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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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83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6-10-02 신문면수 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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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1 06:47 조회 2,851회본문
여성 의병대장 '윤희순 의사' 헌다례에 참석하며
마치 소풍이라도 가듯이 우리 일행들은 들뜬 마음으로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꼭 일주일만에 다시 찾아가는 길이다. 8월 29일에 봉행된 윤희순의사님 추모제 중 하나인 헌다례에 초청받아 가는 갈이다.
여기서 잠깐 윤희순 의사님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들은 독립운동하면 먼저 ‘유관순’ 님을 떠올린다. 윤희순 의사님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항일투쟁과 구국운동에 앞장서신 분이시다.
여성의 몸으로 가부장적 시대에 의병대장을 지냈으며, 국모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키는 일에 남성, 여성의 구분이 있을 수있느냐?면서 ‘안사람 의병가’ , ‘병정가’ 등 수많은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여 여성들로 하여금 구국운동에 적극 나서게 했다.
을사조약 체결로 조국에서 항일투쟁이 어렵게 되자 온 가족이 중국으로 건너가 계속 독립투쟁을 하였다. ‘노학당’이라는 학교를 설립해서 인재를 길러냈고, ‘조국 독립당’을 조직해서 투쟁하던 중 독립운동을 하시던 시아버님과 남편이 돌아가시고 아들마저 왜군에게 잡혀가 갖은 고초를 겪다가 죽자 상심하여 쓰러지고 난 후 11일만에 돌아가셨는데 그 때가 향년 76 세였다.
강원도.옥수수를 먹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택시를 타고 광복회 춘천 지부장님을 만나러 사무실로 찾아갔다.
‘광복운동을 하신 후손들의 사무실이 이렇게 초라하다니....’
지부장님은 윤희순 의사님의 단 한분 남으신 친손자이시다. 우리들이 인터뷰하 는 동안 좋은 말씀과 함께 여러 가지 자 료를 준비해 주시고 극구 사양하는데도 점심으로 ‘막국수’를 사주셔서 춘천의 인심과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헌다례 의식은 장소를 옮겨 윤희순 의 사님 동상 앞에서 진행되었다. 주최측인 춘천 예림회에서는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으며, 헌다례 의식에서 차를 봉양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주었다.
차를 봉양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오르고 한편으로는 숙연해졌다.
윤희순 의사님은 온 가족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항일운동과 구국운동을 하셨는데 지금의 현실은 어떤한가?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한국, 일본, 중국,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가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가?’ 라는 설문조사에 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가장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앞으로 국가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젊은이들의 이런 결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걱정부터 앞선다. 하지만 실제로 국가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우리 젊은이들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극복하리라 믿는다. 나도 아주 작은 일이나마 국가를 위한 일에 무엇인가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속에는 묘한 뿌둣함을 안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차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을 끼고 산들도 하나 둘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오늘은 아주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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