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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으로 불공해서 안심입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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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7-07 신문면수 12면 카테고리 기획2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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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윤우채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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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05:07 조회 2,6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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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으로 불공해서 안심입명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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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527년 남천축국 스리랑카에서 불법을 전 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 온 달마스님은 평소 불교를 숭상해 불심천자 라 불리는 양 나라 무제와 만났다.

양무제 왈 “스님, 내가 큰 절도 많이 짓고 경 전도 수없이 편찬하고, 많은 스님들도 양성했습 니다. 이것은 하늘나라에 어떤 공덕을 쌓은 것입 니까?”

달마 스님은 무뚝뚝하게 “무"라고 답했다. 무제는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아니 어찌하여 그 많은 행위들에 아무런 공덕 이 없다 하치오?”

달마 왈, “그런 외형적인 행위들은 사람과 하 늘의 인과에 대한 흔적으로 마치 사물의 그림자 와 같이 실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헛된 것입니 다.”

양무제는 이젯껏 공들인 것들에 공덕이 없다 하니 혼란스러워 졌다.

“그럼 참된 공덕이란 어떤 것이오?”

“그것은 맑은 지혜와 같이 물질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서 세상적 행위로는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허탈해진 무제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것이 성스러운 것이 오?”

“성스럽다는 것은 저 허공처럼 확 뚫려 있는 것이거늘 무엇으로 규정짓는다는 말입니까? 그 런 세상에는 전혀 성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전등록에 전해지는 얘기다. 


아무 생각없이 한 일이예요.  그저 아무 생각없이 불공때가 되면 불공하고, 절에 일 생기면 가서 돕고, 이번 불사도 그런 무심한 마음으로 했던 거죠.”

성화사 법정행(허태연, 59) 보살. 15년간 회 장으로 있으면서 묵묵히 대소사를 치러내고 얼 마전엔 양부 만다라와 미려한 양^의 동참판 불사까지 회향했다. 기천만원을 선뜻 희사할 마음을 내서 오랜시간 애쓴 불사를 놓고 “아무 생각없이 한 일”이라니.

그건〈금강경의 ‘머무는 바 없이 마 음을 내고 , 상을 내지 말 고 보시를 하라 ’는 부처님 가르침 을 잘 실천한 것이 아닌가.

법정행 보살은 수행도 무심하게 한다. 남들 다 하듯 월초 지키고, 자성일 지키고, 대중시간 외에 하루 서너시간 정도 불공한다.

“평상시엔 자고 일어나서 아침정송 하고 절 에 가요. 서원당에서 불공 좀 하다가 오후엔 희사고나 정리하고 놀다 가는 거죠”

그 대신 버스타고 가면서, 집에서 TV보면서 염주를 쥔다고. 총지종의 지표인 ‘생활시불공  ’을 하는 셈이다.

기업하는 남편의 뒷바라지와 역시 기업하는 두 아들의 어머니로, 사찰 회장 보살로, 바쁘다 고 할 만도 하건만 보살은 그저 무심하게 산 다. 담연 한 것이 오히려 깨달음에 가깝 다. 그래서 무심이 도 라 하지 않던가. 그렇 게 마음을 비우고 구하는 게 없이 사니 오히려 형통하는가 보다. 법정행 보살은 최근 낙동강 변에 제법 큼직한 한식당을 냈 다.

“불사를 원만하게 회향할 수 있었던 건 지광 주교님의 가르

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해 전 성화사에 부임하신 후 도량 이 조금씩 변모하기 시작했죠. 성품이 깔끔하시고 부지런하셔 서 가만히 안 계신답니다. 후 락한 곳들을 하나씩 손 보셔서 정갈하게 다듬어 놓으셨습니 다. 그야말로 ‘도량청정, 마음 청정’이 된거죠.”

법정행 보살의 신심과 원력 뒤엔 각자님(정화섭 63)과 두 아들이 있었다.

각자님은 부산에서 40여년간 조선업계 굴지 의 회사를 경영해 온 사업가로 얼마 전엔 부산 향토기업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업으로 눈 코 뜰 새 없는 일정을 쪼개 성화사 단월회 활 동을 하며 보살와 든든한 후원자가 돼 왔다. 이번 불사에서도 각자님으 지원이 있었음은 물 론이다. 가업을 이어 계열사를 경영하고 있는 두 아들 역시 어릴 적 자성학교를 다니는 자성 동이였고, 괴산으수련회에 곧잘 참가하여 어머 니를 흡족케 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법정행 보살에게도 그늘 과 어려움은 있었다. 삼년 전 보살'부부가 독 일 여행을 가서,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작은 아들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낯선 곳에서 급행열차를 갈아 타고 천신만고 끝에 귀국해 아들을 찾았다. 

기적적 으로 생명은 구했지만 의식불명에다 상해부위 가 커서 암담하기만 했다. 보살은 그 길로 불 공에 매달렸다. 절박한 만큼 간절한 불공이 되었던 걸까. 아들은 일어났다. 주위에선 어머니 불공 때문에 살아 났다고들 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아들이 혼미한 의식 속에서 작고한 할아버님이 보이더래요. 그때 제가 조상님 불공을 열심히 하던 시간이었거든 요. 부처님과 조상님들이 가호하셨던 것 같아 요.”

소그같은 일들은 법정행 보살의 신심이 한층 증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살의 신심을 증장시킨 또 한 가지 난관이 있었다. 사교를 신봉했던 시어머니를 23년간 봉양하며 오랜 갈등을 겪은 것이다. 시어머니 는 자신의 믿음을 강요했고, 보살은 반발심에 밖으로 다니며 겉돌았다. 그러다가 성화사 교

도였던 친구의 권유로 절에 오게 되었다. 당시 주교였던 정정심 스승님은 “내 배가 부르려면 내 손으로 직접 밥을 떠먹어야 할 것. 아닌가, 한 번 해보자”며 독려했다고 한다. 그렇게 49 일 불공을 다녔고, 이후 20년간 성화사는 법정 행 보살의 수행처이자 안식처가 됐다.

절에 다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에 게는 불교총전 같은 경책을 가져다 드리고 간 곡하게 입교를 말씀드렸다. 우여곡절 끝에 49 일 불공을 마친 시어머니는 환희한 마음에 당 시 제일로 좋은 호마이카 상을 열 두개나 보시 했다고 한다.

“그땐 시어머니가 그저 어렵고 불편했어요. 이제는 아해할 수 있습니다. 불공을 하면서 그 만큼 지혜로와 진 것 같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월초 불공하고, 자성일 보고, 재불공 하고, 계행 지키고 평범하게 산다는 법 정행 보살은 그래도 요즘엔 좀 느긋한 마음이 들기는 한단다. 규모는 작더라도 중창불사를 무사히 마쳤고, 사업은 순조롭고, 자손들도 안 정을 되찾고, 여러 일들이 하나 하나 이루어 졌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마음 찾는 공부에 공을 들일 심산이라고.

“불교는 마음을 궁구하는 종교라고 생각합니 다. 물질적인 성취나 많은 복을 누리는 것도 좋지만 마음 밝혀서 나와 남을 제도하는 것이 야말로 가장.소중한 것이구요.”

인터뷰를 마치고 수첩을 덮고는 오랜 임원생 활에 어려움은 없없냐고 물어 보았다.

역시 느긋하고 무심한 한 마디가 돌아 왔다.

“없어요”

“....” 부산 윤우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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