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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본 밀교승 1. 신라 혜통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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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72호 발행인 법등[구창회] 발간일 2014-03-05 신문면수 6면 카테고리 특집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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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5-25 10:30 조회 2,0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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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서 본 밀교승 1. 신라 혜통국사

이 땅에 밀교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기는 신라의 혜통국사가 당나라 무외삼장 법사로부터 밀법을 수지하고 귀국하면서 부터이다. 무외법사는 범어 슈바카라 싱하를 번역한 이름으로, 중국에서 역경승 으로 활동한 중천축국 출신의 학승이다. 감로반왕의 후예인 불수왕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13세에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형제들이 난을 일으켜 곧 왕위를 버리고 나란다사로 가서 달마국다로부터 밀교를 배우고 그 밀법의 요체를 터득하여 그 이름을 알렸다. 범본의 불전들을 갖고 카슈미르, 우디야나, 티베트를 거쳐 716년에 중국의 장안에 도착했다. 당 나라 호우의 환대를 받고 흥복사와 서명사에 머물다가 보리원으로 옮겨 역경에 전념했다.

금강지와 함께 중국 밀교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735년에 입적했다.

무외법사의 수제자인 혜통에 관한 삼국유사 의 기사는 권제5 제6 신주편 혜통항룡조에 스님의 출가부터 입당구법, 귀국후의 활동들이 자세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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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고려대학교 소장본
 


헤통국사의 출가


「국사 혜통은 그 씨족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백의로 있을 때 그의 집은 남산 서쪽 기슭인 은천 어귀(지금의 남간사 동리)에 있었다. 어느날 집 동쪽 시내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죽이고 그 뼈를 동산 안에 버렸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그 뼈가 없어졌으므로 핏자국을 따라 찾아가니 뼈는 전에 살던 굴로 되돌아가서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다. 혜통이 바라보고 한참이나 놀라고 이상히 여겨 감탄하고 망설이다가, 마침내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혜통으로 바꿨다』

권제5 제6 신주편 혜통항룡조 "수달을 죽이고 출가하다.“


삼국유사는 혜통의 출생과 출가에 관한 기사를 담고 있다. 스님은 수달 한 마리를 우연히 잡아 가죽은 벗기고 뼈를 묻었다. 수달은 죽어 가죽이 없이 뼈만이라도 자신의 자식들을 찾아가 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명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한다. 스님은 한참을 고민 끝에 자신의 백의(속인)를 벗고 출가하기에 이른다. 중생의 아픔을 해결해 주는 밀승으로의 각오가 보이는 부분이다.


입당구법의 길


「당나라에 가서 무외삼장을 뵙고 배우기를 청하니 삼장이, "우이의 사람이 어떻게 법기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혜통은 쉽게 물러가지 않고 3년 동안이나 부지런히 섬겼다. 그래도 무외가 허락하지 않자 혜통은 이에 분하고 애가 타서 뜰에 서서 불동이를 머리에 이고 있었다. 조금 후에 정수리가 터지는데 소리가 천둥과 같았다. 삼장이 이 소리를 듣고 와서 보더니 물동이를 치우고 손가락으로 터진 곳을 만지면서 신주를 외니 상처는 이내 아물어서 전과 같이 되었다. 그러나 흉터가 생겨 왕자 무늬와 같으므로 왕화상이라고 하여 그의 인품을 깊이 인정하여 인결을 전했다」

권제5 제6 신주편 혜통항룡조 “당으로 유학하여 무외삼장 에게 배우다”


출가 후 혜통스님은 당으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풍문으로만 들어오던 밀교를 배우기 위해서다. 당나라 수도 장안에는 많은 서역승들이 들어와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을 번역하고, 밀법을 전수했다. 스님의 스승인 무외삼장법사는 중천축국 왕자 출신으로 나란다에서 밀법을 전수 받고 티벳을 거쳐 중국으로 온 학승이다. 변방의 오랑케 나라에서 온 승려에게 자신의 법을 전 수 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스님은 삼년이라는 시간을 정성으로 스승을 모셔 마침내 관문을 통과 한 것으로 보인다. 밀법을 전수 받은 혜통스님은 스승으로부터 인준을 받고, 스승의 명으로 당 나라 공주의 병을 치료한다.


스승으로부터 인정받고

당나라 공주의 병올 고치다.


「이때 당나라 왕실에서는 공주가 병이 있어 고종은 삼장에게 치료해 달라고 청하자 삼장은 자기 대신 혜통을 천거했다. 혜통이 가르침을 받고 딴 곳에 거처하면서 횐 콩 한 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니, 그 콩이 변해서 횐 갑옷을 입은 신병이 되어 병마들을 쫓았으나 이기지 못했다. 이에 다시 검은 콩 한 말을 금그릇에 넣고 주문을 외니, 콩이 변해서 검은 갑옷 입은 신병이 되었다. 두 빛의 신병이 함께 병마를 쫓으니 갑자기 교룡이 나와 달아나고 공주의 병이 나았다」

권제5 제6 신주편 혜통항룡조 "당 고종의 공주의 병을 고치다.”


무외삼장법사로부터 밀법을 전수 받은 스님은 당나라 왕실의 치병 구제에 스승을 대신해서 불공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공주의 몸에서 해악을 끼치던 교룡은 신라로 와 문잉림에 와서 인명을 해치는 등 해악을 끼친다. 혜통스님은 이 소식을 듣고 스승에게 하직하고귀국길 오른다.

다음호에 계속 

‘자료출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국사편찬위원회, 한국불교대 사전편찬위원회 , <한국불교대사전>3 / 명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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