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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의 나라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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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9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6-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문화기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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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9 08:38 조회 2,2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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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앙코르와트 탐방 (2회)

앙코르와트의 나라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

총지종 법장원 연구원 보정 박사가 앙코르와트와 캄보디아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감상을 정리 하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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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의 예술성

양면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바이욘 신 전의 이 얼굴들이 도대체 누구를 형상한것인가 하는 것도 수수께끼이다. 이 얼굴의 주인공이 누군가에 대해 학자들은 주로 두 가지 가설을 내세우고 있다. 하나의 .가설은 이 얼굴을 관세음보살로 보고, 다른 하나의 가설은 자야 바르만 7세로 보고 있다. 어느 가설이 옳건 이 얼굴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뜻은 한가지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자의 자비로운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굴이 관세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신전의 전체 구조는 불교 신전으로 보기는 어렵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의 기본적인 사고방식과 어울리지 않는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욘 신전은 신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신에게 제사지내는 것은 불교 의식은 아니다. 건축물 어디에도 달리 불교적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사실은 불교 신전이라는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 불교는 신에 대한 제사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내면을 닦는 수행의 종교이므로 신전을 지을 까닭이 없다. 불교 역시 대중적 신앙 형태에서는 불보살에 대한 숭배 의례를 행하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주로 설법단 위에 앉아 있는 부처나, 인간과 같은 높이에서 있는 관세음 보살에게 경의를 표하는 형태이다. 불보살에 대한 신앙심이 제의적 형태의 의식을 일부 발전시키는 경우가 있으나 이 경우도 역 시 불교 의례의 부차적인 요소에 머문다.

불교도들은 어디에서도 제의적 목적으로 피라미드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어 놓고 의례를 행하지는 않는다. 불교도들이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경우는 제의를 위한 신전을 마련하기 위 해서가 아니라 수행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한국어 관광 안내 글들은 이 신전을 바이욘 사원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글들을 쓴 사람이 사원과 신전의 차 이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를 믿었다고 전하는데, 이 신전으로 봐서는 그가 믿은 것은 불교  아니라 불교라는 이름의 힌두교로 보인다. 힌두교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또 힌두교 식의 의례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어떤 이유 에서인지 그는 자신이 불교도임을 선포한 것 로 보인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인 이유가 내포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왕이 이 신전을 세운 동기가 무 엇이건 간에 신전에 녹아 있는 앙코르의 예술적 아름다움은 논란의 여지 가 없다. 앙코르의 예술적 우수성은 석조로 된 신전들의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구조뿐만 아니라 신전 1층 회랑 형 벽면에 세밀하게 새겨진 부조들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이 부조들의 세 밀함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너무도 세밀하게 그려서 부조라기보다는 마치 펜화처럼 보인다. 부조를 이처럼 세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앙코르 사원들에 사용된 돌들이 한국에서 건축이나 조각용으로 사용하 는 화강암과 달리 재질이 매우 무른 사암이기 때문이다. 재질이 무른 덕분에 부조를 할 때 정이나 망치 대신에 조각칼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질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부조의 세밀함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전신을 손가락만한 크기로, 묘사 하면서도 눈, 귀, 코, 입을 다 그려 넣고 있다.

부조는,.예술작품인 동시에 기록이다. 부조는 왕의1군대가 어떻게 적을 맞이해서 싸워 이겼으며,이‘ 과정에서 왕이 얼마나 훌륭한 역할을 했는가를 묘사하고 있다. 용맹한 왕의 전사와, 동맹군들, 보급부대, 전투에 참가하는 코끼리, 이에 맞서는 적의 병사들이 그려져 있다. 부조는 신전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라 기보다는 왕의 치적을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부조는 책을 펼쳐 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학자의 모습, 아이를 업고 있고 아낙,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의 모습 등 당시 인들의 일상생활도 보여 주공 있어 당 시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일행은 바쁜 일정에 쫓겨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전하 는 부조를 불과 20분 정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신전의 외벽에 새겨진 부조가 가지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아름 다움과 수 많은 의미 를 이십분 남짓 한 관찰을 통해서 다 말할 수는 없다. 하기는 시간적 여우가 있어서 몇날 며칠을 살펴봐도 현재로선 이 부조의 내 용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조 는 매우 사실적인 기법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부조에 그려져 있는 것은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절된 문화의 단면들이다. 그것들 은 전체 문화의 구조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부조의 내용을 대략이라도 말하자면 수 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수많은 조사와, 저술들이 이루어져야 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신전은 제의적 목적으로 마련한 16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일행은 이 방들을 일일이 돌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신전의 정점로 향하는 좁은 통로와 가파른 계단을 쫓아가며 두 평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이 방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방들 중 어떤 것에 힌 두교의 신으로 보이는 상들이 있 었는데, 머리를 삭발하고 흰 옷을 입은 노파들이 향을 피우며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참배를 빙자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누구인가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비루한 행색과 싸구려 향이 뿜어내는 연기의 역겨움은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이내 가라 앉게 하였다.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사라졌지만 세계적 문화유산 내에서 향을 피우면서 호객행위를 하게 내버려두는 이 나라의 문화재 관리 방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신전은 분명 현재 신전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바이욘 신전 외에도 우리 일행은 성내의 코 끼리들을 사열하던 일명 “코끼리 테라스,” 자야바르만 VII가 문둥이였던 까닭에 이름 붙여진 “문둥이왕 테라스,” 그리고 왕이 어머니를 위해 지었다는 프놈 신전 등을 둘러보고, 이곳사람들처럼 점심을 먹은 후에는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면서 오후 일정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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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펄드와 서글픈 앵벌들

앙코르 톰과 앙코르 왓은 참으로 인류가 만 들어낸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들이다. 규모의 웅장함에서도 세계의 그 어떤 문화유산에 뒤지 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의 그 어떤 문화유적 도 앙코르의 석조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아름다움에 필적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로서만 본다면 앙코르는 아무리 많은 미사여 구로 찬미하여도 모자란다. 그러나 앙코르는 아무리 찬미하여도 다 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 때문에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앙 코르의 장엄함을 창조한 바로 그 민족이 또한 킬링필드도 낳았기 때문이다.

앙코르를 관람한 다음날 우리 일행은 킬링필 드를 방문하였다. 캄보디아 정부는 주요 도시 마다 킬링필드 기념소를 만들어 놓았다. 폴포 트 정권의 잔혹함을 기억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시암 립의 기념소는 우리가 묵던 호텔에서 차 로 불과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불교사 찰 옆에 마련된 킬링필드 기념소는 보잘것없는 시설만을 갖추고 있었다. 기념소는 희생자들의 해골을 모아 둔 일종의 합동유골실과 사진 전 람대가 시설의 전부이다.

그렇지만 킬링필드의 잔혹한 광기를 기억하 게 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유리문을 달아 놓은 합동유골실에는 수백 개의 해골이 쌓여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시멘트로 만든 합동유골실은 너무도 조악하여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잔해가 인간의 잔해 로서 마땅히 받아야할 존엄한 대접을 여전히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유골실 앞에는 향로가 놓여 있고 향불이 타고 있지만 이 또한 이 나라의 서글픈 현실을 연출하는 한 요소였다

향로는 이곳 앵벌이 소년들의 돈벌이 수단이 었다. 유골실 앞에서 우리 일행은 숙연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였는데, 몇몇은 그 앞에 모여 있던 5,6명의 소년들이 주는 불붙은 향을 향로 에 꽂았다. 우리는 이 소년들이 그저 참배를 돕는 소년자원봉사자 정도로 생각했다. 자원봉 사자치고는 행색이 이상했지만 인간의 잔해 앞 에 선 숙연한 마음으로 인해 이들이 누구인가 찬찬히 생각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향을 꽂고 절을 올리자마자 소년들은 앵벌이의 본색을 드러내었다. 아이들은 향 값으로 1달러를 요구 하였다. 내게도 한 녀석이 한국말로 “아저씨 1 달러” “아빠 1달러”를 외치며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다. 돌아다보니 열두어 살쯤으로 보이는 닳고 닳은 녀석이었다. 나는 뭐 이런 녀석이 있나 생각하며 무슨 짓이냐는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거절의 뜻을 나타내고는 20여III 떨어진 곳에 있는 사진 전시대쪽으로 걸어갔 다. 그러나 소년은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1불을 요구하였다. 소년은 유골실 앞에 한 무리의 새로운 관람객이 오자 그때서야 나를 포기하고 그쪽으로 갔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1달 평균 월급이 40달러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1달러는 이 나라에서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 아이들이 앵벌이 노릇 을 통하여 관광객들로부터 하루 평균 얼마나 받아내지는 알 수 없으나 15달러를 얻는다고 해도 분명 적은 돈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이 돈을 전부 자신이 가진다면 상당한 고소 득자가 될 것이다. 배 고픈 아이들의 단순한 구걸행위로 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분명 지역의 검은 조직들과 연계되었을 것이다. 국가적 비극을 추념하는 사업이 앵벌이 수 단으로 전락해 있는데 도 방치하고 있는 이 나라의 실상이 참으로 서글펐다. 여러 감상 이 뒤엉킨 착잡한 마 음으로 마당 다른 쪽 에 자리 잡고 있는 불 교 사원을 둘러보았다.

사면이 참문 하나 없이 막힌 소을 형 지붕을 한 100평 규모의 건물이었다. 콘크리트로 근래에 지은 건물이지만 붉은 색 과 황금색으로 칠해진 전형적인 나방 불교 사찰양식이다. 사차 문 앞에서 한 노란색 가사를 입은 젊은 승려는 잡지책으로 보이는 책을 읽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캄보디아는 불교가 국교인 만큼 이 사찰은 한 마당에 있는 이곳의 유골실과 붐명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승려는 유골실 앞의 앵벌이에 대해 무심할 때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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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 한 건축물

흔히들 세계의 불가사의를 말한다. 이집트의 피라밋, 마야의 신전,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앙 코르의 신전들이 거론된다. 이들 불가사의에는 공통점들이 있으며 이것은 이들 불가사의를 이 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실마리를 통해 들여다보면 그것은 불가사의의 신비가 아니라, 거대한 암흑의 동굴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와 앙코르의 신전은 모두 인간의 현세적 삶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삶의 어떤 편의나 필요를 위해 지은 것이 아니다. 국가 행정을 보기 위한 곳이 아니며, 젊은이 들을 모아놓고 가르치기 위한 것도' 아니며, 운동 경기를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실용성과는 무관한 제사를 지내거나, 시신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짝에도 필요 없는 일을 위해 이들은 이토록 불가사의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축물들을 지었다.

이들세계의 불가사의들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현대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건축되었다. 피라미드는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 때문에 만들어졌으며, 마야의 유적과 앙코르의 신전은 우주의 질서와 인간사에 영향력을 미치는 신에 대한 광적인 믿음 때 문에'만들어졌다. 고대적 종교 관념,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힘에 대한 광적인 믿음 이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들이다. 그 믿음에 조금이라도 회의가 있었다면 이들 건축 물들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들 건축물들은 강력한 전제군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제군주가 아니고서는 누구도 고대인들의 기술로 이처럼 거대하고 정교한 건축물을 만들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야인들, 이집트인들, 앙코르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 건축물들은 건축될 수 없 었을 것이다. 동력기계가 없던 전근대 사회에서는 오직 전제군주들만이 수많은 사람들을 희 시켜 가면서 이러한 거대 건축물들을 만들 수 있었다. 아무런 동력 기계도 사용하지 않고, 사막 한가운데, 수천 미터 산꼭대기에, 밀림한 가운데에 거대한 돌덩이를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구자로 만들고, 시체로 만들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전제군 주들의 폭압적 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이들 불가사의한 거대 건축물들은 전제 군주들의 폭압적인 힘과 비이성적인 고대 종교 의 광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군주의 폭압적 힘과 결합된 비이성적 광기로 인하여 그들 나라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남김없 이 이들 거대 건축물을 짓는데 쏟아 부었다. 그들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을 이루었 다. 그것은 정신병자들이 발작할 때 정상인들 이 경험해 보지 못한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온 나라의 에너지가 정신병 자의 발작처럼 발산되었으니 어마어마한 건축 물들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병자의 발작은 환자의 체력을 고 갈시키고 만다. 때문에 발작을 마친 정신병자는 시체처럼 뻗어서 꼼작도 못하고 누워있게 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지나야 정신병자는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 정상인들은 힘을 쓰면 쓸수록 근력이 늘어나고 강해지지만 정신 병자는 그렇지가 않다. 그들의 발작은 그들의 체력을 고갈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주기적인 발 작 후에는 육체적으로 완전히 무기력 폐인이 되어 죽음에 이른다. 이들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을 남긴 국가들은 바로 이러한 정신병자들이 주기적인 발작을 통해 폐인이 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거쳤다. 그들은 종교적 광기로 인하여 주기적으로 거대한 건축물들을 지어 국력을 고갈시켰으며. 결국은 이들 건축물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이집트와 마야, 앙코르는 모드 사라진 왕국 들이다. 그들은 단지 전복되거나 교체된 왕국이 아니라 사라진 왕국들이다. 종교적 광기로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사라진 왕국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남긴 유적들은 더욱 신비롭고 불가사의해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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