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진언행자 가족을 찾아서 - 관성사 박영자 교도

페이지 정보

호수 91호 발행인 우승 발간일 2007-06-01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08 05:32 조회 2,612회

본문

진언행자 가족을 찾아서 - 관성사 박영자 교도
"이젠 마음 비우는 공부를 하렵니다"
b4b3b43555e52a06b03818dc92f0b89a_1528403509_7756.jpg

마포공동체라디오 방송 행복한 하루 MC, 스마일 할머니 박영자 보살


서울 마포의 한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그곳에 웬 할머니가 헤드폰을 쓰고 능숙하게 방송 진행을 한다.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인생, 행복한 하루의 박영자입니다. 엊그제 연등축제 어떠셨나요, 대단했죠? 저도 연희단으로 참가해 덩실덩실 춤추며 축제의 주인공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나이는 문제되지 않더라구요. 늙어 간다는 것은 분명 고통이긴 합니다만, 그 늙음을 한탄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열심히 산다면 그야말로 복되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우리에겐 인생의 오랜 경험에서 오는 지혜가 있지 않습니까? 자, 오늘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노년을 꽃피우시는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활기찬 일상속으로 출발합니다. 노래 한 곡 듣겠습니다〜”



스마일 할머니. 방송국에선 박영자(일법혜. 67) 보살을 그렇게 부른다. ‘조바심 내거나 안된다 하면 정말 안되고, 웃으면 된다’는게 보살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침 출근 하는 남편에게도 “여보, 일찍 들어오세요”가 아니고 “여보, 가실때 세 번만 웃고 가세요라고 한단다.

스마일 할머니는 재물없이도 할 수 있는 일곱가지 보시행인 무재칠시 중에서 환한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열색시를 몸소 행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그저 온화하고 기쁜 얼굴로 상대를 편하게 해준다는 말씀이 절 발심시킨답니다. 그래서 기쁠때나 슬플때 마저다 항상 웃음올 잃지 않으려 애쓴답니다.


'화안열색시' 몸소 실천

일법혜 보살은 방송국 MC말고도 하는 일이참 많다. 서울 관성사와 신정회 서경지회 감사를 비롯해서 총지종 최고령 합창단원에다 얼마 전에는 연등축제 연희단으로 참석해서 종일토록 춤을 추고 걷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 오랜 공무원 생활경험을 살려 국가고시 감독관시험에도 합격했다. 붓글씨에 조예가 깊어 이쪽 저쪽 글씨 선물을 한다. 기체조 수련도 10여년째 하고 있다고. 항간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일법혜 보살을 놓고 하는 말일 게다. 그만큼 굉장히 긍정적이다.

청주가 고향인 일법혜 보살은 13세때 자성학교를 다니면서 진언수행과 인연을 맺었다. 친정어머니의 영향이 지대했던 것. 어머니는 새벽 두시면 일어나 몸을 정갈히 한 후 진언수행에 몰두했다. 그래서 4형제 모두 자연스럽게진언행자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형제들이 모이면 말한단다. 우리가 이렇게 편안히 자내는 것은 모두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92세에 작고하신 어머니는 임종시에도 염주세는 손모양을 하실 정도로 신심이 대단했다.


어머니 정성이 불심 키워

그런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한 탓일까. 젊었을 적 일법혜 보살의 불심도 어머니를 빼 닮았다. 아이들의 보육과 공무원 생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퇴근하면 곧장 서원당을 찾았다. 한자리에서 앉아 일곱시간 동안 꼼짝도 않는 7정진도 무시로 했다

역시 공무원이었던 각자님(김사룡. 68)이 등기소장 시험을 볼 때 일이다. 시험시간에 맞춰 정진불공을 하는데 그날따라 왠지 집중이 안됐다. 한 15분쯤 지나니 기도가 잘 되기 시작했다. 책에 글씨까지 눈에 보이더라는 것. 나중에각자님이 하는 말, “도무지 모르겠던 문제가 한 15분쯤 후에는 술술 잘 풀리더라구. 내가 몇 페이지 몇째 줄에 줄친 것까지 생각이 나고 말이지, 참 희한한 일이야각자님은 그 시험에서 전국 1등을 했다.

“옴마니 반메훔을 건성으로 하지 않고 그저 지극하게만 하면 다 이루어 져요. 정진을 해보면 성취가 될지 안 될지 어느정도는 알게 되죠. 느낌이 와요. 그리고 제가 불공해서 안 이루어진 것에 대해선 원망심을 내지 않아요. 다만 전생에 인연이 없었을 뿐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열심히 기도불공한 것으로 족하니까요”

일법혜 보살의 이런 말뚝 신심은 어릴적 법장화 스승의 가르침 영향도 컸다.

지금은 기로원에 계시는 법장화 스승은 오십여년 전 당시 청주가 첫 부임지였다. 거기서 교도와 어린이 자성학교 등을 대상으로 불철주야 교회에 매진했다.



안되는 일에 원망 안해

“법장화 스승님이 그러셨어요. 옴마니 반메훔만 하면 공부 잘 할 수 있다고. 그말을 듣고는 참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순진무구한 마음에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된 것 같아요”

또 그때 옴마니 반메훔만 하면 모든게 이루어 진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각인됐다고.

“법장화 스승님은 평소 이렇게 말하셨죠. 뜰에 심은 나무가 자라는게 눈에 보이진 않지만 오랜 시일을 두고 보면 큰 나무가 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라고요. 불공정진을 오래 하다 보면 우리도 부처님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북돋아 주셨습니다”

일법혜 보살의 신심은 시어머니와 이교도였던 남편, 두 아들과 두 딸을 제도했다. 셋째딸은 고 3때에도 아침밥은 걸러도 육자진언은 꼭 암송하고 등교했을 정도였고. 일법혜 보살은 그렇게 며느리로 아내로 어머니로 오래전부터 큰 나무가 되어 왔다.

진언수행을 해 온지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한 지금 일법혜 보살은 말한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무얼 이루려고만 했어요. 다행히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어 많은 것을 성취하긴 했지만요... 나이가 들어선지 이젠 비우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우채 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