이 곳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는 것 같다.

박물관 공사현장을 지나 몇 발자국걸어가니 뽕나무가 두 그루서 있다. 뽕나무에는 일명 ‘오디’ 라는 검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오랜만에 뽕나무를 바라보니 어릴적 누에를 키우기 위해 뽕나무 잎사귀를 따던 일, 뽕나무 열매를 너무 많이 먹어 손과 입, 옷을 마치 붉은 물감으로 색칠한 것처럼 온통 빨갛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며, 서로 서로 웃던 일 등 지난 날의 추억들을 정답게 이야기 하며 용문사 일주문을 향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마치 쉘부르의 우산속 처럼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가 양옆으로 쭉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더욱더 아름다운 것은 오솔길 따라 길게 펼쳐진 개울물이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마치 아름다운 합창곡의 교향곡을 부르는 듯하다. 맑은 개울물을 바라보다 매혹이라도 당한 듯 모두는 개울쪽을 향하여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신발을 벗고 개울물속에 발을 담근다. 발로부터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은 온 몸으로 퍼져 짜릿한 느낌이 들게 한다. 실록의나무들로 만들어진 집과 개울물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이 곳이 바로 극락 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용문사 경내에 다다르니 길 손을 제 일 먼저 반겨주는 것은 은행나무이다. 의상대사가 평소에 짚고 다니던 지팡 이였다는 은행나무는 높이가 62m이다. 이 은행나무의 별호는 ‘화두목’이다. ‘불을 먹는 나무’ 라는 의미이다. 화재를 당했을 때 다른 나무들에 비해 소생율이 높은 것은 왕성한 맹아율 때문이다.

용문사 1000여년 역사 동안 여러 차례의 화재가 있었으나, 이 나무만은 온전했다고 한다. 은행나무 부근에 있던 천왕문이 소실된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자차)으로 삼고 있다 고 한다.

설화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를 자르기 위해 도끼로 나무를 내리 쳤더니 나무에서 새빨간 핏물이 흘렀으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고 할 정도로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 추정수령 1100년, 줄기 아랫부 분에 큰 혹이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나무 중 가장 키가 크며, 우람하고 당당한 위엄을 풍기는 대표적인 명목이라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신라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의상대사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조선 세종때는 정삼품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을 하사받은 명목이다.

천년의 세월을 말없이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 맞은 편의 계단을 올라서니 커다란 대웅전이 정면으로 보이고 양 옆으로 삼성각과 지장전이 보인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 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다시 지었고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 하였다.

성종 11년(1480)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 대사가 중창 하였으나, 순종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기념각, 요사등을 중건 하였으며, 1982년부터 지금까지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경내에는 권근이 지은 보물 제531호 정지국사부도 및 비와 지방유형문화 재 제172호 금동관음보살좌상, 천연기 념물 제 30호 은행나무가 있다.

참회와 용서의 마음으로 용문사 경내를 거닐다 보니 세상의 모든 번민과 고뇌가 사라지는 것' 같다. 만남 후에 반드시 이별한다는 ‘회자정리 ’의 구절을 떠올리며 용문사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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