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고통은 부처님의 자비요 은총입니다.

페이지 정보

호수 87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지상설법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법등 필자소속 밀인사 필자호칭 주교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5 07:49 조회 2,509회

본문

고통은 부처님의 자비요 은총입니다.

어디서 찾아온 고통인가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가 그 몸과 마음으로 받게 되는 물질적 정신적 괴로움과 아픔을 우리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나 자신에 집착해 있기 때문인데요, 자아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버린다면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고 삶은 더 없을 것이지만 사바세상에 업보로 태어나서 산다는 것 자체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되지요.

고통은 인간이 지닌 선택의 능력으로 인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여 지은 지난 날의 잘못된 생각과 행위의 쌓임에서 오는 그 결과적 보답이며, 또한 욕심과 성냄과 미움, 원망 등의 번뇌와, 고개돌려 외면한 우리 자신의 행위로 인해 스스로 역경을 만들어서 받게 된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지요.

몸의 병, 마음의 병, 죽음, 가난, 일의 실패, 애착하는 것과의 이별, 좋은 현실을 잃어버리고 좋지않은 환경과의 만남, 외로움과 고독함 등이 우리의 고통이며 이러한 고통들은 인간의 사랑, 미움, 증오, 애정, 쾌락, 욕망, 갈망에서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상하고 무아인 모든 것은 다 고통이라고 하며 그렇기 때문에 상락아정을 이루기 전에는 인간은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는 것이지요.


인간의 참된 행복과 성숙

그러면 인생의 시련과 삶의 상처로 인해서 괴로움과 고통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인간은 지난날 자신이 지은 업의 업보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모든 고통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잘 받아들이고 그 원인을 생각하며 참회하고, 원망하거나 증오하고 피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찾아온 고통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고통을 당하여 잘 참고 기다림으로써 뒷날 부를 얻게 하며, 뛰어난 용모를 갖추게 하며, 큰 힘을 얻게 하며, 세상을 밝게 비추게 하며, 기예를 이루게 하며, 원망을 이기고 고통을 이기게 한다.

어려움을 당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잘 참고 견디면서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길로 살아간다면 무슨 구함인들 얻지 못하며, 어떤 소원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겨울은 우리에게 항상 겨울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겨울 가운데서 봄은 이미,오고 있음을 안다면 인생의 겨울이 그다지 힘들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고통은 불행이 아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땀과 눈물의 고통을 통해서 오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시인 메리 올리버는 그녀의 시에서 “나에게 당신의 상처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나의 상처에 대해 말하리라” 했지요.

내 상처가 너의 상처일수 있고 너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기도 한 것 이지요. 상처없이 고통없이 사는 인생이 있을까요? 고통은 원인에 의해서 생기게 되는 결과적 현상이요 피 할 수 없는 진리의 모습이며 아픔이 긴 해도 불행은 아닙니다.

고통을 당하여 그것을 자신의 불행으로 보는 고통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고통은 진리의 한 모습입니다. 고통 앞에서 좌절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내것으로 받아들이며 잘 참고 받게 되면 고통은 사라지게 되고 지난 날 지은 죄업의 어두운 그림자에 서 벗어나게 되어 삶이 더 밝아지고 자유로울 수 있게 되지요. 그래서 고통을 통해서 인간은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지요.

옛날 어떤 고승은 3생 동안에 받아야 할 고통을 한 생의 마지막 3년동안에 다 받았다고 하지요. 맨 처음 눈이 멀어져 장님이 되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다시 앉은뱅이가 되 어 고통을 받았으며, 마지막으로 귀머거리에 벙어리가 되었지만 3생동안 태어날 때 마다 받게 될 기나긴 고통 들을 한생의 죽기전 마지막 3년동안에 차례로 다 받아버리고 그 다음 생은 태어나서 큰 수행자가 되었던 것 이지요. 받아야할 같은 고통이라도 바른 믿음과 마음으로 닦고 살면 고통도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 지요.

부디 고통을 만나게 되어도 좌절하지 말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한가닥 희망마저 사라지고 길이 끊어진 자리 그래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좌절하고 포기하는 그 순간에도 다시 소생하는 길이 있다고 하지요. 절후갱생이지요.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젊은 날의 꿈이 아버지처럼 목사가 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전도사가 되기위해 어느 날 전도사 시험을 쳤는데 전도사가 되기엔 부적합하다고 시험관 에 의해서 탈락이 되었습니다. 목사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었지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도 딱 10년 동안을 그렸고 그의 작품은 그 당시 단 두 점만 팔렸다고 합니다. 가난했지요. 그러나 그가 시험에 합격하여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었거나, 목사가 될 수 없음에 좌절 하여 자포자기했더라면 오늘날 천재 화가 고흐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통을 치유하는 힘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그의 시〈기도〉에서 “고통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가슴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내 지신의 성공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지않게 하시고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지요.

예상하지 못한 행복이 있듯 생각하지 못한 슬픔과 고통이 있지요. 고통을 잘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바른 의지와 노력이 있을 때 고통은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진리를 생각하게 하지요.

고통을 통해서 더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인간, 그래서 고통은 부처님의 자비요 은총이 되지요. 릴케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이 고통의 시원이 어디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살아보는 일이다”고 했지요.

고통은 행복과 함께 삶이라고 하는 하나의 아름다운 무늬를 채색하여 더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지요.

불교에서 자비의 어원은 “함께 상처(고통)를 받는다”는 뜻이라 하지요. 자신이 고통스러울 때나 누군가가 삶의 상처로 고통스러워 할 때 그것을 불행으로 보는 잘못된 집착을 버리고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아주는 것은 친절이나 인간적 따스함을 넘어 상처받은 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고통의 뒤안길에서 만나는 행복,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있듯 생각하지 못한 기쁨과 행복도 있지요.

귀한 믿음 속에서 모든 것이 뜻대 로 성취되시길... 옴 시띠안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