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의 존상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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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5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06-05 신문면수 8면 카테고리 밀교연재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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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5 05:34 조회 2,811회본문
만다라의 존상① '불'
그 가운데 그림으로 그려진 불보살, 제존의 모습, 형상을 일러서 존상이라 한다. 태장계/금강계 만다라의 불보살과 명왕, 천왕, 제신들이 대표적인 형상만다라의 존상들이다.
존상 - 불보살, 제존의 모습, 형상
형상만다라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대만다라 - 삼매야만다라 - 법만다라 - 갈마만다라이며, 이 가운데 불보살의 모습, 즉 존상으로 그려진 만다라가 바로 대만다라 이며, 이를 달리 현도만다라, 도상만다라라고도 하고, 존상으로 그려진 만다라라 하여 존형만다라 - 존상만다라 라고도 한다.
대만다라의 존상을 한 분 한 분 만나보기로 한다. 이 존상에는 격이 있으며, 그 역할과 공능이 각기 다르다. 가장 첫 번째로 등장하는 존상이 불이다. 즉 부처님이다. 그다음이 보살이며, 이어서 천왕/명왕과 천신 등의 제존들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불 - 제일의 존상
만다라의 존상 가운데 제일의 순서로 등장하는 불은 본래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후세 사람들이 상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 카필라국의 왕자로서 탄생하고 자라고, 이후에 출가와 수행, 성도의 과정과 함께 전법, 입멸의 모습으로 조각되기도 했고, 그림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대 인도인들은 성인이신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을 지극히 꺼려했다. 큰 스승이신 부처님을 신성시하였고 그것을 조형화한다는 것은 신성에 대한 모독으로 여겼다. 이와같은 부처님에 대한 존경과 신앙적 사고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래서 이러한 시기의 불교를 무불상시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불상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지 500 여년이 지난 시기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시기가 기원전후에 해당한다. 불상이 만들어 지 기 전에 초기불교시대는 석가모니부처 님의 생애나 일화와 관계된 그림이나 조형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부처님 대신에 법륜, 보리수, 연화좌, 금강좌, 불족, 사리탑등으로 표현하였다. 인도의 산치 대탑에는 불상을 대신한 조형물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다. 대부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본생도와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타낸 팔상도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일화들을 묘사한 불전도가 새겨졌다.
이와 같이 입멸후 500여년 까지는 불상이 출현하지 않고 다른 상징물로 표현되었고 500년이 지난 시점에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던 때부터 이미 불상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입장이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주장된 것이라 보고 있다. 경전의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하고 있다.『증일아함경』 제28권이나『관불삼매해경』등의 내용에 따른 것으로 신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에 올라가 설법하였을 때 지상에서는 오랫동안 부처님의 모습을 뵐 수 없게 되자 당시 신심이 돈독하였던 교상미국의 우다야나왕은 신하들을 시켜 단향목과 박달나무로 높이 5자의 여래형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사위국의 파사익왕은 금으로 다섯 자의 여래상을 조성하였다 한다.
그리고『관불삼매해경』에서는 역시 우다야나왕이 석가모니부처님을 사모하여 금으로 불상을 만들어 예배하고 공양을 올렸는데, 도리천에 가셨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금으로 만든 상을 보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저 내세에 큰 불사를 지었구나. 내가 멸도한 후에 나의 모든 제자들을 너에게 부촉하노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불상의 도래를 예언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 내용은 전설적인 불상제작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신앙적인 측면일 뿐 불상 제작은 훨씬 후대에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불상 조성 이전에는 연화 - 보리수 - 법륜 - 불탑 - 불족적 - 금강 보좌로 표현.
불상이 출현하기 전에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석가모니부처님의 일생과 직접 관련이 있는 상징물들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 주로 연화 - 보리수 - 법륜 - 불탑 - 불족적 이나 금강보좌로 표현되었고, 또는 그냥 공백으로 처리되기도 하였다.
연꽃은 부처님의 탄생을, 보리수는 깨달음, 법륜은 설법을 나타내고, 불탑은 열반을 뜻한다. 특히 불탑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화장에서 나온 사리를 모셔둔 신성한 상징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들 네 가지는 부처님의 4대성지를 의미한다.
불족적은 부처님의 전법활동을 의미한다. 단순한 발에 불과하지 않다. 그래서 경전에 부처님의 발이 여러 장면에 걸쳐 무수히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곧 부처님의 교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발과 관련된 내용을 본다면, 태어나자 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이다. 첫 발을 내디딘 발자국이 '지금도 네팔의 룸비니 동산에 남겨져 있다. 돌아가실 때도 관 밖으로 발을 내보이셨는데, 불법이 영원하다는 것을 발로써 보여준 것이다. 발과 연관된 일화는 이 뿐만이 아니다. 사촌동생 제바달다가 부처 님을 해하려고 상처를 낸 부분도 발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부처님의 발에 피를 내면 바라이죄에 해당한다는 율을 제정하게 되었다. 발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전 여러 곳에서 부처님의 발을 씻어 드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설법을 마칠 때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발 아래에 머리를 숙이고 예배하고 물러갔다는 대목도 자주 등장한다, 이는 부처님에 대한 예경이자 부처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나타낸 것이다.
금강보좌나 공백은 부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며 우주 삼라만상에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한다. 여여하며 상정에 머물러 계심을 나타낸다.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을 상으로 나타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과 관련이 깊다. 그리이스의 신상들이 인도 불교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곳이 인도의 간다라 지방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불교 예술과 불상을 일러서 간다라미술, 간다라불상이라 한다. 그동안 인도인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신성시하여 상으로 모시지 않았지만 그리이스의 신상 영향을 받아 석가모니부처님을 인격화하여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불상으로 조각하게 되었다. 그 불상은 32상 80종호의 특상을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에 또다른 지역에서 불상의 조각이 이루어졌으니, 이곳이 인도 중서부의 마투라 지역이다. 이 지역의 불상을 마투라 불상이라 한다. 인도 자체 내에서 자생적으로 조각된 불상이다.
초기불교로부터 부파불교에 이르는 동안에는 부처도 석가모니 일불 뿐이었다. 물론 과거칠불아 있었지만 신앙대상으로서는 석가모니부처님 밖에 없었다. 수많은 부처님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승불교에 와서부터이다.
불상이란 말이 반드시 부처님의 상을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좁은 의미로는 부처님의 존상을 말하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 불상이라 하면 대개 사찰에 봉안되어 있는 각종 보살상과 나한상 및 불교의 수호신인 신중상도 불상에 포함된다. 따라서 여래상, 보살상, 신중상, 조사상 등 불교교리와 관련된 모든 형상의 조형물을 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존상 가운데 제일의 상이 불, 여래다. 이는 깨달으신 분의 상징이다.〈다음호에서는 불상의 각부 명칭과 32상 80종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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