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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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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04호 발행인 원송[서진업] 발간일 2008-07-07 신문면수 11면 카테고리 종단/신행 서브카테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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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박묘정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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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미디어커넷 입력일시 18-06-20 05:00 조회 2,6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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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비오는 날의 상념

오늘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빗줄기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텔레비전에서는 오 늘부터 장마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 역시 장맛비는 다른 비와 다른 것 같다. 시작부터 기세 등 등한 모습으로 찾아와 장마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우리 나라는 계절마다 다른 특 징을 가지고 있다. 한 번씩 장마 철을 겪어야 여름맞이가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 왔다. 해마다 연중 행사처럼 겪 는 물난리를 또 만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가 시작부터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사색의 시간도 갖게 해 주고 책 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도 생 겨 평소에 잘 읽지 않던 책도 꺼 내 들게 된다. 문득 생각의 저 깊을 골짜기로 여행을 떠나게도 한다.

지난 어느 해 여름 친구들과 찾았던 창경궁에서 비를 만났 다. 우리들은 궁궐 처마 밑에 옹기 종기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저기 모여서' 이야 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비 오는 날의 궁궐은 마치 우리들이 임금님이 계시던 그 때로 돌아 간 듯, 상념의 세계로 빠져 들 게 한다.

그 옛날 임금님께서는 장마철 을 어떻게 대비 하셨을까? 임금 님께서도 장마철에 부침개 드시 기를 좋아하셨을까? 그때 내가 궁궐에 살았다면 어떤 신분이었 을까? 깊이 생각 할 것도 없이

내 마음대로 공주나 왕비쯤으로 정해놓고 기분이 좋아 저절로 웃음이 얼굴에 퍼진다. 괜히 남 에게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 지려 해 고개를 돌려 버린다. 상 상의 세계에서 난 궁궐 뜰을 거 닐고 있다. 한껏 화려한 차림으 로

친구의 커피 권하는 소리에 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잠깐 이지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궁 궐 처마 밑에서 내리는 빗줄기 를 보며 마시는 커피 한잔은 내 가 마셔 본 것 중 그 어떤 것 보다 향기롭고 마음 속 저 깊은 곳까지 따스한 온기를 전해 주 었다. 비를 피해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를 쳐다 보며, 땅에 만들어 놓은 동그란 낙수 자국을 보며 즐거워했던 아련한 추억 속으로 점점 더 빠져든다. 그때는 비 오는 것이 정말 그 어떤 것 보다 멋지고 아름다웠 다.

빗속에서의 여러 가지 추억이 한꺼번에 밀려 온다. 멀지 않은 어느 해 비로 인해 인적이 거의 끊긴 오래된 절에서의 쓸쓸하고 고독하고 어두웠던 추억,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은 무거운 침묵 이 흐르고 안개와 먹구름으로 한낮인데도 마치 초저녁 같은 어둠이 찾아 왔다.

빗 속에 안개와 낮은 먹구름이 휘감기는 깊은 산속. 무서울 법 도 하지만 난 자연의 경이로움 에 그저 넋을 잃고 쳐다 보고 있 었다. 그 어떤 말도 필요 없었 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이 감탄 그 자체였다. 지금 도 그 때를 생각하면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어느 해 지인들과 함께 수원 화성과 정조 임금님의 능을 찾 았던 때도 생각난다.

그때도 간간히 비가 내렸다. 비 오는 탓인지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왕 능은 색다른 감회를 우리들에 게 안겨 주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조임금님께서는 얼 마나 많은 고통 속에서 참고 또 참았을까? 새삼 얼마 전에 끝난 TV 드라마 ‘이산’ 이 생각 난다. -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비 쏟 아지는 밖을 내다 본다. 바람 속 에 나뭇잎들이 비를 맞으며 서 있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가 아름답다. 마치 서로 속삭이 기라도 하듯이 사그락 사그락거 린다.

난 빗소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방 울 소리도 좋고 유리창을 크게 때리는 세찬 빗소리도 좋고 우 산에 떨어지는 후둑 후둑 소리 도 좋다. 굵은 모래에 떨어지는 아주 작은 빗소리도 좋다. 온갖 빗소리들이 모여서 화려한 관현 악을 연주 하고 있다. 나 하나의 관객을 위해.

- 박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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