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대첩비 '100년 만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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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2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5-1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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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5 18:03 조회 1,792회본문
문화재청, 환국기면 고유제 지내
일제에 강탈돼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던 북관대첩비가 고국에 무사히 돌아왔음을 알리는 고유제를 치렀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과 광복60주 년기념사업추진단 공동주최로 10월 2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서 열린 고유체는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에 반출됐던 북관대첩비가 100년만에 귀환했음을 고국산천에 고하는 의식이다. 북관대첩비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임진왜란 때 정문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을 기념해 조선 숙종 34년(1707년)에 세운 승전비다.
고유제 의식을 마친 북관대첩비 환수 추진위원회 초산 스님(한일불교복 지협회장)은 “북관대첩비를 되찾은 의미는 100년만에 우리민족혼이 돌아 온 것”이라며 “순수 민간차원의 노력 과 정부의 지원, 나아가 북한의 도움 까지 모두 힘을 합쳤기에 가능했던일”이라고 강조했다.
고유제를 마친 뒤 유홍준 문화재청 장은 북관대첩비가 1905년 일본에 반 출된 과정을 담은 일본군 공문서를 공개하며 “일본이 비의 이전을 후손에게 승낙 받았다는 공문까지 만들었을 만큼 치밀하게 북관대첩비 강탈의정당성을 확보하려 들었다는 증거”라고 발표했다.
공개된 일본군 공문서는 러일전쟁 (1904~1905) 당시 일본군 소장 이케 다마사스케(쌔31사)가 일본 육군 대신 데라우치 마사다케(후일 조선 초대총독)에게 보낸 편지와 답신으로 된 문서이다.
개석(덮개돌)과 받침대를 망실해 온전하지 못한 북관대첩비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명랑대첩비를 응용해 덮개돌과 받침대를 제작, 곧 온전한 모습을 갖춰서 원래 있던 북한으로 반환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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