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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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2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5-05 신문면수 4면 카테고리 세계불교 / 건강 서브카테고리 -페이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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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19 10:20 조회 1,755회본문
남방불교
남방불교는 테라바다, 즉 상좌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흔히 상좌불교 또는 상좌부불교라고도 한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전승되 고 있는 불교를 가리키며, 초기 불교승단의 전통이 상당 부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비구니 교단은 11세기경에 그 맥이 끊긴 채로 단절되었다. 1998년도 통계에 따르자면, 전 세계 인구 중에서 불교 신자는 6%이고, 그 중에서 상좌부불교를 따르는 불교도가 38%를 차지하고 있다.
스리랑카 담굴라 황금사원
1. 스리랑카
인도 아쇼카 왕의 전법사가 불교를 스리랑카에 이식시킨 이래로 변함없 이 불교는 스리랑카의 중심 종교였 다.
일찍이 아쇼카 왕은 아들 마힌다 비구를 스리랑카에 보내서 불법을 전수하였으며, 딸이었던 상가 미타 비구니를 통해서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바로 그 자 리의 보리수 한 가지를 전해 주었다 고 한다.
그 보리수는 지금도 아누라다푸라 에서 생명을 잇고 있는데 거국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전 세계 불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신성 한 순례지이기도 하다.
마힌다 장로는 데바난피야 티사 왕 (기원전 250〜210년 재위)의 외호를 받아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에 대사 를 세웠는데, 이는 후일 정통 적인 대사파의 근거가 되었다.
기원전 I세기경 무외산사 가 세워져 또 다른 일파를 이루었 는데, 이로써 교단은 대사파와 무외 산사파로 양분되었다. 두 파는 각각 보수와 진보교단으로 대립하였고, 무 외산사파가 대승불교와 밀교를 수용 함으로써 그 대립은 극심해졌다. 이 러한 대립 양상은 오래도록 지속되 다가 12세기에서야 대사파의 승리로 일단락되어 교단이 정비된 이래 현 재에 이르고 있다.
스리랑카불교의 특징은 무엇보다 도 팔리경전의 전승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사파에서는 기원전 1세기 경에 이미 불전을 정비하기 시작했 는데, 경렝껭논 3장뿐 아니라 장외불 전까지도 편찬하여 경전연구의 깊이 를 더하였다.
11세기 초 스리랑카를 점령한 힌 두교 세력의 탄압으로 인하여 한때 불교교단은 위축되었고, 17세기 중 반 이후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외세로 인해서 불교세력이 한껏 약 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 계대전이 끝나고 독립을 회복한 후 불교교단은 더욱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는 명실공히 남방불 교의 핵심 성지로서 인정받고 있으 며, 전 세계 불교도의 순례지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전 인구의 67% 정 도가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 대부분은 싱할라족이다.
2, 미얀마
인도의 동쪽 국경을 잇대고 자리한 미얀마는 스리랑카 못지않은 오랜 불교역사를 가지고 있다. 흔히 ‘미얀 마에 태어나는 것은 곧 불교도가 되 는 것’ 이라 말할 정도로 미얀마의 불 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만큼 뿌리 깊은 종교라 할 것이다.
미얀마의 불교는 정치세력의 부침 과 운명을 같이하였는데, 3〜9세기에 는 부파와 대승불교가 혼재되어 있 다가, 그 후 밀교와 힌두교를 비롯한 여러 토착종교가 공존하는 시기를 거쳤다.
11세기 중엽에, 미얀마의 북부 파 간을 중심으로 세워진 통일국가의 왕 아노라타 가 스리랑카 의 대사파 계통의 상좌부불교를 수 용했는데, 그 후로 상좌부의 맥이 끊 기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파간시대 이래로 정치적 지배세력과 불교승단의 우호적 관계는 계속 유지되어 왔으나, 19세기 말 영국의 침입으로 인하여 왕정이 무너졌고 그 후 정치적인 혼란을 거듭하면서 불교승단도 그 영항력이 약화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근년에 들어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미얀마 정부가 불교 의 이상실현을 표방하면서 - 적극 후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3, 타이
현재, 타이(태국)의 불교를 한마디 로 특징짓는다면 ‘국민 모두가 승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 가 생활 속 깊이 스며 있다는 점일 것이다.
타이에서는 신체 건강한 자로서 20 세가 넘으면 누구나 승려가 되도록 추천을 받을 정도로 온 국민의 불심 이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교단 통치법’이라는 실정법을 통해 서 불교교단의 활동을 규제하고 있 다.
태국 와론 사원
타이 땅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대 승불교시대일 것이라고 추측되지만 구체적인 사료는전하지 않는다. 다 만 13세기 중엽에 타이 민족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스코타이 왕조대에 문 자의 발명과 더불어 스리랑카의 상
- 좌부불교를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 다.
그 후 14세기부터 타이를 지배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불교의 중흥을 위 해 전력하였고, 1783년에 세워진 방 콕 왕조의 후원으로 더욱 융성하게 되었다.
특히 라마 4세(1851〜1868년 재위) 는 사회적 제도의 정비와 더불어 불 교교단을 더욱 엄정하게 개혁하고 계율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강조하 였다. 이 때 왕의 정책을 따랐던 정
법파(1%)와 그렇지 않았던 대중 파 로 교단이 이분되었다.
정법파는 왕실을 비롯한 지배계층 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지만, 대중파는 계율이 그리 엄격하지 않다는 차이가 있을 뿐, 두 파 사이의 교의상 차이는 거 의 없다.
현재, 타이의 사원들 중에서 90% 이상이 대중파에 속한다.
4, 캄보디아
타이의 상좌부불교가 전해진 캄보 디아의 불교 또한 타이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남방의 다른 나라보다는 힌두교와 대승불교의 세력이 좀더 오래 번성했다는 점이 다르다.
크메르 왕조는 자야바르만 2세 (802〜869년 재위) 이후부터 9〜10세 기경의 최성기에 이르기까지 수도 앙코르에 수많은 사원들을 건립했는 데, 그 거대한 규모와 정교한 예술성 은 오늘날에도 경이로운 세계 유산 중 하나로서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우
13세기경 서북쪽에서 타이인의 세 력이 발흥하여 영토를 침입하기 시 작하자, 크메르 왕조는 쇠퇴하기 시 작했다. 그 후 유입되기 시작한 상좌 부불교는 현재까지 캄보디아의 중심 사상으로서 국민을 이끌어 왔다.
다만 캄보디아에 대한 타이의 정치 적 영향과 압박이 끊이지 않은 만큼, 타이불교교단의 영향력 또한 지속되 어 왔다는 것이 캄보디아불교의 한 성격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재, 전 국민의 85% 정도가 불교 도로서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1930년에는 타이불교교단의 영향력 을 배제하려는 뜻으로 프놈펜에 불 교연구소를 건립하기도 했다.
현재, 전 국민의 85% 정도가 불교도로서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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