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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의 나라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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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78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05-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문화기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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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5-29 05:23 조회 2,0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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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글: 앙코르와트 탐방 (1회)

앙코르와트의 나라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

총지종 법장원 연구원 보정 박사가 앙코르와트와 캄보디아의 현재 모습에 대한 감상을 정리 하였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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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함께 앙코르왓 인근의 시엠립 국제 공항에 내리자 열대 지방의 후덥지근한 저녁 공기가 온 몸에 느껴졌다. 그러나 유난히도  웠던 서울의 겨울 날씨를 겪다가 무더운 여름 날씨를 겪는데서 오는 신기한 느낌 때문에 더위로 인한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지리 상식에 비추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서울에 있었으면 6개월 후에나 겪을 여름 날씨를 불과 이틀 만에 겪게 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 었다. 전날 하노이에서 하루 밤을 지내면서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날씨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동설한의 계절에 겪는 시엠립의 열대 기후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였다.

시엠 립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는 하나 활주로가 단 하나밖에 없는 조그만 시골 공항이다. 땅이 좁고 육상교통이 잘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지만, 땅이 넓은 나라의 중소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공항이다. 후덥지근한 날씨를 느끼며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 활주로가 있는 들판 한 가운데 달랑 하나 있는 건물에 들어서니 대략 쉰 평 되는 방안이었다. 200여명 되는 정원을 가득 채운 비행기 한 대와 서른 명 가량이 정원인 쌍발기 한 대가 동시에 쏟아 낸 승객들이 모두 이 방에 들어서자 방안은 콩나물시루처럼 되 었다. 모두들 여기가 어딘가 하고 우왕좌왕하 더니 이내 질서가 잡혀 갔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방안에서 재빨리 질서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대부분이 관광안내원이 딸린 단체 관광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방은 출입국 관리사무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관광안내원들이 자신이 인솔하 고 있는 일행의 여권을 모아서 일괄적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자를 받기 전에 미리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했기 때문에 질서가 빨리 잡힌 것이었다. 캄보디아는 여행 자들의 본국에 파견한 영사관에서 비자를 발급 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이나 공항에서 바로 발 한다. 아마도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국가 재정 형편상 세계 각지에 영사관을 설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나라에 굳이 불법적으로 입국하여 눌러 앉을 사람도 없는 까닭에 이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방안은 질서가 잡혀갔지만 우리 일행이 사 태를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우왕좌왕 하다가 가까스로 이곳이 출입국 관리사무소라는 것과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일부는 비자 신청서를 쓰고 일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였다. 그때 검은 제복을 입었지만 위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작은 체구의 캄보디아인이 내게 다가와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웬 한국말인가 하고 의 아해 하는데 다시 “빨리, 빨리 가요 투웬티 쓰리 달러”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고 있으니 빙그레 웃으면서 재차 “빨리, 빨리 가요 투웬티 쓰리 달러”라고 하면서,손짓발짓까지 해 대었다. 눈치코치로 해석해 본즉 일인당 23 달러만 내면 자신들이 비자처리를 일괄적으로 해 준다는 뜻이었다.

이 캄보디아인의 말뜻은 가까스로 알아차리  나니, 이번에는 도대체 이 친구가 뭐하는 사람인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는 자기한테 23달러를 내고 여권만 맡기면 비자신청서를 쓸 필요도 없고 비자 인터뷰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왜 23달러 이냐고 하는 나의 물음에 20달러는 공식적인 비자 신청비이고 3달러는 일종의 급행료라는 그의 말은 나를 황당 하게 하였다. 겉모습을 봐서는 분명 이민국 관리인데, 하는 짓은 비자 브로커 내지는 사기꾼이었다. 이민국 관리로 보고 믿자니 하고자 하는 짓이 영 황당하기 짝이 없고, 비자 브로커나 사기꾼으로 보자니 너무나 대담무쌍하였다. 아무리 대담무쌍한 브로커나 사기꾼이기로 서니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이민국 관리의 복장을 차려입고 브로커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별 희한한 인간도 다 있다 여기다가 문득 한국을 떠나기 전 날 만난 여행사 직원의 말이 생각났다. 캄보디아 비자 신청서 가 포함된 여행 일정 이 담긴 책 자를, 주면서 공항에 서 비자를 받을 때 1 불씩 급행 료를 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과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하였던 것이다.

여행’사 직원의 말이 생각이 났지만 여전히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여행사 직원 이 한 말과 부닥친 상황이 꼭 일치하지는 않았 기 때문이다. 여행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원래 여행 안내원에게 여권과 돈을 맡기게 되어 있었다. 사실은 전 날 밤늦게까지 이야기 하다 새벽 3시가 지나서 잠자리에 누운 데다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온종일 강행군을 한 관계로 정신이 맑지는 않아서 여행사 직원의 말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식으로 비자신청서를 써서 내자니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아서 몇 시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 지 않을까 두려웠다. 더구나 우리 일행은 모두 여덟 명이 나 되었으므로 여덟명 모두 가 무사히 통과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지 않았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꼬투리를 잡힌다면 모두가 공항에서 몇 시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 다. 그렇다고 이민국 관리처럼 생긴 이 자를 믿자니 혹 시 여권을 도둑맞거나 아니면 불법행위로 처벌이라도 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내가 주저하고 있자니 이 캄보디아인은 계속 손짓, 발짓,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23달러를 내면 바로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다는 것을 내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역으로 해석하면 23달러 내지 않으면 몇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협박 같기도 했지만, 입에는 여전히 매우 선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였다.

혼자 판단을 내릴 수가 없어서 일행의 살림을 맡고 있는 강 선생에게 의견을 구하였다. 강 선생이 이 캄보디아인의 제안이 여행사 직원한테서 들은 말과 일치한다는 말을 하기에 드디어 믿기로 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에 명찰에 적힌 이름을 손바닥에 적고서 여덟 명의 여권과 184달러를 건넸더니 싱글벙글 하면서 우리 일행을 인솔하여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시켜 주고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이 옳았던 것인지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184달러를 냈지만 우리 일행은 기대했던 만큼 비자를 빨리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분이 지나도 우리 일행의 여권을 가지고 사라진 그 캄보디아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느새 사람들이 3분의 2이상이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했다. 게다가 정식으로 비자를 받 는 사람들도 쉽게, 그리고 신속히 심사대를 지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 사기당한 기분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다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조바심이 일어 이민국 관리 한명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나를 다시 출입국 심사대 저편으로 데리고 가서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방안에는 세 명의 이민국 관리가 여권을 수북이 쌓아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창 우리 일행의 비자발급을 처 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 리와 같은 방식으로 심사대를 미리 통과하고는 비자가 첨부된 여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작업실에서 몇 분을 기다려서 우리 일 행의 여권을 모두 받아 챙겼다. 비자 신청서에 는 신청자의 여행 목적과 구체적인 행선지를 적게 되어있고, 마지막에 신청자의 서명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이민국 관리들 이 알아서 작성하고 자신들의 서명으로 대신한 다음 비자를 발급한 것이다. 다시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서 일행들에게 여권을 나누어주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생각할수록 요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 방문시 경험하는 삼엄하고 긴장된 기운이 감도는 미국의 출입국 심사대와 비교해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진풍경이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지만 출입국 관리소에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며 공항을 빠져나았다. 공항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국인 관광안내원을 만나 우리 일행을 태울 버스에 올랐다. 관광안내원은 우리가 오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공항을 빠져 나온 것을 기뻐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경우는 비자 발급받는 데 실제로 몇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출입국 관리들이 고의적으로 지체해서가 아니라, 조그만 공항이어서 관리들이 몇 안 되는데 비행기가 한꺼번에 많은 승객을 내려놓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었다. 관리들이 돈을 받게 된 것 역시 처음 부터 부패한 탓은 아니고 이런 상황에 처한 한 국 관광객들의 급한 성미가 낳은 결과라고 한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이민국 관리들에게 돈을 주면서 일을 재촉한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1달러였는데 이제는 올라서 3달러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기가 막히는 것은 이들 관리 역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는 접근을 하지 않고 한국관광객들에게만 접근하여 돈을 받고 비자 업무를 대행한다 는 사실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앙코르 유적지를 향했다. 2월은 이곳에서도 일 년 중 가장 기온이 낮은 시기이지만 여전히 한 낮에는 30도 중반을 오르내리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나다니고 정오부터 두 세 시간은 가능하면 실내에서 머물도록 해야 한다. 이곳 사람들은 새벽 다섯시만 되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출근길 러시 아워 가 우리보다 2시 간가량 빠르다. 6시가 되 면 도로가 자전거와 오토바이 출근행 렬로 가득하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는 이곳 사람들은 더위가 한창인 점심 식사 후에는 낮잠을 즐긴다. 정규 사업장에는 공식 낮잠 시간이 있다.

흔히들 앙코르 왓으로 알고 있는 시엠 립의 거대한 석조 유적은 앙코르 톰과 앙코르왓으로 나뉘어져 있다. 앙코르란 말은 크메르어로 “도시”를 의미한다. 톰은 “위대하다”는 뜻이고 의미하고 왓은 “신전”을 의미한다.

앙코르는 캄보디아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이다. 캄보디아를 킬링필드의 나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아하게 느껴지겠지만 앙 코르는 분명 캄보디아인들이 1000년 전에 자신들의 땅에 만들어 놓은 기념비적 문화 유신이다. 캄보디아인들의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빼어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더없이 아름답고 웅장한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일정을 따라 오전에 앙코르톰을 관람하기로 하였다. 앙코르 톰은 옛 크메르 제국의 행정과 종교의 중심지, 즉 수도로서 이름 그대로 “위대한 도시”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앙코르 톰은 그 전성기인 14세기에 당시 유럽의 어떤 도시보다도 웅장한 규모의 도시를 이루고 있었으며, 약 100만명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찬란한 도시는 외적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가로 세로 각기 약 3.8 키로미터에 이르는 성곽이 만들어져 있고, 성곽 둘 레에는 다시 폭100미터에 이르는 해자가 파져 있다. 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네 개의 방향에 각기 하나씩 만들어 놓은 석조 진입로를 따라서 해자를 건넌 다음  다시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해자를 그냥 건너다간 해자에 풀어놓은 악어밥이 되고 만다. 터널 형의 성문은 원래 문이 없고, 대신 적이 성 바로 앞까지 오면 터널형 성문에 코끼리를 몰아넣은 다음 죽여서 막도록 설계되어 있다. 때문에 성문의 크기는 코끼리 한 마리가 빠져 나올 수 있는 정도의 폭과 높이를 하고 있다. 마치 북한이 진격해 올 경우 북한의 전차나 탱크의 서울 진입을 지연시키기 위해 요충지의 도로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커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를 올려 놓고 필요시에 떨어뜨리게 해 놓은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성내에는 주로 왕과 왕족, 관료, 성직자, 군인들이 살고 일반인들은 성곽 바깥에 산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을 비롯하여 이들이 일상생 활을 영위하던 거주 공간들은 목재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건물의 기초를 이루고 있던 돌로 된 토대는 여전히 남아 있어 웅장하고 화려했던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목조 건물들이 모두 사라진 성 내외부에는 도처에 석조건물들만이 허물어진 채 흩어 져 있다. 어떤 것들은 완전히 복원되었고, 어떤 것들은 복원 중에 있으며, 어떤 것들은 돌무더기로 남아있다.

지금껏 남아있는 이들 석조건물들은 거의 대 부분이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 들이다. 신전들은 9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서 앙코르 제국의 여러 왕들이 지은 것들이다.  왕들은 각기 자신만의 신전을 지은 다음 여기서의 제사 행위를 통해서 자신과 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국민들에게 과시하였다. 신전 곳곳에 힌두교 신화의 주인공들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왕들의 제사 행위는 주로 힌두교의 사고 방식에 기초해서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힌두교에서는 제사 의식이 특히 중시된다. 힌두교도들은 제사를 통해서 우주의 질서를 조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 신전들 가운데서 가장 웅장한 것은 위신전들은 모두가 웅장한 규모의 피라밋형 구조물들이다. 큰 것들은 가로 세로 각기 200미터가 넘으며 높이 역시 수십 미터에 이른다. 우주의 질서를 조종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웅장한 신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구조물 내부는 수많은 탑들로 채워져 있다. 구조물의 최상층부는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제사를 가능한 한 높은 곳에서 지내는 것은 대부분의 종교의례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태양과 달,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지닌 힘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높이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 도시 앙코르 톰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바이욘 신전이다. 바이욘 신전은 캄보디 아 역사상 가장 강력한 통치자로 알려진 자야 바르만 7세(재임 1181-1120) 때에 건립되었다. 가로 세로 약 100미터 높이 50미터 가량의 3층으로 된 피라밋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거대한 신전은 매우 장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신전에는 50개의 거대한 탑이 세워져 있으며 각각의 탑에는 사면으로 4개씩 총 200개의 미소짓는 얼굴이 가로 세로 약 1.5미터의 크기로 조각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얼굴을 새겨 놓은 것은 이 얼굴의 주인공은 전지전능하여서 어디고 머물지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앙코르의 미소로 알려진 이 얼굴들은 여러 면에서 양면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며, 투박하면서도 섬세하고,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지니 고 있다. 네모진 얼굴모양, 뭉툭한 코, 커다란 입은 투박하고 장엄한 남성미를 드러내고, 둥근 눈과 관능적인 느낌마저 자아내는 도톰한 입술과 거기서 나오는 미소, 전체적으로 부드 러운 윤곽의 처리는 섬세하고 우아한 여성미를 자아내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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