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길 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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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77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12-01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신행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필자명 한주영 필자법명 - 필자소속 불교환경연대 필자호칭 사무처장 필자정보 - 리라이터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12-09 15:26 조회 1,741회본문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길 원함
선남자여, 또한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기를 원한다는 것은, 사바세계의 비로자나여래께서 처음 발심하실 때로부터 정진하여 물러나지 아니하고 불가설불가설의 몸과 목숨을 보시하시되, 자신의 피부를 벗겨 종이로 삼고, 자신의 뼈를 쪼개어 붓으로 삼고, 자신의 피로써 먹물을 삼아 수미산만큼 경전을 쓰셨듯이 법을 존중히 여기는 고로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셨거늘 하물며 어찌 왕위나 도시나 시골이나 궁전이나 정원이나 숲 등 온갖 곳에서의 가지가지 행하기 어려운 고행이겠느냐.
부처가 되기를 원하는 불자로서 부처님을 따라 배우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면 부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따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현행원에서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등장하지만 모든 부처님이 다 이와 같다고 할 것이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는 비장함은 안일함에 빠지려는 수행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전생을 담은 본생경에서도 기꺼이 목숨을 바쳐서 중생을 구제하고 진리를 구하는 모습은 무수히 많다. 현실적으로는 역사적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잘 알고 잘 기억해서 우리가 따라 배우려 노력하는 것이 상수불학원을 받아 지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부처님의 생애를 기억하고 따라 배우기 좋은 방법으로 불교의 4대 명절이 있다. 부처님오신날, 출가재일, 열반재일, 성도재일이다. 부처님오신날에는 부처님 오심을 기뻐하면서 부처님께서 과거 무수한 시간 동안 보살행을 닦으시고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언젠가는 부처가 될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향해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게 된다, 출가재일에는 부처님께서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실 때를 생각하며 따라 배운다. 우리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애를 쓰고, 부귀영화를 갈구하는데 그 분은 그 자리를 버리고 출가하셨다. 노부모와 사랑하는 배우자와 갓태어난 자식과 공동체 의 명운을 책임져야 할 태자의 신분으로 그가 버린 하나하나는 얼마나 놓기 힘든 것들인가를 생각할 때 내가 지금 무엇에 붙들려 있는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성도재일에는 부처님의 성도를 기뻐하며 부처님께서 어떻게 수행하셨는지 부처님의 수행법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에 초천법륜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45년간 법륜을 굴리신 것을 생각한다. 열반재일에는 부처님의 열반의 의미를 생각한다. 열반경에는 부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죽음을 보여주시는 과정과 생사를 여의고 뛰어넘은 열반의 경지가 잘 나타나 있다. 부처님의 생애를 4대 명절로 정한 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따라 배우게 함일 것이다.
하지만 보현보살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려 함은 다함이 없어 생각생각 상속하고 끊임없이 따라 배우건만,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키거나 싫어하지 않을 것이니라.” 이렇게 발원한다, 그러니 1년에 4번이 아니라 매일매일 잊지 않아야 한다. 사찰에서는 하루 4번 기도한다. 새벽예불과 사시불공 그리고 오후 미시기도와 저녁예불기도 이렇게 4번 기도하는데 우리도 핸드폰에 알람을 맞춰 놓고 하루 4번 부처님을 생각하는 습관을 갖아보면 좋겠다.
부처님의 탄생게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일체개고 아당안지’라고 하신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고통받는 중생을 편안케 하기 위해 오시 분이다. 불교에서 중생이 인간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고통받는 대상, 그리고 편안케 해야할 대상은 인간만이 아니라 뭇생명 나아가 모든 존재를 말한다.
살아있는 생명이면 그 어떤 것이든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길거나 크거나 중간이거나
짧거나 작거나 비대하거나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거나
이미 있거나 앞으로 태어날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출처: 자애경 Metta Sutta (숫타니파타1.8, Khp.9)
수행자는 이와 같이 뭇 생명에 대해 자애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보현행원의 아홉 번째 원인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에서 왜 그런지 까닭이 나온다. “어찌하여 그럴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대비심으로 근본을 삼으시므로 중생으로 인하여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비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등정각을 이루시기 때문이니라.....그러므로 보리는 중생에 속하는 것이니 만약 중생이 없으면 모든 보살이 마침내 무상정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라. 진리의 길을 바르게 나아가는 이여! 너희들은 이 뜻을 마땅히 이렇게 알지니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면 능히 원만한 대비를 성취하며 대비심으로 중생의 뜻에 수순하므로 곧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할 것이니라.”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도 평등하지 못했다. 신분에 의한 차별이 있었고 성별에 의한 차별이 있었다. 부처님은 승가공동체 안에서 이 모든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셨다. 지금은 인권의식이 높아져 원칙적으로 만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간 이외의 생물종에 대한 차별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가족 같았던 가축이 이제는 공장식 축산업의 확산으로 생명이 아닌 단지 고기를 생산하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감정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축산동물만이 아니라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있는 동물들의 고통도 다르지 않다. 멸종위기 산양과 반달가슴곰이 사는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를 놓는다, 산악열차를 놓는다 하며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흔하던 수많은 야생동물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맑은 물과 푸른 하늘을 우리 후손들이 다시 볼 수 있을까? 코로나로 3년째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잘못을 돌아볼 줄 모르고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바라며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대로 가면 기후붕괴와 생물대멸종이라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고 말터인데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작은 이익과 조금의 편안함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피부를 벗겨 종이로 삼고, 자신의 뼈를 쪼개어 붓으로 삼고, 자신의 피로써 먹물을 삼으셨다는 부처님을 따라 배우려는 불자라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1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많은 것 보다 적은 것을 추구하며 단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기후붕괴와 생물대멸종이라는 파국을 막기위해 물질소비를 줄이고 소욕지족하는 불자의 삶은 너무나 절실한 시대적 요청이자 불자의 사명이라 생각하며 보현행원품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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