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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복지화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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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7-07 신문면수 10면 카테고리 기획1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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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04:53 조회 2,3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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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복지화 스승님!
영원한 우리의 부처님이요, 스승이신 복지화 지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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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거센 소낙비가 내린 후, 하늘에는 한 점 티끌없이 푸르디 푸른 창공에 하얀 뭉게구름이 덩실 덩실 춤을 춘다. 희뿌연 안개로 뒤덮혀 있던 서울하늘이 이렇게 푸르고 맑 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음을……

무명과 어둠의 번뇌에 쌓여있는 우리의 마음속에 청정한 맑음과 푸르름으로 해탈의 길을 안내해주시는 분! ! !

열반하신지 16년이 지났건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혼 , 의 흔적처럼 인자하시고 자비하신 모습으로 인생의 여정을 밝혀주시는 등대처럼 어둠속에서 올바른 삶의 빛을 밝혀주 시는 분! ! ! !

당대의 선지자요, 큰 스승님이요, 횃불이셨던 복지화 스승님의 행적을 따라가다본다.


중생구제 - 구도의 길


복지화 스승님은 1915년 경북 영천의 유복한 가정에서 여 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다운 대장부의 용기와 기상을 간직하 셨다. 어린 시절부터 불법에 대한 동경과 관심으로 불교를 유독히 좋아하셨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불경을 독경하고 쉽 게 이해하고 부처님의 법대로 실천하셨다.

깨달음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신 스승님은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서돌암이란 남자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다. 서돌암 각자님과 복지화 스승님은 일본 나고야에서 큰 사업을 하시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고 부유한 생활을 영유하였다. 1945년 갈망하고 소원하던 조국이 일본 으로부터 해방이 됨에 따라 한국으로 귀국하여 대구에서 터전을 잡는다.

복지화 스승님은 전생부터 부처님의 법을 받들고 수행하 는 수행자의 길을 닦고 오셨기에 30세초 어린 자녀들을 시 댁에 맡기고 출가를 결심하여 부처님의 법을 받들고자 하였다.

부처님의 구도자로서 길을 걷기 위해 출가준비를 하던 중 진각종 창종조 회당님의 여동생의 이웃집에서 생활하시면서 스승님과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생활하는 인연으로 인해 스승님은 진각종을 창종하신 회당님과 인연을 맺게 된다. 

스승님은 진각종에 입문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 산은 하나의 물거품이거늘, 중생교화의 길을 걷은 사람에게 무용지물일지이다.”라며 당신이 가지고 계시는 모든 재산을 종단에 희사하였다. 스승님은 회당님과 함께 진각종의 창종 기틀을 다지셨다. 어렵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부처님의 불법 으로 제도시키고자 하시는 스승님의 원력으로 포항 보정심 인당에서 중생교화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스승님과 인연을 맺은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소원이 성취되고 병고해탈을 이루는 신비로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보정심인당은 헤아 릴 수 없는 보살들의 행렬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진각종 본원인 탑주심인당으로 전출사령장을 받은 스승 님은 손수 터전을 마련하고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 을 전하며,. 보살들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괴로움을 함께 했던 보정심인당을 뒤로하고 포항역으로 출발하게 된다. 탑주심인당으로의 전출을 교도들에게 알리지 않고 념무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인연의 법칙에 따라 포 항을 떠나기 위해 조용히 포항역에 도착한 스승님 은 수 많은 교도들이 떠나는 발걸음을 잡으며 울 부짓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이 부처님의 인연법 이라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따라 헤어지는 것,’ 이 라며 포항 교도들의 정신적 부처님이요, 자상하시 고 인자하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뒤로 하고 포항 을 떠나게 된다.

서울에 도착한 스승님은 탑주심인당에서도 위대하신 법력과 원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법으로 제도하셨고, 

서대문의 밀인심인당과 용산의 관음심인당을 개설하는 등 그 교 세와 법력은 가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스승님의 발걸음 발걸음은 살아계시는 부처님의 발걸음이요, 모든 중생들의 고통과 번뇌를 해결하는 구도자의 발걸음이셨다.

1971년 진각종에서 내분이 발생하여 당시 진각종 총인으로 계셨던 원정 대성사님과 더불어 진각종을 떠나 총지종을 창종하기에 이른다,


광활한 바다와 수미산 같은 법력


스승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흘홀단신으로 원정대성 사님과 총지종을 창종하시면서 단칸방에서 총지종의 새로 운 법으로 교화를 시작하셨다. 스승님의 법력과 원력은 아 무리 험난한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길잡이가 되어 총지 종의 창종 기틀을 다지며, 반석위에 올려놓으시는 등불이 되셨다.

수 많은 중생들의 삶의 길잡이요,、안내자요, 지도자이신 스승님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총지사란‘ 큰 서원당을 여 시고 열반하시는 그 순간까지 총지사에서 살아계시는 부처 님으로서 많은 사람들의 병고와 경제를 해탈시키시고, 올바 른 삶의 이정표를 가르쳐주시며 부처님의 정법을 펴셨다.

복지화 스승님의 마음은 온 우주의 모든 중생들을 감싸안 을 수 있는 자비심과 광활한 바다와 같지만 몸에서 흐르는 법력은 수미산보다 높고, 금강력사와 황우장사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활기와 기백이 넘친다.

빈곤과 부유,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 훌륭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의 차별없이 사원에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은 부처님이라 생각하며, 항상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반갑게 맞이하여 주시고, 사원의 살림을 운영함에 있어서도 당신의 배고픔과 가난, 안위는 뒤로한 채 배고픈 사람이 언제든지 찾아와 공양을 할 수 있도록 항상 넉넉히 준비하시어 부족 함이, 없으셨다.

조용히 좌선하시고 계시는 스승님의 몸에서 흐르는 보이 지 않는 법력과 원력은 온 우주를 휘감아 돌며, 은빛 찬란 한 무지개가 되어 서원당안에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오 묘하고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중생을 교화하시는 모습은 사내대장부 못지않은 대담함 과 결단력으로 모든 교도들을 해탈의 길로 인도하신다. 부 처님의 대자대비하신 모습을 가지고 계시는 스승님은 어머 님의 자태지만 교화하실 때는 모든 군중을 사로잡는 수행 력과 정진력, 마음속에서 짜릿한 감동을 울리게 설법으로 일관하셨다.


원정 대성사와 함께


철저한 계행을 지키시는 수행자의 행동은 사심이 없고, 오로지 모든 중생들을 위하는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 이기 에 스승님과 인연을 맺는 교도들은 스승님을 존경하지 않 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저 스승님의 모습만 보고, 스승 님의 법문만 듣고 해탈을 증득한 사람들도 많라: -

스승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또한 불 법을 만나기는 더욱 어려우니 인간의 몸으로 태어날 때 열 심히 수행하여 선업을 지으라”는 말씀을 통해 차별과 분별 이 없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강조하시며 상대방의 잘못과 단점을 지적하여 수정하기 보다 스스로 자신의 허 물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항상 마음속으로 서원하셨고, 그저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만 계셨다.

복지화 스승님의 법은 바로 부처님의 법 이요, 가르침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시 다.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생각하고 실천하 면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성취되고, 죽 을 목숨도 살리시는 신비한 영험을 가지고 계셨다.

스승님은 “많이 배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한 사람이라”라며 실천의 중요성을 강 조하셨다.

스승님의 생활은 청빈함과 엄격한 계행 을 지키는 수행자 그대로이시다. 초라한 단 칸방에서 가진 것은 이불 한 채와 허스름 한 옷 몇 벌이 전부이다. 행여 보살들이 스 승님께 옷을 보시하면 다음날 그 옷은 형 편이 어려운 보살들의 몫이 된다.


험난한 중생교화와 수행의 길


스승님은 매사에 모든 이들에게 다정다감하시고, 많이 웃 으시는 인자함과 자비심을 가지고 계신다. 보살들이 어려운 일이 있어 상담하시면 먼저 부처님께 여쭈어 보시는 불공 부터 시키신다. 부처님의 법대로 보살들에게 가르침을 전달 하시기 위해서다.

스승님의 법력은 신통하기까지 하다. 불치의 정신병과 간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스승님을 찾아왔을 때 스승님과 함께 며칠 동안 불공하면 불치의 병이 완쾌되곤 하였다.

순수함과 인자함 속에는 엄격함과 위엄성이 상존하고 계 신다. 혹여 계행을 어기거나, 불공에 등한시 한 경우에는 엄벌을 내리신다.

스승님은 부처님의 법을 실천하고 전달하기 위해 가정불 공을 많이 다니신다.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병고가 있는 가 정은 어김없이 찾아가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주신 다. 평일이나 자성일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부처님의 법 을 포교하는 전도선언의 구도자처럼 가정불공을 다니신다.’ 한때는 퇴전한 보살이 스승님의 가정방문을 거절하며 대문 을 열어주지 않고 문전박대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스승님 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신다. 보살이 문을 열어주고 집안으 로 모실 때까지 대문밖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신다. 가정방 문을 다니실 때는 미리 통보하지 않고 다니신다. 현재 그대 로의 모습이 부처님 모습이라며 허레허식을 피하고, 교도가 정을 방문해서 보살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물 한컵 만 마시며, 가정의 해탈을 기원하는 불공을 올리자마자 곧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신다.

중생들의 아픔을 부처님의 따뜻한 마음과 자비로 어루만 지고 위로하기 위해 포교의 일선에서 교화하시는 스승님은 집안일에도 등한시 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자녀들이 올바르게 성장해야 남들에게 모범이 된 다.”라는 신념으로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을 극진히 봉양하시 고, 1남 3녀의 자녀들을 양육하는데에도 등한시 하지 않으 셨다, 교화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자녀들의 건강과 학교공부 를 일일이 챙기셨고, 자녀들은 스승님의 가르침과 실천력에 감응하여 어머님을 부처님처럼 받들며 어머님의 가르침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여기며 생활하였기에 자녀들은 모 두가 성실하고, 착하게 성장하였으며, 학교생활에서도 우등 생으로 졸업하여 사회에서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하였다.

복지화 스승님께서 수행하실 때는. 묵언으로 수행하셨고, 49일 불공이 시작되면 소금밥으로만 생활하시는 엄격한 계 행을 지키셨으며, 보살들의' 근기에 맞게 법을 주셨기 때문 에 스승님께서 주신 법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면 이루어지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한다.

육체는 우리곁을 떠났지만 스승님의 가르침과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은 변하지 않고 우주법계에 상주하고 계시며 늘 우리들에게 올바른 삶의 이정표를 가르쳐 주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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