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정신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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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3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08-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밀교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페이지 정보
필자명 탁상달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시인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08-03 13:24 조회 1,788회본문
요즘 ‘선비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선비 정신’을 이야기하면 세계화 물결에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인 것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꼰대의 전유물로 회자되는 경향 또한 매우 강하다.
아울러 “선비는 보수적이고 나약하며 공리공론적이다.”라고 착각하고 매도하는 추세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선비’라는 단어를 좀 더 고찰해 보면 ‘선비’의 사전적 의미는 학식은 있되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 학문을 닦은 사람, 어질고 순한 사람 등으로 정의되어 있다.
즉, 학식과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는 의미이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이 ‘선비 정신’이 있었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며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선비는 대중적으로는 사리사욕을 버리고 꿋꿋한 기개(氣槪)로써 국가와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支柱) 역할을 하였으며,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선비로 살아가는 것이 개인적인 피해와 위험이 항상 뒤따랐던 민중의 지도자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정한 선비를 가까이했던 왕은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그렇지 않고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운 신하들을 가까이 한 왕은 대부분이 혼란 속에서 나라가 어지러운 결과를 초래하는 통치를 했었다.
그래서 뜻있는 우리 옛 조상들은 ‘선비 정신’을 매우 귀중하게 여겨 교육에 최고 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서당교육론>이 다시 부각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는 듯하다.
‘선비 정신’은 인의(仁義)와 지성(智性)과 자존심(自尊心)이 잘 어우러진 인간 정신의 본질적인 핵심이자 요체(要諦)이다.
선비는 잘난 사람이 아니라 멋있는 사람이며,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화랑도와 같은 전인적인 인격자임과 동시에 탐심에 야합하지 않고 오직 화(和)를 추구하는 훌륭한 지도자이다.
선비는 공사(公私)를 엄격히 구분하는 이성적인 인격자이며 남을 다스리기 전에 먼저 자기 수양에 힘쓰는 수신(修身)의 사람이며 인(仁)과 예(禮)를 알고 스스로 실천하는 보통사람이다.
이토록 숭고하고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비 정신’ 문화가 어쩌다 세계화 바람에 휩쓸려 망각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현실이 되었는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과거 ‘선비 정신’이 살아있던 시대에는 비인간화니 인간성 회복이니 하는 말조차도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모든 계층에서는 윤리 도덕이 실추되고 수치심은 결여(缺如)되었으며, 양심의 부재 현상까지도 나타나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야합(野合),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이렇듯 실로 비인간화를 우려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은 그 이유가 바로 우리의 ‘선비 정신’ 문화를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도 인성교육을 제1의 덕목으로 강조한 지가 이미 오래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효과는 미미하다.
우리는 인성교육의 부진과 사회의 비인간화를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안되겠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한국인의 긍지요 자존심인 ‘선비 정신’을 회복시켜 인간화 교육의 바탕으로 삼고 우리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시키고 계승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실감하면서 우리는 ‘선비 정신’을 스승의 요건으로 삼고 정신교육의 지표(指標)로 삼아야 한다.
스승 상의 재정립과 ‘선비 정신’의 회복, 이것이야말로 바로 교육도 살리고 우리가 세계 속의 일등 국민으로 가는 새천년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 시인, 전 동해중 교장 탁상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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