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총지신문 아카이브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불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페이지 정보

호수 276호 발행인 우인(최명현) 발간일 2022-1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지혜 서브카테고리 -

페이지 정보

필자명 조영미 필자법명 - 필자소속 덕화사 필자호칭 교도 필자정보 - 리라이터 -

페이지 정보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2-11-10 14:03 조회 1,680회

본문

연재글: 교도수행체험담 (1회)

불공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저는 일흔일곱 나이의 덕화사 교도 조영미입니다. 제가 총지종과 인연을 맺어 부처님의 가피로 행복하게 살아온 날들이 벌써 50년이 넘었습니다. 오늘 저의 얘기는 어떤 체험담이랄까, 거짓말도 못하고 더하고 빼지도 못하는 제가 직접 경험한 저의 제도 당시 일입니다.

 저는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습니다. 시집을 오니 어른들이 벽에 무엇인가를 모시고 아침마다 기도를 했습니다. 제단에는 조그만 신발과 예쁜 아가 옷, 물 떠놓는 그릇, 향 피우는 초 등이 있었지요. 그 당시는 어른들이 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따랐습니다. 

 손위 동서가 아프다고 어느 날은 어른들이 굿을 한다고 해서 갔습니다. 큰 병원도 없었고 굿을 하면 나을 수도 있겠다고 하던 시절, 무당이 밤새 굿을 해도 이웃도 뭐라 안하는 때였죠. 굿 하는 자리에 있던 형님은 말문이 트여야 낫는다는데, 말은 안하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어른들이 모여 앉아 하신 말씀이 “말문이 안 트여서 계속 아프면 상일이한테 주면 된단다.” 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상일이는 제 아들인데, 애먼 내 아들에게 무엇을 준다는 건지 저는 당시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저는 남편의 전근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후 원인 없는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명 무병, 신병이 몸으로 치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목 디스크와 어깨 통증에 시달리며 밤낮으로 아팠습니다. 입맛도 없어 밥도 잘 못 먹고, 병원에서 받은 수면제 처방도 소용없었습니다. 나날이 증세가 심각해져 다시 병원을 찾았는데 영양실조라는 겁니다. 먹는 것도 없는데 설사만 계속하며, 갈수록 점점 야위어갔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 송복득 보살이 저를 정각사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더도 덜도 말고 딱 일주일만 다녀보자는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처음 가본 정각사에는 밀공정 스승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는데 스승님께서도 일주일만 다녀 보라고 강권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원 어디에도 부처님이 안 계시고 사람들은 처음 들어보는 옴마니반메훔을 외우고 있어 사이비 종교 단체가 아닌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만 다닐 건데,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 이튿날인가 정각원 스승님이 가정불공을 가시자는 겁니다. 일주일만 다녀보자는 결심과 약속이 있었기에 이도 따라갔습니다. 혀도 안 돌아가 숨도 크게 못 쉬고 밥도 못할 정도로 아플 때였습니다. 가족들은 또 아프나, 절에 가면 낫나,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어딜 다니나, 가족들의 만류와 성화에도 쇼핑백에 염주와 큰 종이를 넣어 매일 버스를 몇 십분 씩 타고 사원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나 다니면 다닐수록 점점 숨도 안 쉬어지고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옴을 느꼈습니다. 너무 아파서 머릿속에는 일주일만 다니고 안 다닌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기력이 없어서 서원당 아동실에 누워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와서 불공하는데 누워있네, 벽에 기대있네 해도 두세 시간은 있다가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엿새 되는 날 둘째 시간, 아동실을 나와 서원당에서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는데 갑자기 법당이 울리도록 엄청나게 큰 트림이 나왔습니다. 한숨도 스스로 못 쉬었는데 트림을 내면서 드디어 제대로 된 큰 숨이 쉬어졌습니다. 동참불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세상이 이렇게 밝고 좋을 수가 있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모처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을 차렸습니다. 남편은 놀래 빨리 물어보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듯했습니다. 밥상을 물리고 49일 조상불공을 시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그래서 낫는다면 그리해라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정각사에서 일주일만 하기로 했던 불공을 마치고도 49일 조상불공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또 그 뒤로는 정각사에서 3년 기도불공 정진을 마쳤습니다. 지금의 덕화사가 새로 지어져 이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다행히 병도 모두 나았습니다. 


 하루 동안 행복함은 새벽불공함에 있고,

 한달 동안 행복함은 월초불공함에 있고,

 일년 동안 행복함은 새해불공함에 있고,

 평생 동안 행복함은 불퇴전에 있느니라. <종조법설집> 중에서


 이후에 종조님 말씀을 배우며 큰 깨침이 들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여태껏 총지교도로서 불공할 수 있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저처럼 제도되어 구경성불하시기를 서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